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간] 대전 골령골 민간인 학살 유해발굴

김봉규 2020. 9. 25.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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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한 주 남겨놓은 가을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랬다.

이곳은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6월28일부터 7월17일까지 대전형무소 재소자와 보도연맹 관계자 등이 최소 1800여명에서 최대 7천여명('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 자료집'에 따르면)이 세 차례에 걸쳐 집단 처형돼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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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명 묻힌 죽음의 골짜기
"아버지 뼛조각만이라도"..
22일 오전 한국전쟁 때 군과 경찰들이 민간인들을 대량 학살하고 매장한 터인 대전 동구 낭월동 골령골에서 유해발굴에 앞서 열린 개토제에 삽이 놓여 있다. 대전/김봉규 선임기자

추석을 한 주 남겨놓은 가을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랬다. 산골 도랑엔 맑고 시원한 물이 흘렀고, 들꽃들이 여기저기 피어 있었고 들풀 냄새는 향긋했다. 잠자리와 나비는 낮게 날며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도 포근하고 정겨운 시골 마을, 대전시 동구 낭월동(골령골) 산골은 피눈물 나는 처참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곳은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6월28일부터 7월17일까지 대전형무소 재소자와 보도연맹 관계자 등이 최소 1800여명에서 최대 7천여명(‘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 자료집’에 따르면)이 세 차례에 걸쳐 집단 처형돼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희생자 유가족은 이곳을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이라고 말한다. 수천명을 골짜기를 따라서 한 줄로 세워 총으로 쏘아 매장한 곳이기 때문이다. 2007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매장 추정지 7군데 중 2곳에서 34명의 유해를 발굴했으나, 가장 많은 희생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제1학살지에 대한 발굴조사는 이뤄지지 못했다. 2015년 공동조사단이 제1학살지에 대한 공동조사를 벌여 20명의 유해를 발굴했고, 이후 2017년 11월 시굴 조사를 통해 유해 매장을 확인한 바 있다. 이번 유해 발굴은 약 40일간의 일정으로 제1학살지에서 집중적으로 할 예정이다.

유해발굴에 앞서 개토제가 열리고 있다. 대전/김봉규 선임기자

지난 22일 골령골에서 본격적인 유해 발굴에 앞서 개토제가 열렸다.(사진) 이 자리에서 전숙자 대전산내사건 희생자유족회장은 추도사에서 “제주 4·3 유족회와 여순항쟁 유족회에서도 참석해주시어 고맙습니다. 아버지 잃고 70년이나 지나서야, 부모님 유해라도 편하게 모시고 싶었던 소원이 오늘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이제야 부모님 상을 치르게 되나 봅니다. 아버님을 어두운 땅속에서 따뜻하고 밝은 곳으로 모시겠습니다”라며 울먹였다. 안경호 4·9통일평화재단 사무국장은 인사말에서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이 종료된 지 10년 만인 지난 5월 과거사 기본법이 통과돼, 올 12월이면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의 출범을 앞두고 있다”며 “전국 산천에 묻혀 있는 희생자들의 유해 발굴이 하루속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다.

유족회에서 코로나19 감염을 우려해 유가족들에게 개토제에 참석하지 말라고 했으나, 몇몇 유가족이 마스크를 쓰고 이곳을 찾았다. 70년 만에 중장비가 굉음을 내며 검고 붉은 흙을 걷어내자 아버지가 희생당했을 때 한살배기 아기였던 딸은 고희를 넘긴 노인이 되어 하얀 마스크 속으로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올해 추석은 그토록 그리던 아버지의 뼛조각이라도 함께하길 바란다.

매장터에서 유해발굴에 앞서 개토제가 열리고 있다.. 대전/김봉규 선임기자
한 희생자 유가족이 개토제에서 절을 올리고 있다. 대전/김봉규 선임기자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 주최로 희생자 유가족들과 대전지역 시민단체 회원들이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하며, 유해발굴에 앞서 개토제를 열고 있다. 대전/김봉규 선임기자
개토제가 끝난 뒤 유해발굴이 시작되고 있다. 대전/김봉규 선임기자
한 희생자 유가족이 유해발굴에 앞서 학살터 땅 파기를 바라보고 있다. 대전/김봉규 선임기자

대전/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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