[단독] 3461m 침묵의 바다, 지금 거기 블랙박스가 있다

박장군 2020. 9. 25.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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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스텔라데이지호 심해수색 미공개 영상·사진 단독입수
국민일보가 단독입수한 지난해 2월 스텔라데이지호 심해수색 당시 미공개 영상에서 블랙박스(VDR·항해기록저장장치) 본체로 추정되는 물체가 포착됐다.


2017년 3월 31일 남대서양에서 침몰한 스텔라데이지호 참사로 22명의 선원(한국인 8명·필리핀인 14명)이 실종된 가운데 블랙박스(VDR·항해기록저장장치) 본체로 추정되는 물체가 처음 공개됐다. 지난해 2월 심해수색 당시 찍힌 미공개 영상과 침몰 전 사진을 비교·분석해 포착한 것으로 2대의 블랙박스 중 회수하지 못한 1대로 보인다. 스텔라데이지호의 진실을 규명할 열쇠가 수심 3461m 바닷속 바로 그곳에 있는 것이다.

24일 국민일보가 단독입수한 스텔라데이지호 1차 심해수색 미공개 영상은 16분 47초 분량으로, VDR 본체로 추정되는 물체가 비교적 선명하게 카메라에 잡혔다. 영상을 보면 문 바로 옆 벽면에 직사각형 모양의 상자가 입체적으로 돌출돼있다. VDR 본체가 담겨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물체다. 벽면의 옆과 뒤쪽으로 항해장비와 조작패널도 식별된다.

국민일보가 단독입수한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전 VDR 본체 사진. 노란색 표시가 된 부분이다.


국민일보가 단독입수한 지난해 2월 스텔라데이지호 심해수색 미공개 영상에서 블랙박스(VDR·항해기록저장장치) 본체로 추정되는 물체가 포착됐다. 당시 수색 영상 일부.


스텔라데이지호에는 2대의 VDR(본체 1대·캡슐형 1대)이 설치돼 있다. 지난해 2월 심해수색 때 회수한 것은 이중 조타실 옥상(탑브릿지)에 있던 캡슐형이다. 당시는 원인을 알수 없는 훼손으로 데이터를 복구하지 못했다. 그러나 VDR 본체에도 침몰 직전 선원들의 육성부터 구조 요청 교신내용과 각종 항해 자료 등이 똑같이 들어있어 수거만 제대로 이뤄지면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원인을 분석하는데 결정적인 자료가 될 전망이다.

영상은 당시 심해수색을 진행한 미국 업체 오션인피니티가 찍은 것으로 200시간 남짓 분량 중 일부다. 원격제어 무인잠수정(ROV)이 유리창 바로 앞까지 다가가 집게 팔에 달린 카메라를 돌리며 내부를 찍었다.

국민일보가 단독입수한 지난해 2월 스텔라데이지호 심해수색 당시 미공개 영상. 뒤편으로 기기 조작 패널이 보인다.


침몰 전 스텔라데이지호의 조타실. 조타실 전면 유리 뒤쪽 모습으로 항해등을 비롯해 각종 기기를 조작하는 패널이다.


침몰 전 찍힌 조타실 사진과 비교해보면 상자 모습은 더 두드러진다. 조타실에서 앞 유리를 마주 보고 섰을 때 VDR 본체가 담긴 상자는 영상 속 위치와 같다. 오른쪽 문은 조타실 옆으로 날개처럼 확장된 ‘윙브릿지’로 나가는 통로로 영상에도 나타난다. 다만 VDR 본체가 상자 안에 현재도 담겨있는지는 정확히 식별되지 않는다. 오른쪽 벽 뒤쪽으로 각종 장비나 물품이 대거 쏠려있는 점으로 미뤄볼 때 VDR 본체가 상자에서 쏟아져 나와 다른 물건들과 함께 뒤섞여있을 가능성도 있다.

