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호흡기 달고 추석 맞은 '라면 형제' 3주째 중환자실

고석태 기자 2020. 10. 1.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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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코로나 때문에 명절 분위기가 예년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추석인데 애들이 너무 안됐어요. 맛있는 것도 못먹고...” 29일 인천 미추홀구 용현시장에서 만난 한 중년 여성은 ‘라면 형제’ 얘기를 건네자 금세 눈시울이 붉어졌다.

인천을 넘어 전국의 부모를 울린 인천 미추홀구 용현동 화재 피해 형제들은 화재 발생 보름이 지났지만 여전히 병원 중환자실에 있다. 지난 25일 잠시 눈을 뜨고 주변 자극에 반응했던 형 A(10)군은 다음날부터 다시 눈을 감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생 B(8)군은 형에 비해 화상은 덜하지만 연기를 마셔 상태가 더 안좋다. 경찰 관계자는 “변동이 없다. 여전히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호흡을 하고 있고 의식도 돌아오지 않았다”고 전했다.

형제는 지난 14일 오전 11시 10분쯤 인천시 미추홀구 4층짜리 빌라의 2층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으려다가 일어난 화재로 중화상을 입었다. 형은 안방 침대 위 아동용 텐트 안에서 화상을 입은 채 발견됐고, 동생은 침대 옆 책상 아래 좁은 공간에 있다가 다리 등에 화상을 입었다. 형인 A군이 동생 B군을 책상 아래 좁은 공간으로 몸을 피하게 하고 이불로 방어벽을 만들어 준 것으로 추정됐다.

◇"돌봄 사각지대 아이들 돌아보는 계기 됐다"

형제 화재 사건은 우리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보호자의 따뜻한 돌봄을 받지 못하는 돌봄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을 더 이상 내버려 둘 수 없다는 여론이 높다. 인천시도 인천시교육청 및 인천경찰청과 합동으로 아동학대 긴급 전수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A군 형제를 담당했던 미추홀구 드림스타트 부서 직원들도 요즘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 자신들이 담당하는 가정에 대해 일일이 재점검 지시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 일수도 있지만 이런 일을 계기로 주변을 다시 돌아보는 것도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드림스타트 직원 1인당 사례 관리는 75.7건. 직원 한 명이 80명 가량의 아이들을 담당한다는 얘기다. 한명 한명 세세히 살피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초등생 형제가 라면을 끓여 먹다 화재가 발생한 인천시 미추홀구 한 빌라 외벽이 검게 그을려있다./연합뉴스

◇엄마는 2년간 58차례나 상담...“극도로 예민한 상태”

A군 형제 엄마 C(30)씨는 미추홀구 드림스타트 직원들과 비교적 원만한 관계였다고 한다. 2018년6월 관리 대상으로 지정된 이후 모두 58회나 사례관리사와의 상담이 진행됐다. 그만큼 C씨와 드림스타트 사례관리사 사이에 신뢰 관계가 형성돼 있었다는 게 미추홀구 관계자 얘기다. 담당 사례관리사는 C씨가 기초생활수급자이면서 자활근로 대상자라 집에 머무를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을 돌봄교실 보내는 것을 추천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이마저 여의치 않았다는 것이다.

미추홀구와 경찰에 따르면 C씨는 극도로 예민한 상태로 언론과의 접촉을 삼가하고 있다. 인천시 아동보호전문기관이 C씨에 대해 세 차례 방임 혐의로 신고를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C씨에 대한 비난 여론이 비등하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아이들 엄마가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나. 그런데도 여론은 무책임한 엄마로 몰아부치고 있다”고 안타깝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보호자 권리 제한하자는 여론

정치권에선 무책임한 보호자의 양육권을 제한하는 법 제정이 추진되고 있다. 미추홀구가 지역구인 민주당 허종식 의원은 아동이 보호자로부터 학대 받는 경우 지자체장이 아동을 보호자로부터 분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아동복지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아동학대 신고 등을 통해 보호자에 의한 학대가 의심되고 재학대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지자체장이 아동복지심의위원회의 보호조치에 관한 결정이 있을 때까지 아동을 보호자와 즉시 분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아동복지심의위는 지자체장이 관할구역의 보호 대상 아동을 발견해 보호조치를 할 때 이와 관련한 사항을 심의하는 기능을 한다.

◇물밀듯 밀려드는 형제를 향한 온정의 손길

형제를 돕기 위한 국민들의 성금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학산나눔재단에 따르면 형제를 위해 써달라며 지정 기탁한 성금은 벌써 1억2000여만원에 이른다. 약 700건의 신청이 들어왔다. 재단 관계자는 “성금은 미추홀구청 등 관계 기관의 복지 부서와 협의해 사용처를 정할 예정”이라면서 “병원 치료비가 급할 것으로 생각된다. 병원에서 청구가 들어오면 중간 정산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한편 지자체와 일부 사회기관은 엄마 C씨가 형제를 간호하기 위해 서울에 머무를 수 있도록 체재비 용도로 약 200여만원을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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