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력 6만에 불과한 호주, 220조원 국방비 쏟아붓는 이유

유용원 군사전문기자·논설위원 2020. 9. 30.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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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원의 군사세계] 중국을 잠재 적국으로 보고 병력 증강
미국·일본·인도 등과 협력 강화

지난 3일 호주 국방부는 K9 자주포를 생산하는 한화디펜스를 호주 육군 현대화 프로젝트 중 하나인 ‘랜드(Land) 8116’ 자주포 획득사업의 우선 공급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1조원 규모의 이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K9 자주포 30문과 K10 탄약 운반 장갑차 15대, 기타 지원 장비 등을 호주에 수출할 수 있게 된다.

/그래픽=김성규

앞서 한화디펜스는 지난 7월 말 미래형 장갑차 ‘레드백(Redback)’의 호주 출정식을 열었다. 레드백은 호주 장갑차 사업의 최종 2개 후보에 올라 시제품 2대가 호주로 향하기 전 출정식을 가진 것이다. 호주 육군의 궤도형 장갑차 사업 규모는 5조원에 달한다.

우리 국산 무기들이 호주 시장에 진출하게 된 것은 호주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대규모 전력 증강 사업들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호주 정부는 지난 7월 초 ’2020년 국방전략 갱신'(Defense Strategic Update)과 ’2020 국방구조계획'(2020 Force Structure Plan)을 발표했다. 이 계획에 따르면 호주는 2030년까지 10년간 2700억 호주달러(223조원)의 국방비를 투자할 계획이다. 10년간 매년 22조원대의 국방비를 투입하는 셈이다.

호주는 우리와 달리 가까운 곳에 북한과 같은 현존 위협이 없는 나라다. 그렇다 보니 정규군 총병력도 약 6만명에 불과하다. 육군 2만9000여명, 해군 1만5000여명, 공군 1만4000여명이다. 예비군도 2만7400명 정도다. 한국군 총병력(56만명)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금년도 국방비는 32조원으로 우리 국방비(50조원)의 60여% 수준이다.

호주군의 전력 증강 계획 세부 내용을 보면 북한과 대적하고 있는 우리나라를 뺨칠 정도다. 육해공군은 물론 우주·사이버 분야까지 방어용은 물론 장거리 공격용 무기도 망라돼 있다. 향후 10년간 45조5000억원의 돈이 투입되는 육군 전력 증강에는 우리 K9 자주포와 레드백 장갑차가 들어있는 신형 보병전투장갑차 사업과 자주포 사업, 미국제 에이브럼스 전차 개량 계획 등이 포함돼 있다.

해군에는 62조1000억원이 투입된다. 12척의 신형 공격용 잠수함을 비롯, 캔버라급 강습상륙함(경항모) 2척, 호바트급 이지스함 등을 도입했거나 도입할 예정이다. 공군도 53조8000억원을 투입, F-35A 스텔스기 72대, 스카이 가디언 무인정찰기, 전자전기 등을 도입한다. 호주가 도입 중인 F-35 숫자는 우리 공군이 내년까지 도입할 40대보다 32대나 많다.

유용원 군사전문기자·논설위원

직접적인 군사적 위협이 없는 호주가 왜 이렇게 많은 돈을 써가며 전력 증강에 열을 올릴까? 호주판 국방백서인 ’2020년 국방전략 갱신'에 그 해답이 숨어 있다. 이 책엔 중국을 사실상의 잠재 적국으로 간주하는 표현이 들어있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호주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보지 못한 지역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며 중국의 부상에 대응하기 위한 적극적인 방어 전략을 채택할 것임을 밝혔다. 중국이 남중국해에 인공섬들을 만든 것 등이 호주를 자극했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에 대한 호주의 정면 대응은 구조적으로 어려운 면이 있다. 중국이 호주의 최대 무역국이고 호주 수입 공산품의 25%가 중국산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자국(自國)과 멀어지고 미국과 밀착하려는 호주를 길들이려고 집요한 유형, 무형의 압박을 가했지만 호주는 굴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호주 혼자서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호주는 미국은 물론 일본·인도 등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들 4국은 미국이 중국에 대응해 구축한 전략다자안보협의체 ‘쿼드’(Quad) 국가들이다. 이들은 수시로 연합 해상훈련 등 중국을 겨냥한 4국 연합훈련을 벌이고 있다. 호주는 이른바 ‘파이브 아이스’(Five Eyes) 일원이기도 하다. 파이브 아이스는 미국·영국·호주·뉴질랜드·캐나다 등 5국 정보협력체를 일컫는 말이다. 영화에도 등장한 호주 내륙 파인 갭의 미·호주 공동 운영 대규모 감청시설은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의 중국군 움직임 등을 감시한다.

이런 호주의 전략은 미·중 두 강대국의 패권 경쟁 사이에 끼인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과거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르는 ‘도광양회’(韜光養晦) 를 덕목으로 삼던 중국은 이제는 노골적으로 ‘전랑(戰狼·늑대 전사) 외교’를 펼치고 있다. 전랑 외교는 중국의 인기 영화 제목인 ‘전랑’에 빗대 늑대처럼 힘을 과시하는 중국 외교 전략을 지칭하는 말이다.

미국은 미국대로 동맹국들을 끌어모아 대중 연합전선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미국은 ‘쿼드’에 한국 등 아시아 주요 국가들을 참여시키는 ‘쿼드 플러스’를 추진하고 있다.

이에 맞춰 미국의 대중 연합전선 참여에 대한 압박도 거세지는 모양새다. 마셜 빌링즐리 미 대통령 군축담당 특사는 지난 28일 국내 언론과의 기자회견에서 “한국도 중국이 ‘핵으로 무장한 깡패(nuclear armed bully)’로 부상하는 걸 내버려둘 수 없다는 점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했다. 중국에 대해 공개적으로 ‘핵깡패’라고 언급한 것이다.

다음 달에는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에 이어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방한할 전망이다. 과거엔 우리의 이른바 ‘모호성 전략’에 대해 두 나라가 모른 척 넘어가 주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두 나라 모두 우리에게 “그래서 당신은 누구 편에 서겠다는 것이냐”고 따져 물을 판이다. 두 강대국으로부터 양자택일을 강요받을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다. 호주의 생존 전략과 자세가 더욱 가슴에 와닿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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