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오스크와 눈싸움만 수십분.. '디지털 문맹'이 서러운 6070 [언택트 시대, 소외된 노인들]

박지원 2020. 9. 3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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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게 왜 3개나 들어갔지."

서울에 사는 구응서(63)씨는 지난 23일 서울역에서 지방으로 가는 친구를 배웅하고 인근의 한 카페를 찾았다.

메뉴 화면에서 딸기주스를 선택한 구씨는 '장바구니' 단계에서 또다시 고민에 잠겼다.

스마트폰 결제, QR코드, 키오스크.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2030'에겐 '쉽고 빠른' 많은 것들이 노인들에게는 높은 '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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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버튼 저 버튼 누르며 '진땀'
등 뒤로 긴 줄.. 따가운 시선들
"주스 한잔 마시기 너무 어려워"
고령층 정보화 수준 64% 불과
“아니, 이게 왜 3개나 들어갔지….”

서울에 사는 구응서(63)씨는 지난 23일 서울역에서 지방으로 가는 친구를 배웅하고 인근의 한 카페를 찾았다. 카페에는 직원 3명이 있었지만 주문은 매장에 설치된 키오스크(무인주문결제기)를 통해서만 가능했다. 몇 년 전 국밥집에서 딱 한 번 무인결제기를 써본 뒤 복잡하고 어렵다는 생각에 이후로는 이용하지 않았던 그다. 구씨는 어쩔 수 없이 앞선 사람이 무인결제기를 사용하는 모습을 어깨 너머로 익힌 뒤 기계 앞에 섰다.

구씨는 첫 화면을 보고 멍해졌다. 구씨가 처음 맞닥뜨린 화면에는 음료 메뉴가 뜨지 않고, 대신 앞선 이가 한 주문의 ‘결제완료’ 창이 떠 있었다. 어떤 버튼을 눌러야 할지 몰라 이곳저곳을 누르며 한참 허둥댄 끝에 간신히 해당 화면을 빠져나왔다.

메뉴 화면에서 딸기주스를 선택한 구씨는 ‘장바구니’ 단계에서 또다시 고민에 잠겼다. 장바구니에 넣은 메뉴를 결제하는 방식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제방법을 찾지 못해 장바구니 화면과 메뉴 화면을 넘나들기를 반복하는 사이 장바구니에는 원하는 수량의 3배인 딸기주스 3잔이 담겼다. 금액은 1만3900원. 예상을 넘는 금액과 등 뒤로 길어진 줄에 당황한 그는 결국 옆에 서 있던 기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글씨는 알아볼 수 있는 크기였지만 취소를 뜻하는 ‘X’ 표시를 찾기 어려웠다. 또 장바구니는 무엇인지, 결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며 “옆에서 알려주는 사람이 있으면 할 수 있겠지만, 사람이 계산해 주는 매장을 찾아가지 (앞으로도) 무인결제기를 이용할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스마트폰 결제, QR코드, 키오스크….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2030’에겐 ‘쉽고 빠른’ 많은 것들이 노인들에게는 높은 ‘벽’이다. 어제는 직원과 얼굴을 마주하고 말로 주문할 수 있었던 딸기주스 한 잔도 키오스크가 점령한 오늘의 카페에선 마시기 버거운 음료다.

노인들과 다른 세대 간에는 이미 ‘정보화 격차’의 간극이 깊게 파여 버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촉발한 ‘언택트(비대면) 사회’는 노인들이 처한 정보소외 상황을 더욱 선명히 드러내고 있다. 결국 스마트 기기를 마주한 어르신들 상당수는 ‘배움’ 대신 ‘포기’라는 결말을 택하고 만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9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일반국민의 정보화 수준을 100%로 놓고 봤을 때 고령층의 정보화 수준은 64.3%에 그친다. 통계청은 디지털 정보 격차가 단순한 ‘격차’에서 끝나지 않고 인식과 생각, 문화 등 사회적 격차로 확대돼 ‘소외’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박지원·이종민 기자 g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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