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간 라돈침대 사용 후 암 발병.. 이제라도 역학조사 해야"

정대희 입력 2020. 9. 29. 15:30 수정 2020. 9. 29.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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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팟인터뷰] 건강 피해 호소하는 김성이씨

[정대희 기자]

라돈침대 사용자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연구팀의 연구조사결과 라돈침대 사용자의 암 유병률이 일반인보다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4일 경기도청에서 열린 '라돈침대 건강피해 대책토론회'에서 방예원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연구원은 이런 내용을 발표하며, 라돈침대 사용자에 대한 역학조사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관련 기사 : 라돈 침대 사용자 암 유병률 일반인 2배... 전문가들 "역학조사 나서야")

라돈침대 사태 후 2년 4개월, 피해는 끝나지 않았다. 1급 발암물질 라돈을 사용한 매트리스는 수거됐지만 정부는 사용자에 대한 역학조사는 안 하고 있다. 사용자 건강과 관련해선 경기도가 오는 10월말까지 '라돈 발생 침대 사용자 건강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게 다다. 지난 18일, 라돈 침대를 사용한 뒤 건강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김성이(51)씨와 전화 인터뷰했다.

'좋은 침대'라고 해서 샀는데... 어느날 들려온 라돈 검출 뉴스
 
 지난 2018년 라돈 침대 사태 후, 김성이씨는 자신이 산 대진침대 매트리스(우)를 라돈아이로 측정한 결과 충격적인 수치(좌)를 확인했다.
ⓒ 김성이측 제공
 
김씨가 2011년에 산 라돈 침대의 이름은 '뉴웨스턴 슬리퍼(Q)'였다. 제부가 추천한 "가성비 좋은 침대"였다. 다른 회사 제품을 알아보던 중 "건강에도 좋다"라는 홍보 문구에 구매를 결정했다. 인터넷을 통해 약 100만 원가량을 결제하고 주문을 했다.

지난 2018년 5월, 세상이 떠들썩해졌다. 대진침대에서 1급 발암물질 라돈이 측정됐다는 언론보도가 잇따랐다. 6년간 자신의 방에 있다가 고등학생 아들 방으로 옮긴 침대의 모델명을 확인했다. 원자력안전위원회(아래 원안위)가 '연간 피폭선량 1밀리시버트(mSV)를 초과한 것으로 확인한 2010년 이후 생산된 대진침대 제품 총 7종'에 이름을 올린 제품이었다. 생활주변방사선 안전관리법에 따르면 가공제품에 의한 일반인의 피폭 방사선량 기준은 연간 1mSv를 초과해선 안된다.

하지만 매트리트 사양 정보 어디에도 '라돈'이란 낱말은 없었다. 매트리스의 쿠션재는 '경강선, 우레탄폼, 팜, 펠트, 부직포, 직물 외 기타'라고 적혀 있었다. 원단의 섬유 및 혼용률에도 '폴리프로필렌: 52.1%, 폴리에스터: 39.3%, 면: 8.6%'라고 쓰여 있을 뿐이었다. 원안위가 라돈 검출 이유를 '매트리스에 라돈 방출 물질인 모나자이트 분말을 입힌 것으로 조사됐다'라고 발표했지만 '모나자이트'란 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라돈을 확인하는 방법은 농도를 측정하는 것밖에는 없었다. 라돈은 무색, 무미, 무취의 자연 방사성 기체였다. 라돈 측정기 '라돈 아이'를 약 20만 원가량 주고 샀다. 처음엔 매트리스 위에서 측정했다. '98.1pCi/L(피코큐리)' 수치가 뜨며 경고음이 울렸다. 방 안도 측정해봤다. 78.1pCi/L을 기록했다. 국제 표준 단위(Bq/㎥)로 따져보면, 세계보건기구가 권장하는 기준의 36.5배, 우리나라 실내공기 기준의 약 25배에 달한다.

