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너무 뜨거워서, 소송?'..무차별 줄소송에 비용전가 우려도

입력 2020. 9. 29. 09:21 수정 2020. 9. 29.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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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성 민감도 높은 식품업계 우려 커져
블랙컨슈머 이미 빈번..소송남발 불보듯
기업이미지 훼손..영세업체 직격탄
각종 경영비용 소비자에 전가 우려도

[헤럴드경제=이혜미·김빛나 기자] #.2013년 미국 써브웨이는 ‘풋 롱’(12인치) 제품의 길이를 속였다며 과장광고 혐의로 법원에 피소됐다. 한 소비자가 풋롱 샌드위치 길이를 줄자로 재봤더니 빵 길이가 2.5㎝ 짧았던 것이다. 써브웨이 측은 반죽 및 빵 굽는 과정에 따라 부풀기와 모양이 달라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공방은 써브웨이가 원고측 변호사 비용 등을 포함한 52만5000달러의 재판 비용을 부담하고, 집단소송에 참여한 9명의 원고에게 1000달러씩 보상금을 지급하는 내용의 합의문에 서명하는 것으로 2015년 마무리됐다.

#.2018년 캐나다 퀘벡주에 거주하는 한 남성은 맥도날드 세트 메뉴 ‘해피 밀’이 13세 이하 어린이에게 광고를 금지하는 주 법률을 위반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매장에 전시된 해피 밀 광고와 피규어가 아이들의 구매욕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졸라대는 바람에 2주에 한번은 이 메뉴를 먹어 수천달러를 쓰게 됐다고 남성은 주장했다. 이 소송은 2013년부터 해피 밀을 구매했던 사람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집단소송으로 규모가 커졌다.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먹는 소비자 [사진=연합뉴스]

법무부가 입법 예고한 집단 소송법 개정안과 상법 개정안이 소송 남발로 비용 발생은 물론 기업의 경영활동을 과도하게 위축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이 식품과 외식업계의 경우 ‘블랙 컨슈머’(악의적 소비자) 문제가 무차별 집단소송으로 확전될 수 있는데다, 이에 따른 관리비용 등이 제품 가격에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소비자를 위한다는 정책이 오히려 소비자에게 화(禍)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블랙 컨슈머’ 중심 소송남발 불보듯

특히 식품안전성에 대한 사회적 민감도가 높다는 점에서, 집단소송제 도입에 대한 식품·외식업계 우려는 더욱 크다. 이미 블랙 컨슈머(악의적 소비자) 문제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상황에서 집단소송제 확대로 인한 소송 남발이 불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소송 대응 여력이 없는 중소·중견기업은 그야말로 존망(存亡)의 기로에 내몰릴 수 있다고 업계는 입을 모은다.

식품기업 A사 고위 관계자는 “집단소송제 및 징벌적 손배가 시행될 경우 불필요한 소송이 남발될 것이고 이로 인해 기업 본연의 활동이 위축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되고 있는 가운데 31일 오후 서울 성동구의 한 프랜차이즈형 커피전문점을 찾은 시민이 포장주문한 커피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실제 배상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기획소송 제기만으로도 기업 입장에선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제조사 과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돼도 한번 훼손된 기업 이미지와 신뢰는 회복이 어렵기 때문이다.

과거 제조사 무혐의로 드러난 식품 이물질 혼입 사건의 경우에도, 이슈 자체만 기억에 남아있지 사건 전말은 잊혀진 경우가 많다. 그로 인해 수십년간 쌓아올린 브랜드 이미지가 한 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는 것이다. 피해 액수는 계산되지도 않을 뿐더러, 누구한테도 보상받을 수 없는 입장이다.

외식기업 B사 고위 관계자는 “B2C(기업과 소비자간 거래) 기업, 특히 소비자에게 친숙하고 밀접한 관계 있는 브랜드의 경우 이미지가 생명과도 같다”며 “특히 식음료는 원가가 높고 상대적으로 마진이 적은 업종인데, 소비자 피해 보상하고 이미지는 이미지대로 훼손되고 하면 문 닫는 업체들이 속출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방어적 경영비용 증가 우려”

집단소송법 제정과 징벌적 손해 배상제 도입에 따라 법률비용 뿐 아니라 사전방지를 위한 경영비용도 크게 증가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에서 맥도날드는 한 70대 여성이 커피에 화상을 입은 데 대해 치료비 뿐 아니라 징벌적 손해배상금까지 지급한 바 있다. 일회용 컵에 ‘커피가 뜨거우니 조심하라’는 경고 문구를 삽입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화상 위험성을 알리지 않아 고의적으로 손해를 끼쳤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같은 사례에 비춰볼 때 커피 전문점의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을 피하려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각종 주의 문구를 커피잔에 새겨넣는 것은 물론, 종업원은 매번 손님에게 ‘엎지르면 다칠 수 있다’는 내용을 고지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선 이 모든 것이 비용인 셈이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은 기업대로 방어적 경영을 할 수 밖에 없고, 소비자들은 소송 등에 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며 “결국 서로 남는게 없는 건데 이 제도가 누구를 위한 제도인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기업은 사내 변호사를 두고 사전에 (계약 분쟁 등을) 예방하겠지만 중소기업은 로펌에 계속 큰 돈을 주고서 검토할 수 밖에 없다”며 “영세상공업자는 아예 그럴 기회도 적을 것이고 대응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기업 비용 증가…소비자에 전가 우려도

기업의 각종 비용 증가는 결국 소비자 몫이라는 점에서, 다수의 ‘선량한 소비자’가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도 우려 지점이다. 법률 비용이 제품이나 서비스 가격에 반영돼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것이다. 블랙 컨슈머처럼 제도를 악용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날 경우, 판매 관리비와 같은 비용이 올라갈 수 밖에 없어 이 부분도 가격인상 요인이 될 수 있다.

식품기업 C사 고위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선 소송비용은 물론이고 집단소송이나 징벌적 손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모든 과정에 다 비용이 발생하다보니, 불가피하게 이를 상품 가격에 반영하는 경우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ha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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