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쪽같은 내 새끼들".. 추석 대목 코앞인데 어쩌나 [이슈 속으로]

김덕용 2020. 9. 26.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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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태풍·코로나.. '삼중고' 시름하는 농어민들
이상 기후에 농경지 매몰·과일 낙과 등
축구장 3만개 크기 1만9000ha 작물 피해
상품성 저하.. 수확기 일손 구하기 별 따기
양식장 어류·축산농 가축들도 폐사 피해

지역축제 줄취소.. 농·특산물 판매 애로
원격수업 계속되며 급식 재배농가 울상
정부 4차 추경에 농어민 지원책은 빠져
"농어민도 자영업.. 재난보상책 마련을"
“금쪽같은 내 새끼들…   추석 대목 코앞인데… 어쩌나” 경북 영천시 화북면 하송리의 한 사과밭에서 농민이 태풍 하이선의 영향으로 떨어진 사과들을 살펴보고 있다. 영천=연합뉴스
#1. 경북 영천시 신녕면에서 사과 농사를 짓는 김무현(71)씨는 요즘 분통이 터진다. 김씨는 1200㎡여 규모의 과수원에서 9월 중순 수확하는 ‘추석 사과’ 자홍 농사를 짓는다. 하지만 올해는 수확을 코앞에 두고 불어닥친 잇단 태풍과 폭우로 사과 90% 정도가 떨어졌다. 평소 이맘때면 수백 궤짝씩 쌓아놓고 팔았던 추석 선물세트용 사과의 올해 출하량은 5㎏짜리 30~40상자에 그쳤다. 손해액은 1억원가량에 달한다. 김씨는 “올해 일할 사람도 없어 추석 선물용 상자를 포장하는 작업도 안 하고 궤짝째로 그냥 팔고 있다”면서 “긴 장마와 폭우로 사과값이 많이 올랐다는데, 우리는 공판장에 넘기면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2. 포항시 남구 장기면에서 해상가두리 양식장을 운영 중인 박성규(59)씨는 지난달 우럭값이 비싸게 형성되자 기대감에 부풀었다. 그러나 곧 물거품이 됐다. 박씨의 우럭은 태풍 9호 ‘마이삭’과 10호 ‘하이선’이 휩쓸고 간 뒤 한 마리도 살아남지 못했다. 이번 태풍으로 그는 종묘생산을 위해 양식한 1㎏짜리 우럭 성어 1만마리와 출하를 앞둔 500g(18개월 양식)짜리 30만여마리, 300g(16개월 양식)짜리 15만여마리, 50g(4개월 양식)짜리 치어 40만여마리 등 모두 86만여마리를 잃었다. 돈으로 환산하면 피해액은 10억원을 웃돈다. 그는 “내가 밥을 굶었으면 굶었지, 고기는 굶기지 않고 애써 키워 왔는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자연·사회재난 등 농어민들 ‘삼중고’

역대 최장기간을 기록한 장마와 잇단 태풍,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에다 매출급감, 인건비 상승이라는 ‘삼중고’를 겪으면서 농어민들의 생계에 비상등이 켜졌다.

25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태풍 마이삭과 하이선의 영향으로 전국에서 9647건(공공시설 6750건·사유시설 2897건)의 시설 피해가 났다. 농경지 4870㏊가 물에 잠기거나 매몰된 것을 비롯해 수확을 앞둔 과일 낙과 4164㏊, 벼 쓰러짐(도복) 1만335㏊ 등 축구장 약 3만2000여개 크기인 1만9369㏊의 작물 피해가 발생했다. 가축도 한우 1220마리, 돼지 6928마리, 닭·오리 등 가금류 192만6278마리가 폐사됐다. 완전한 복구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어서 농어민들의 아픈 상처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태풍 2개가 잇따라 동해안을 훑고 지나간 강원 강릉시 외곽 농촌에서 주민이 태풍에 쓰러져 묶어 세운 벼를 살펴보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더욱이 피해 복구가 완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본격적인 수확기를 맞았지만 코로나19 재확산 영향으로 일손을 구하기 힘들어 죽을 맛이다. 전남 나주시 노안면의 배 농가 곽모(60)씨는 “수해로 일거리가 없어져 외국인 근로자들을 잠시 내보냈는데, 최근 다시 고용하려고 하니 어려움이 크다”며 “(행정기관에) 인력을 요청했지만 언제 몇 명을 배정받을지 알 수 없는 상태”라고 토로했다.

