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으로 간 컴퓨터..3대가 소통하는 디지털 공간

김재섭 입력 2020. 9. 28. 07:06 수정 2020. 9. 28.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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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넥슨컴퓨터박물관 개관 7주년
아시아 최초 정식 컴퓨터박물관
가족 함께하는 디지털 추억여행
옛 디지털기기 보며 체험도 가능
1800점 전시..관람객 100만 돌파
피시통신·한메타자·갤러가 등
'원조' PC·게임 보는 재미 쏠쏠
넥슨컴퓨터박물관이 개관 7주년을 맞아 마련한 기획 전시관 ‘콤퓨-타 체육실’ 모습. ‘런 앤 건’, ‘테크모 월드컵 98’, ‘아라티 2600’, ‘인텔리비전’, ‘패미콤’ 등 197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인기를 끌었던 스포츠게임들을 즐겨볼 수 있다.

#장면 1

학교 앞 작은 문방구나 수퍼(가게) 앞에 놓인 게임기 유혹을 못이겨 엄마 지갑이나 누나 저금통을 슬쩍하곤 했다. 결국 들켜서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냐. 엄마 죽는 꼴 보고 싶어” 소리를 들으며 벌을 섰다. 30대 이하 연령대 상당수가 갖고 있는 초등학교 시절 기억 가운데 하나이다. ‘소도둑’으로 발전하지 않았다면, 피해를 본 엄마와 누나가 옛 얘기를 꺼낼 때마다 빵 터진다.

#장면 2

채팅 중에 속마음을 표현한 단어나 문장을 살짝 끼워 넣고 엔터 키를 친 뒤 파란 화면 위서 깜박이는 커서에 몰두한다. 40~60대들의 피시통신(하이텔·천리안·유니텔·나우누리) 이용 기억 가운데 한 장면이다. 지금은 더 편리하게 쓸 수 있는 이동전화 문자메시지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있지만, 메시지 도착을 알리는 독특한 음과 함께하던 피시통신 맛을 못 따라간다.

제주시 넥슨컴퓨터박물관 모습.

중학생이 된 뒤부터 서먹해져 말을 하려면 눈치부터 봐야 하는 아이와 잠시나마 허물없이 떠들고 웃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다.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이 좀 안정되면 사회적 거리두기로 집에 갇혀 있다시피 해 답답해하는 60대 부모님과 10대 자녀와 함께 제주도 여행을 하려는데, 어디를 가면 3대가 다 좋아할까. 요즘 들어 자주 버럭 하는 아내를 맘껏 웃게 해주고 싶은데….

최윤아 넥슨컴퓨터박물관장은 “고민하지 말고 컴퓨터박물관으로 오라”고 권했다. 혼자도 좋고, 서먹함을 풀거나 같이 웃어보고 싶은 가족·연인과 함께하면 더 좋단다. “아! 아빠 때는 저런 걸 썼구나”, “아빠가 엄마랑 연애하던 시절 이동전화 단말기는 저랬구나”, “어! 저거 우리 연애 시절 쓰던 단말기인데”라고 떠들며 크게 웃을 수 있단다. 디지털 기술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또 다른 장치인 셈이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만든 첫번째 컴퓨터 ‘애플Ⅰ’(1976년)

제주시에 자리잡은 넥슨컴퓨터박물관(이하 컴퓨터박물관)은 국제박물관협회에 등록된 아시아지역 최초의 컴퓨터박물관이다. 김정주 넥슨 창업자가 대표를 맡고 있는 엔엑스시(NXC·넥슨 지주회사)가 사회공헌 목적으로 설립했다. 2013년 7월 개관했는데, 지난 8월 기준 누적 관람객 수가 106만명을 넘었다. 코로나19 대유행 전에는 하루 평균 1500명이 관람했는데, 요즘은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에 따라 관람객을 하루 300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컴퓨터박물관의 소장품은 7천여점에 이른다. 전시품은 이 가운데 1800점이다. 대부분 ‘컴퓨터와 게임의 역사를 함께 조망함으로써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기술의 근원을 이해하는 동시에 다가올 미래를 구체적으로 상상해볼 수 있는 공간’이란 컴퓨터박물관 운영 취지에 공감하는 이들로부터 기증받았다. 미국 실리콘밸리 컴퓨터히스토리뮤지엄과 로체스터 스트롱뮤지엄에 비해 소장품 규모는 작지만, 색다른 재미가 있다.

