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언론·의료계 기득권의 뿌리는 유신체제"

최방식 2020. 9. 26.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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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청산민주연대, '10월유신 48주년 집담회' 25일 개최

[최방식 기자]

헬조선, 흙·금수저 등의 젊은층 절망과 검찰·사법부·언론·의료계 등 소위 사회 엘리트 집단의 '밥그릇 지키기' 등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이같은 현상이 박정희 유신독재 시절 강제 체화된 '기득권 집단이기주의'에서 발현됐다는 진단이 나왔다. 붕괴된 유신체제를 이어받은 신군부독재와 국민통합 유화 제스처가 필요했던 김대중 민주정권이 '18년 폭압실정'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봉합하며 벌어진 폐해라는 지적이다.

87년 체제 이후 이어진 민주화운동과 촛불혁명으로 군부가 선출권력의 통제 안으로 들어왔고, 정치권이 상당 부분 민주화를 진전시켰지만, 여전히 한계가 있다는 비판이다. 이른바 '빨갱이' 몰아가기와 재벌 산업자본 이데올로기 및 배금주의 허상이 의식 속에 남아있어, 이를 깰 방안이 시급하다는 주장도 이어졌다.
 
 유신청산민주연대가 ‘10월 유신’ 48주년을 앞두고 25일 인사동에 있는 6·15남측위 강당에서 ‘유신독재청산 집담회’를 개최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고은광순 유신청산민주연대 공동대표, 이종구 성공회대 사회학 명예교수, 홍윤기 동국대 철학 교수, 박순희 70년대민주노동운동동지회 부회장, 이대수 유신청산민주연대 운영위원장.
ⓒ 최방식
유신청산민주연대(상임공동대표 김재홍 박현옥)와 '민주인권평화를 실천하는 긴급조치사람들'(대표 유영표)은 '10월 유신' 48주년을 앞두고 25일 오전 10시 인사동에 있는 6·15남측위 강당에서 '유신독재청산 집담회'를 열고 이같은 목소리를 쏟아냈다.

토론에는 홍윤기 동국대 철학 교수, 이종구 성공회대 사회학 명예교수, 박순희·고은광순 유신청산민주연대 공동대표, 이대수 유신청산민주연대 운영위원장이 참여했다.

"유신체제 붕괴 뒤 평가 안해 청산 미뤄져"

사회를 맡은 홍윤기 교수는 토론 모두발언에서 "18년의 박정희 정권, 특히 1972년 유신체제 이후 7년간 이어진 긴급조치와 유신헌법 시대는 김재규의 총성으로 끝났지만 아직도 우리 삶을 옥죄며 폐해를 끼치고 있다고 한다. 진단을 해 보자"며 집담회 시작을 알렸다.    

이종구 교수는 먼저 "72년 7·4공동성명은 정말 큰 일이었고 국민 마음에 감격을 준  일이었는데, 박정희는 이를 띄워놓고 유신은 통일을 위해 필요하니 체제가 강고해야 한다며 딴소리 하지 말고 따라오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알고 보니 69년 3선 개헌 때 '마지막 기회'라고 해놓고 성에 안 차 영구집권을 하려고 북한을 이용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 교수는 이어 "박 정권은 '나라=나'라는 일본 극우 군부 이데올로기와 나치즘을 동원하고 머리깎기, 치마 단정하게 입기, 제사 간소화 등 개인의 문화와 생활 속으로 손을 뻗쳐 결국 사회개조로 의식을 지배했다"고 덧붙였다. 휴전선에서 월남에서 군 정훈교육으로 남자들의 정신을 지배하고 여성성을 사고 파는 '성의 도구화'를 꾀하기도 했다고 강조했다.

박순희 유신청산시민연대 공동대표(70년대민주노동운동동지회 부회장)는 "박노해 시인이 '손무덤'에서 묘사했듯 박 정권은 저임금·장시간·산재에서 노동조건 세계 3관왕을 했을 정도고, 초등학교 갓 졸업한 여자 애들이 하루 12~18시간 일하며 오빠와 남동생 학비를 벌도록 했다"고 유신시대를 회고했다. 이어 "노사는 주종관계였고 노조(상급단체 포함, 민주노조 이전)는 노동자를 이간질하고 노동착취를 강화하는 조직이었다"고 말했다.

"통일 환상 심고 생활문화 개조해 의식지배"    

박 대표는 "권리는 경비실에 맡기고 의무만 가지고 작업현장으로 가라던 구호, 주는 대로 시키는 대로 해야 새 꿈을 키울 수 있다는 윽박이 싫어 모나미 볼펜을 눌렀다 뺐다 하며 '딸깍'소리로 저항하던 때"라고 묘사했다. 

이어 "웬만한 국영기업엔 중정 요원과 경찰 정보원이 상주하고 노동쟁의가 생기면 정보기관이 주도해 노동부에 강제 중재케 했는데, 그 기업들이 권력의 정치자금 줄이어서 그랬던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원풍모방 부지부장 시절 노조·대공·종교 담당 경찰과 중정 요원의 감시사찰에 늘 시달렸다고 증언했다.