지역 농·특산물 판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추석을 앞두고 고향·친지 방문이 자제 등에 따른 상차림 간소화,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인한 음식점 야간 영업 축소 등으로 소비가 위축됐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들이 감염병 확산을 우려해 앞다퉈 농·특산물 현장 행사를 취소한 것도 악재다.

대표적으로 강원 횡성군은 전국 최고의 한우 먹거리 축제인 ‘횡성한우축제’를 일찌감치 비대면·온라인 축제로 전환한 데 이어 전북 임실군은 다음달 예정됐던 ‘임실N치즈축제’를, 진안군은 ‘홍삼축제’를 각각 취소했다.

코로나19 여파로 학생들의 원격수업이 계속되면서 친환경 급식 계약재배 농가들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이들 농가는 일반 농가보다 비용과 시간이 더 많이 들고 재배작물의 상품성도 오래가지 않는다. 색도 바래고 신선도가 쉽게 떨어져 마트나 시장에도 내놓지 못하는 실정이다. 일부 농가는 농작물을 보관하는 물류창고를 알아봤지만, 비싼 요금에 결국 농작물을 그냥 썩게 내버려둔 상태다.
지난 2일 서울 강서구 서울친환경유통센터 내 학교급식 검품장에서 관계자가 텅 빈 채 놓여 있는 식자재 운반용 카트를 바라보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수도권 초·중·고교의 등교가 중지되고 이로 인해 학교 급식이 중단되면서 급식용 친환경 농산물 소비가 줄고 있다. 하상윤 기자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경남지원 관계자는 “코로나19가 진정돼 농가의 판로가 재개될 때까지 지속해서 피해 농가를 발굴해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4차 추경 편성… ‘농어민은 또 외면’

정부가 7조8000억원 규모의 4차 추가경정예산안(추경)을 확정, 발표했지만 잇단 태풍으로 어려움을 겪는 피해 농어민들에 대한 별도 지원은 빠져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정부는 코로나19에 노출된 노래연습장, 유흥주점, PC방, 대형학원(300인 이상) 등 12개 고위험 시설을 지원대상에 포함했지만 농수산업 분야는 제외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이무진 정책위원장은 “학교급식 중단으로 납품하지 못한 농산물이 밭이나 창고에서 썩고 있고, 수해 피해 농가들은 어떤 농작물 지원과 보상도 없어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계층이 농어업계 내에도 분명히 존재하는데, 정부 대책에서 늘 이들을 소외하는 것은 정부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지난 8월 집중호우로 큰 피해를 입은 전남 구례군 구례읍의 한 마을에서 피해 복구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한 관계자는 “대부분 농민은 자영업으로 지원 대상에 넣는 게 맞다”며 “피해가 큰 업종과 계층에 집중해 최대한 두텁게 선별 지원하는 게 정부 방침이라면, 농수산업 부문도 학교급식 농가 등의 피해가 매우 큰데 이 부분을 배제하는 건 역차별의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폭염, 폭우 등 이상기후로 농어민이 직격탄을 맞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피해 농가를 위한 실질적인 보상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는 최근 장마철 홍수 피해에 대한 농업부문 복구 지원계획으로 일부 농업재해복구비 지원단가를 인상했다. 농업재해복구비의 평균 현실화율을 73%에서 83%로 높이겠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농어업 현장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응급 복구나 일시적인 생계 구호에 초점을 맞춘 농업재해복구비로는 망쳐버린 한 해 농사를 보전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2006년부터 5000만원으로 동결한 재난지원금 총액 한도도 문제로 제기된다. 고문삼 한국농업인단체연합 상임대표는 “농업이 시설화·규모화되고 농업경영비가 계속 오르는 상황에서 이상기후까지 자주 발생하는 만큼 재난지원금 한도도 현실에 맞게 상향 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구·안동=김덕용·배소영 기자, 전국종합kimd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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