특히 이곳은 실종 선원들의 유해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앞서 스텔라데이지호 선적국인 마셜제도는 필리핀인 생존 선원 2명의 진술이 담긴 보고서를 통해 침몰 직전 선장, 기관장, 항해사 등 11명이 조타실에 있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스텔라데이지호 조타실 오른쪽 문틀의 모습.


지난해 2월 스텔라데이지호 심해수색 미공개 영상에는 조타실 오른쪽 벽 뒤쪽으로 각종 장비와 뻘이 대거 쏠려있는 모습이 담겨있다.


영상에는 VDR뿐만 아니라 항해기기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침몰한 지 23개월이 된 시점임에도 온전한 모습이다. 레이더 2대와 전자해도표시정보시스템(ECDIS)은 녹슬고 차양막이 떨어져 나갔지만 바닥에 단단히 고정된 상태다. 항해계획을 수립하고 해도(海圖)를 보관해놓은 탁자도 그대로였다. 망원경을 넣어두던 수납함의 목재 뚜껑도 조금 부식됐을 뿐 선명했다.

3년 넘게 스텔라데이지호의 진실을 추적 중인 김영미 분쟁지역전문 PD는 “영상이 찍힌 당시는 침몰 2년이 다 돼가던 시점인데 항해장비들이 이토록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있다는 게 놀랍다”며 “VDR 제조업체를 취재한 결과 본체도 분석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엄청난 충격에도 진실을 밝힐 증거들이 남아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직 1등항해사 박모(33)씨는 위치상으로는 설치 장소가 맞다면서도 “영상만으로 VDR 본체가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는 어렵고 실제 들어가봐야 알 수 있다. 본체가 맞다면 데이터를 읽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지난해 2월 스텔라데이지호 심해수색 당시 촬영된 미공개 영상. 차양막이 벗겨져 앙상한 뼈대만 남은 레이더와 전자해도시스템의 뒷모습이 보인다.


1차 심해수색 당시 조타실을 찍은 영상에는 망원경을 보관하는 수납함의 목재 뚜껑도 담겨 있다. 조금 부식됐을 뿐 온전한 모양새다.


침몰 전 찍힌 스텔라데이지호의 조타실. 해도가 놓인 탁자가 보인다.


스텔라데이지호 심해수색 영상 속 해도용 탁자의 모습. 강한 충격에도 바닥에 그대로 붙어있다.


흐릿한 영상 속에는 방수복이나 작업복으로 추정되는 물체도 등장한다. 커튼 같은 천 조각일 수도 있지만 조타실에서 탈출했던 선원 진술을 고려하면 실종자들의 흔적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통상 진홍색인 방수복(Immersion Suit)과 색상도 유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영상 속 색은 ROV 빛과 바닷물에 왜곡될 확률도 있어 향후 더 정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이 영상은 외교부뿐만 아니라 해양수산부, 해양경찰청, 중앙해양안전심판원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가 영상을 분석했다면 VDR 본체가 존재할 가능성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외교부는 지난해 7월 말 “(VDR 본체는) 심해수색 당시 선교내에서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방수복으로 추정되는 진홍색 물체.


국민일보가 단독입수한 스텔라데이지호 1차 심해수색 당시 영상의 일부. 레이더 등 항해기기와 해도용 탁자, 조작 패널 등이 비교적 선명히 보인다.


실종자 가족들은 정부로부터 영상 속 조타실의 모습이나 VDR 본체의 존재에 대해 일절 전해 들은 적이 없다고 했다. 실종 선원 허재용씨의 친누나인 허영주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대책위 공동대표는 24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배가 침몰할 때 수압이 워낙 세 조타실 내부가 유실됐거나 작게 쪼그라들었을 거라고만 들었다. 탈출하지 못한 선원들의 유해도 방치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며 “1차 수색에서 나온 결과물을 놓고 전문가들이 검토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지난 2월 20일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대책위와 4·16세월호가족협의회 유가족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스텔라데이지호 선사 유죄판결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며 눈물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침몰 전 스텔라데이지호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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