이대수 운영위원장은 "당시 학교에서는 국민교육헌장을 달달 외우게 하고 교련(학도호국단)을 통해 학원을 병영화했으며, 특히 대학은 ROTC라는 장교 임관 학교로 전락했고, 학교네 자율활동과 학생들의 동아리 활동은 금지됐다"며 "이런 대학에서 반유신독재 운동이 이뤄진 것은 기적"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기독학생회장을 할 시절 경찰, 국정원, 보안사 요원의 감시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이 위원장은 또 한편으로는 교수를 내세워 자율적 동아리 활동을 가로막고(지도교수를 맡는 이가 없으면 등록과 활동 불가) 학생 안에는 프락치를 늘려 서로를 이간질하도록 했으며, 말을 안 들을 경우 정학·제적·징집(강제)·감옥살이로 학원을 통제했다고 강조했다. 게시물 하나도 허락(도장)을 받아야 게재하던 때라고 회고했다.

고은광순 공동대표는 "공평한 세상, 모두가 잘사는 나라를 외친 19세기말 동학을 절멸시킨 일제의 통치술을 숭배하고 배운 박정희가 해방 뒤 친미를 거쳐 독재 하며 쓴 지배전술은 반공이었고, 이에 반발하는 이들을 총칼로 진압(절멸), 쿠데타 정권을 유지했다"고 짚었다. 이어 "박 정권의 허상이 여태 남아있고, 기득권을 가진 검사 판사 언론인 재벌들의 분탕질을 여전히 목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치자금줄 국영기업 노조 관리, 정보기관이"

고은 대표는 이어 박정희가 중정부장의 총알에 무너졌을 때 신군부 쿠데타를 주도한 전두환 노태우 등 후배 세력에 이어 김대중 민주정부 마저 국민통합 유화 제스처로 박정희 평가를 하지 않았다며, 돈과 성장에 목 맨 우클릭 사회를 유지케 했다고 지적했다. 이를 통해 법조·언론·의료·재벌이 여전히 '박정희 미끼'를 물고 자신들만의 세상을 만끽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기득권 허상' 깨기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홍윤기 교수는 "3·1운동부터 100년, 동학부터 하면 160여 년 기득권세력의 틀이 유신 때 정형화했다"며 "군부가 앞서고 정치·관료·산업세력을 휘어잡아 틀을 잡은 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정치와 군은 나름 민주화 영향을 받았는데 행정사법 관료와 산업(재벌)세력은 온존해 경쟁중심 사회에서 기득권을 굳히고 있다고 정리했다.

이종구 교수는 박 정권의 지배전술 특징은 권력과 제도를 틀어쥔 데 이어 정신세계를 장악한 점이라며, 군인 등 청소년 시절 체화된 마인드는 오랜 세월 의식 속에 남아있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당시 서울대 사회과학과가 박정희 체제의 '선의의 독재'를 국민 80%가 지지한다는 발표를 했는데, 지식인 사회가 곡학아세하는 계기였으며 그 지식인들이 지금도 그대로라고 비판했다.

박순희 대표는 "역사는 현실(과거)과 미래의 대화라고 하듯 유신청산도 당시 반대운동을 하고 피해를 입은 이들만이 아니라 모든 시민이 나서야 한다"며 "반공·배금주의에 세뇌당한 것을 바로잡을 방안과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련으로 학원 병영화, 대학 ROTC장교 양성소"    

고은광순 대표는 박 정권의 불법 긴급조치에 최근 위헌판결이 이어지고 있는데, 유신체제 법규에 대해서는 바로잡는 판결이 나오지 않고 있다며 국회가 유신체제를 반성하고 청산선언 뒤 입법화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윤기 교수는 독일에서는 연방이 주도했다고 덧붙였다.

이대수 운영위원장은 설훈 의원 등 국회 정치인들과 유신청산 입법 방안을 내달 13일 논의하기로 했다며 40년 전 반유신 활동가들이 엄혹한 때 용기를 냈듯 청산운동 역시 미래 세대를 위한 책무라 여기고 매듭을 지어야 하지 않겠냐고 강조했다.

토론자들은 헬조선과 흙·금수저 뿌리가 기득권자들이 자기들만의 이익을 빨던 유신체제에서 비롯됐다며 민주주의가 실현됐다고는 하지만 반공과 성장경쟁이 교묘히 유지 또는 확대강화돼 질곡으로 젊은 세대의 좌절을 키우고 있다고 공감했다. 여성을 도구화하는 성범죄도 같은 뿌리라고 지적했다. "인간답게 살자"(동일방직 석정남씨 수기 '불타는 눈물' 중), "귀하다, 너도 귀하다, 함께 잘 살자"(동학 정신)의 정신을 살리자고 한 목소리를 냈다.

한편, 유신청산민주연대는 지난해 5월 긴급조치 피해자 원상회복 방안 국회토론을 박주민 의원실과 공동주최한 것을 계기로 유신체제 청산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모으며 1년여 준비 끝에 올 5월 23일 공식 출범한 단체다.

유신청산민주연대에는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서울민예총, 자유언론실천재단, 통아투위, 조선투위, 전태일재단, 촛불계승연대천만행동, 한국작가회의, 4·9통일평화재단, 70년민주노동운동동지회, 청계피복·동일방직·원풍모방·CDK·YH 노동조합, 71동지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 등이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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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인터넷저널에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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