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고위 탈북자 "김정은 지시 없인 남한사람 절대 사살못해"

워싱턴/ 조의준 특파원 2020. 9. 27.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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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비자금 관리 39호실 출신 탈북자 리정호씨 주장
"김정은이 사살 몰랐다고? 전형적인 거짓말"
"北 통지문에 북한에서 안쓰는 한자어 많아..검증해 봐야"
미국의 소리(VOA) 방송과 인터뷰하는 리정호 전 북한 노동당 39호실 고위관리. /VOA 캡처

북한 김정은이 통전부 명의 통지문에서 마치 자신은 북한군에 의한 우리 국민 사살 사실을 몰랐던듯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한데 대해, 최고위급 탈북자가 “김씨 일가의 전형적인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통지문에 “북한의 공식문서에 거의 쓰지 않는 한자어가 들어있다”며 통지문이 진짜 김정은의 지시로 만들어진 것인지도 검증해 볼 필요가 있다 주장했다.

북한 김씨 일가의 비자금과 외화조달을 관리하던 노동당 39호실 출신 고위 간부로 미국에 거주하는 리정호씨는 26일(현지시각) 본지에 “북한의 유일지도체제를 남한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며 “남한에서 넘어 온 사람을 사살하는 것은 김정은의 지시없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리씨는 노동당 39호실 대흥총국의 선박무역회사 사장과 무역관리국 국장, 금강경제개발 총회사 이사장 등 북한에서 차관급 지위까지 올랐던 인물로, 현재까지 대외적으로 알려진 탈북자 중에선 최고위급이다.

◇리정호씨 “김정은 지시 없이는 발포 못해”

리씨는 “한국군의 발표를 보면 북한군이 한국 국민 A씨를 발견한 뒤 6시간 후 상부의 지시를 받고 사살했다”며 “남한 사람을 사살하는 것은 김정은의 결정없이 할 수 없다. 6시간은 김정은의 판단을 받기 위해 걸린 시간일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군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22일 구명조끼를 입고 부유물에 떠 있던 A씨를 황해남도 등산곶 인근에서 발견한 뒤 약 6시간 후인 오후 9시40분쯤 ‘상부’의 지시로 사살하고 시신에 기름을 붓고 불태웠다. 그러나 북한은 지난 25일 노동당 통전부 명의로 보낸 통지문에서 “우리 군인들은 정장(한국군 대위급)의 결심 밑에 불법 침입자를 향해 사격했다”고 했다.

그는 김정은이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뜻을 통전부 통지문을 통해 전한 것에 대해서도 “남한 정세를 흔들려는 전형적인 전술”이라며 “김정은은 목적을 위해 어떤 거짓말도 할 수 있고,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게 북한의 최고지도자”라고 했다. 자신들의 만행이 국제적인 분노를 일으키자 거짓말로 상황을 모면하려 한다는 것이다.

리씨는 “지난 2010년 북한은 화폐개혁 실패의 책임을 물어 박남기 당 계획재정부장을 총살했다”며 “당시도 김정은의 아버지 김정일의 허가를 모두 거친 것이었지만 민심이 악화되자 박남기가 주도한 것처럼 꾸며 총살한 것”이라고 했다. 김정은도 지난 2018년 8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4차 방북이 북한 김영철 통전부장의 호전적인 편지 때문에 취소되자, 한국 특사단에 “내가 편지 내용까지 일일이 살펴보지 않아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대해 리씨는 “미국에 보내는 편지를 김정은이 몰랐다는 것은 북한 체제 특성상 말도 안되는 것”이라며 “전부 상황 모면을 위한 거짓말”이라고 했다.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서훈 국가안보실장의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 관련 브리핑을 시청하고 있다. /뉴시스

◇리씨 “통지문에 북한에서 안쓰는 한자어...김정은 정식 방침인지 의문”

리씨는 청와대가 공개한 북한의 통지문에도 “북한에서 쓰지 않는 용어가 많다. 내가 김정일·김정은의 방침을 많이 받아봤지만, 저렇게 북한에서 쓰지 않는 한자 용어를 섞어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김정은의 정식 방침인지 의문”이라고 했다. 청와대가 공개한 통지문엔 ‘정체불명의 인원(人員)’ ‘부유물에 많은 량의 혈흔(血痕)’ ‘병마의 위협으로 신고(辛苦)하고 있는’ 등의 북한에서 거의 쓰지 않는 한자 용어가 들어있다는 것이다.

그는 “북한 최고지도자가 내리는 방침은 맞춤법부터 모든 것이 거의 완벽하게 내려온다”며 “만약 김정은측의 검토를 거쳤다면 인원은 ‘사람’으로 ‘혈흔’은 핏자국, ‘신고’는 고생이라고 썼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김정은의 정식 지침을 따라 만들어진 것인지 의문도 든다”고 했다.

리씨는 북한 통전부의 통지문을 한국에서 ‘사과’로 해석하는 것에 대해 “사과는 통지문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북한에서 권위있는 사과는 노동신문이나 조선중앙통신 등을 통해서 나와야 하는 것”이라며 “통지문을 보낸 것은 단지 남한 사회를 좌·우로 갈라 흔들려는 것”이라고 했다. 노동신문 등에 명확하게 남겨놓지 않으면 언제든 말바꾸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 “北, 사과 제스처 할 수밖에 없는 상황”

미국의 전문가들도 북한의 통지문을 전 세계적인 비난을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해석했다.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는 전날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이번 통지문과 관련 “북한이 전 세계적 비난을 피하려 한 것”이라며 “한국인을 사살한 뒤 코로나를 이유로 추가 조치를 취한 데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을 우려했고, 이 것이 사과의 근원이 됐다”고 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도 이 방송에 “이번 사건의 경우 명백히 공개적으로 드러났고, 그런 점에서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감추는 건 북한 입장에서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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