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이 얼어죽었습니다"..크리스마스날, 신부님 전화가 울렸다
몇년 전 크리스마스 아침이었다. 김하종 신부(64·성남 안나의 집)에게 전화 한 통이 왔다. 경찰이었다. 왜 그러냐 물으니 이렇게 말했다.
"신부님, OO 병원으로 오시겠어요? 노숙인 한 분이, 어제 길에서 얼어 죽은 채 발견되었습니다."
거리 위의 험하고 고단한 삶, 그 안엔 가족도 친구도 없었다. 그의 지갑에 들어 있던 유일한 연락처가 김 신부 명함이었다. 무료 급식을 할 때 받아간 거였다.
김 신부는 아픈 마음으로 병원에 갔다. 노숙인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네, 제가 아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길을 위해 기도했다. 그 곁에 아무도 없음이 맘 아파, 계속 눈물이 흘렀다.
그 뒤로 그는 관할 구청과 경찰청에 부탁을 했다. 숨진 노숙인을 발견하면 그에게 연락을 달라고. 그 뒤론 성남서 노숙인이 사망하면 김 신부와 안나의 집 직원들이 가서 장례를 치르고 있다.
지난해 11월, 보건복지부는 이를 바꾸겠단 뜻을 내비쳤다. 이어 후속 조치를 통해 지침을 마련했다. 장례를 희망하는 개인·단체가 장례를 주관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니 사실혼 배우자, 친구, 지역 공동체 등 삶의 동반자가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됐다.
현장에서의 변화는 어떤 모습일까. 서울시 무연고 장례를 지원해 온 사단법인 '나눔과 나눔' 박진옥 상임이사는 "함께 학생 운동을 했던 친구들이 고인이 원한 방식으로 장례를 치렀다"며 "예전엔 안 된다고 했지만, 지금은 이런 방법이 있다고 안내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이는 또 전통적 혈연 중심 가족에서 다양한 형태를 반영했단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박 상임 이사는 "혈연 중심 사회에서 관계 중심 사회로 전환되는 하나의 전기가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장례는 최소 2주 이상 지연된다. 혈연 가족이 우선 순위여서다. 이들이 있는지 찾고, 물어보고, 시신 인계에 대해 확인한 뒤 아무 응답이 없거나 포기한 뒤에야 사실혼 또는 돌봄 관계에 있는 이들에게 권리가 생긴다. 그 과정에서 시간이 소요된다.
또 보건복지부 지침이 바뀌어도, 의료법상에선 연고자 범위가 여전히 한정적이다. 직계·반계 중심으로 그치고 있는 것. 그러니 연고자가 아닌 이들은, 병원에서 사망진단서조차 발급 받을 수 없다.
박 상임 이사는 "자녀는 장례를 위임하고, 형제가 치르겠다 했는데 지역 병원서 의료법 위반이라며 사망진단서 발급을 안 했다"며 "왜 내 형제를 무연고로 보내야 하느냐며 원통해 했다"고 사례를 들었다.
지침을 일선 현장 공무원들이 여전히 잘 인지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부용구 나눔과나눔 활동가는 "친구 장례를 치르고 싶어하는 이가 지자체 담당자에게 '연고자가 아니라 장례를 치를 수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며 "아직도 업무 담당자들이 이런 지침을 모르거나 설명을 해주지 않는 등 사례가 있다"고 했다.
"내 장례를, 가족이 아닌 OO가 치뤄줘. 화장으로." 살아 있을 때 이렇게 할 권리는 여전히 없다. 장례당사자가 죽은 뒤에만, 장례를 주관할 이를 지정할 수 있게끔 법이 돼 있기 때문이다.
나눔과 나눔에 실제 사례가 있다. 삼촌이라 부르는 이가 호스피스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장례를 직접 치르고 싶단 문의였다. 그러나 A 구청은 장례주관자를 그로 지정하는 신청서를 거부했다. 아직 삼촌이란 이가 살아 있단 게 이유였다.
일본에는 '생전 계약'이란 이름으로 활동하는 비영리단체가 있다. 이들은 생전에 돌보고, 위독한 상황서 이송하며, 실제 숨진 뒤 장례까지 포함하는 서비스를 한다.
박 상임 이사는 "생전 신청으로 법 제도가 개선 돼야 장례 당사자도, 신청자도 모두 죽음을 잘 준비해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된다"며 "그야말로 '웰 다잉(Well dying)'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 친구들은 대부분 살 때도 혼자서 힘들게 살며, 죽을 때도 길에서 또는 옆에 아무도 없이 쓸쓸하게 죽어갑니다. 삶과 죽음의 순간에 사랑과 행복이 아닌 고통과 외로움 속에만 있어야 하는 사랑하는 우리 친구들을 위해 기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연고도 없이 죽은 이들 마지막이라도 부디 봐 달라는, 김하종 신부의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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