더글러스 엥겔바트가 개발한 최초의 마우스(1964년).

어떤 이들은 박물관이라고 하면 학교 시절 ‘숙제’를 떠올리며 불편해하기도 하지만, 이곳에선 그럴 필요가 없다. 최 관장은 “엄마가 추억의 아케이드게임에 빠져 있는데, 아이가 그만하고 가자고 조르니까 뭐라는 줄 아냐. ‘엄마 바쁘니까, 딴 거 더 하고 와’ 라고 하더라. 보통은 거꾸로 아니냐”며 “추억여행을 한다는 설렘을 갖고 오라”고 말했다. 김정주 대표가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교보문고에 갔다가 컴퓨터를 접하고 지금의 진로를 밟게 된 것처럼, 아이들에게도 영감을 받을 기회를 주고 싶다”며 준 지침대로, 이곳에선 함께 혹은 따로 체험하고 즐기는 게 우선이다. 소장품을 기증받는 원칙도 ‘동작돼야 한다’이다.

실제로 이곳에선 혼자 내지 연인끼리, 혹은 2~3대로 구성된 가족들이 컴퓨터·게임·주변기기·휴대전화 등의 발전사를 보며 옛 추억을 맘껏 발산할 수 있다. 갤러가 등 아버지 세대가 어릴 적 오락실서 즐기던 컴퓨터 게임, 일반 사용자들에게는 사실상 첫 개인용컴퓨터로 기억되는 ‘286 컴퓨터’, 업무용으로 받은 개인용컴퓨터를 사용하기 위한 타자연습용으로 쓰던 ‘한메타자’ 프로그램 등을 자녀들과 함께 즐겨볼 수 있다. “이게 말이야…”라고 당시 추억을 떠벌리고, 아버지·아들·손자가 아케이드게임이나 한메타자로 음료수 내기 한판을 벌여볼 수도 있다.

상업적으로 성공한 최초의 개인용컴퓨터 ‘알테어 8800’(1975년).

휴대전화 코너에서는 1990년대 중반 이동전화 서비스 초기 때 단말기들을 볼 수 있다. 중년 부부들이 연애 시절 서로 골라주고 함께 사용하던 단말기들의 앙증맞은 모습을 보며 옛이야기를 이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와, 이런 게 여기 있네”라는 감탄사가 쏟아지기도 한다. ‘넥슨 아카이브’ 코너에선 넥슨 게임을 즐겨온 이들이 그동안 이용한 게임의 캐릭터 이름과 사용자 이름(아이디) 등을 카드결제 영수증 모양의 종이에 인쇄해 길이를 견주는 방식으로 넥슨 게임에 대한 ‘충성도’를 측정해볼 수 있다. 지금까지는 130㎝가 최고다. 한가지 주의할 점은 함께 게임을 즐기던 사람 것도 인쇄된다는 점이다. 부부 관람객이 이를 해봤다가 ‘유나 사랑해’란 아이디가 나와 대판 싸웠다는 얘기도 있다.

세계 최초의 상업용 비디오 게임기 ‘퐁’(1972년).

‘원조’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1976년 만든 첫번째 컴퓨터 ‘애플Ⅰ’, 상업적으로 성공한 최초의 개인용컴퓨터 ‘알테어 8800’(1975년), 더글러스 엥겔바트가 1964년 개발한 최초의 마우스 ‘엥겔바트 마우스’, 1972년 나온 최초의 상업용 비디오게임 ‘퐁’ 등을 볼 수 있다. 마우스의 작동 원리와 왜 그런 이름을 갖게 됐는지 등 컴퓨터 기기에 대한 지식과 역사도 볼 수 있다.

관람 끝머리에선 가족끼리, 친구끼리, 연인끼리 이벤트를 해보는 것도 괜찮다. 마음을 담아 전하고 싶은 말(단어)을 컴퓨터 언어(0과 1)로 변환한 팔찌를 만들어 서로 선물하는 것이다. 각각 0과 1을 나타내는 다른 색깔의 구슬이 꿰어진 팔찌에 메시지가 담긴다. 부모님이, 아내가, 남편이, 자식이 선물해준 팔찌의 뜻을 알아보고 싶어 컴퓨터박물관을 다시 찾을 수도 있다. 예약해야 관람할 수 있다.

제주/김재섭 선임기자 겸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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