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용 "유엔 연설 미룰 수 있는데 강행한 청와대, 무책임·무능해"

이상헌 2020. 10. 1.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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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1차관·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 거친 외교통의 분석
"문 대통령, 3시간의 골든타임 놓쳤다"
조태용 국민의힘 의원이 29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북한의 우리 공무원 사살 사건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종전선언 제안을 담은 문재인 대통령의 유엔 총회 연설은 사정이 생기면 연기를 하거나 취소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다. 우리 국민이 북한군에 사살당한 사실만으로도 대북정책 기조 전체를 바꿔야 할지 모르는 사건인데, 청와대가 유엔 총회 연설을 그대로 강행한 건 무책임하고 무능하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와 정보위원회 소속인 조태용 국민의힘 의원은 29일 국민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북한의 우리 공무원 이모(47)씨 사살 사건 관련, 문재인정부의 안이한 대처에 이 같은 직격탄을 날렸다. 정통 외교관 출신인 그는 대북 메시지가 핵심인 유엔 총회 연설을 청와대가 아무 수정 없이 강행한 것을 문제 삼았다. 이씨 사살 사건을 청와대가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종전선언 제의 메시지를 담은 연설을 수정하거나 취소하지 않은 건 외교 안보 시스템 실패라는 지적이다. 조 의원은 외교부 1차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 등을 역임한 외교 전문가다.

종전선언 제안을 담은 유엔총회 연설이 시작된 시간은 23일 오전 1시26분이다. 문 대통령 연설 영상은 이보다 빠른 15일에 녹화 완료돼 18일 유엔에 발송됐다. 청와대는 22일 밤 10시30분 ‘북한이 월북 의사를 밝힌 이씨를 사살한 뒤 시신을 훼손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조 의원은 “청와대가 22일 밤 입수한 첩보 내용만으로도 대북정책의 판갈이가 필요한 사건”이라며 “23일 새벽에 열린 긴급 안보관계장관회의에서 유엔 총회 연설을 그대로 내보낼지, 연기해야 할지 등을 논의해야 했지만 주무 부처 장관인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회의에 참석조차 하지 않아 제대로 된 건의도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엔 총회 기간 기조연설(General Debate)은 22~29일에 진행됐기 때문에 순서를 뒤로 미루는 게 가능했지만, 우리 정부는 아예 검토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앞서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유엔 총회 연설과 관련 “(이씨 관련) 정보의 신빙성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유엔 총회 연설을 수정하거나 (취소)하는 판단을 할 수 없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일각에선 문 대통령의 연설이 이뤄진 23일 새벽은 유엔 총회 첫날이라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높았고, 이에 청와대가 연설 취소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관측도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오전(한국시간) 미국 뉴욕 유엔총회장에서 열린 75차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영상으로 전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 의원은 이씨 관련 최초 보고 후에도 특별한 지시를 내리지 않은 문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이씨가 북측 해상에서 발견됐다는 첫 첩보를 서면 보고받은 게 22일 오후 6시36분이었다”며 “그런데 문 대통령은 어떤 대책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필요한 모든 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했다면 국정원, 군 당국 등 모든 부처가 움직여 이씨의 송환을 북한에 선제적으로 요구했을 수도 있었다”며 “우리가 당시 상황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북한에 알리기만 했어도 북한이 방아쇠를 당기기가 아주 어려웠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 의원은 지난 2011년 이명박정부의 ‘아덴만 여명작전’을 거론하며 “절대 쉬운 작전이 아니었지만 대통령이 의지를 가지고 구출할 수 있냐는 질문을 던지니 군에서 방법을 만든 것 아니겠냐”고 했다. 우리 국민을 반드시 구하겠다는 군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의지가 있으면 군의 대처가 다를 수 있었다는 얘기다. 조 의원은 서면 보고 후 이씨에 대한 총격이 이뤄지기까지 3시간의 골든타임을 문 대통령이 놓친 것을 치명적인 초동 대응 실패로 규정했다.

조 의원은 국가정보원과 북한 노동부 통일전선부 간 물밑채널이 유지됨에도 우리 측이 이씨의 행방을 북한에 문의조차 하지 않은 점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청와대는 앞서 지난 25일 문 대통령이 8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냈고, 김 위원장이 이 채널을 통해 나흘 뒤인 12일 답전을 보내왔다고 밝혔다.

조 의원은 “그 채널을 통해 행방을 물어볼 수도 있었는데, 활용하지 않은 건 ‘사람이 먼저다’는 문재인정부의 국정 철학이 무색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재인정부는 북한 관련 문제만 나오면 제대로 대응을 못 하고 고장 난 정부”라고 맹비난했다.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25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남북한 현안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 의원은 북한 통지문에서 김 위원장이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사과한 것에 대해 “진정성은 느낄 수 없다”고 혹평했다. 그는 “북한 최고 지도자의 사과가 전례 없이 드문 일은 맞다”면서도 “통지문 내용을 전반적으로 신뢰할 수 없고, 이후 자신들의 수역을 침범하지 말라는 입장을 낸 것을 보면 사과의 진심은 없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조 의원은 문 대통령의 북한 통지문에 대한 평가도 직격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8일 수석·보좌관회의 회의에서 북한 통지문에 대해 “북한의 분명한 의지 표명” “각별한 의미” “매우 이례적인 일” 등의 표현을 썼다. 조 의원은 “문 대통령의 발언에는 우리 국민이 희생당했음에도 가해자가 없다”며 “가해자가 사격한 사실은 없고, 가해자가 미안하다고 한 얘기만 있는데 정말 참담하다”고 말했다.

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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