그는 "100만 원가량 주고 샀는데, 라돈 수치도 가격이랑 엇비슷하게 나와 놀랐다"고 했다. 의사인 제부는 라돈 농도 수치를 보고 "충격적인 수치"라고 했다. 인터넷 카페 '대진 침대 피해자 모임'에 들어가 보니 2011년 생산 제품부터 라돈 수치가 확 올라갔다. 그는 "몇 개월만 일찍 샀어도..."라고 늦은 후회를 했다.

라돈 매트리스는 그의 집에서 3개월째 방치됐다. 처음엔 해당 기업이 수거한다며 "다른 매트리스로 교체해주겠다"라고 제안했다. 그는 꺼림칙해 거절했다. 비닐로 매트리스를 꽁꽁 싸매 창고에 보관했다. 하지만 몇 날 며칠이 지나도 해당 기업은 감감무소식이었다. 언론보도를 보니 수거량이 상당해 정부가 우체국을 통해 수거할 예정이라고 했다. 정부의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1월에 유방암 진단... "정부가 역학조사 해야"
 
 지난 2018년 시민사회단체와 라돈침대 피해자들은 5일 서울 종로구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대진침대 피해 해결과 생활방사능 대책마련 촉구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의 조속한 피해 해결을 촉구했다.
ⓒ 박정훈
그는 올해 1월 병원에서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라돈 매트리스에서 6년간 잠자며 생활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순간, 억울한 감정이 샘솟았다.

자신과 같은 경우가 있는지 찾았다. 물어물어 환경보건시민센터를 알게 됐다. 여기서 라돈 침대 사용자들이 일반인들보다 암 발병률이 2배 이상 높다는 연구조사 결과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유방암 진단을 받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에겐 충격이었다. 경기도에서 진행중인 '라돈 발생 침대 사용자 건강 실태조사'를 신청했다.

"라돈 침대를 사용한 게 유방암의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걸 안다. 법적으로 이길 확률이 없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피해가 아예 없다고도 말 못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해당 기업이) 매트리스만 수거했을 뿐, 피해자들을 위해 한 조치가 없다. 최소한의 도의적 책임이라도 져야 하는 게 아닌가.

라돈 침대 사태는 제2의 가습기살균제 참사다. 수거된 매트리스만 10만 개가 넘는다. 원폭 피해자와 다른 게 없다. 그러나 정부는 아직 제대로 된 역학조사를 하지 않았다. 라돈 침대 사용자에 대한 건강 피해 여부를 조사해 원인도 모르고 병을 앓고 있는 피해자가 없도록 이제라도 정부가 역학조사를 해야 한다."

김씨의 말처럼 유방암 발병 원인을 '라돈 침대 사용'으로 단정하긴 어렵다. 미국환경 보호청이 2003년부터 축적한 자료를 이용해 연구한 결과 연간 2만 1000명(폐암 사망자 중 10%) 이상이 주거 공간의 라돈에 의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우리나라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과 한국 환경정책평가연구원도 전체 폐암환자 가운데 12%가 라돈 노출에 의한 경우로 추산하고 있다. 유방암과의 연관성에 대해선 아직 충분히 연구된 게 없다. 다만, 지난 14일 서울대 보건대학원이 내놓은 연구조사결과를 보면, 라돈침대 사용자의 유방암 발병률이 일반인보다 1.2배 높았다.

백도명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는 "(김씨가 측정한) 매트리스의 라돈 수치가 98.pCi(피코큐리)이면 엄청 높은데, 라돈은 측정 환경도 중요하기 때문에 정확한 수치인지는 따져봐야 한다"면서 "다만, 피폭 가능성이 있는 방사성 물질이 매트리스에서 나왔다는 게 중요하다. 원안위는 일정한 방사선량 이하는 '저선량'이라고 인체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 이야기하지만 그렇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역학조사의 필요성에 대해 원안위 관계자는 "(라돈 발생 침대 사용자의 건강 실태조사를 진행 중인) 경기도와 소통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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