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쓰레기를 왜 우리 동네에" 2800억 발전소 3년째 멈춰 있다

김성현 기자 2020. 10. 1.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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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SRF발전소, 손실보전 협상 두 달 연장
협상 주체 간 입장차이 커 타결 전망 불투명
나주 SRF 열병합발전소. /연합뉴스

전남 나주시 산포면 신도산업단지에 위치한 나주 SRF(고형폐기물) 열병합 발전소. 인근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빛가람혁신도시)에 전력과 열(난방)을 공급하기 위해 건설됐다. SRF 열병합 발전소란 플라스틱 쓰레기와 폐비닐 등 생활 폐기물로 만든 고체 재생연료인 SRF를 태워 열과 전기를 생산하는 시설을 말한다.

한국난방공사가 2800억원을 들여 지난 2017년 12월 완공한 이 발전소는 3년이 다 되도록 가동을 못하고 있다.

혁신도시 등 인근 지역 주민들은 SRF를 ‘쓰레기 연료’라며 이를 태울 경우 다이옥신 등 독성 물질이 배출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하며 가동을 반대했다. 또 광주광역시에서 생산된 SRF를 들여와 발전 연료로 사용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한국난방공사와 나주시·주민 등이 대립했다.

이같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 해 전남도와 나주시, 산자부, 한국난방공사, 범시민대책위(주민 측) 등이 ‘나주 SRF발전소 민관협력 거버넌스 위원회(이하 거버넌스)’를 꾸렸다. 거버넌스는 수 차례 협의 끝에 지난 해 9월 26일 어렵사리 1단계 기본합의서를 체결했다.

합의서 내용은 시험가동을 통한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해 보고서를 채택한 뒤, 주민 수용성 조사를 실시해 발전소 연료로 SRF와 LNG(액화천연가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고 2단계 부속합의서를 체결하도록 되어 있다. 단, 주민 수용성 조사에 앞서, SRF 연료를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될 경우 한국난방공사의 손실을 보전할 방안을 먼저 마련하도록 했으며, 1단계 합의서 체결 후 1년 이내에 부속합의서를 마련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달려 있었다.

나주 SRF 열병합발전소 민관협력 거버넌스 기본합의서 체결. /연합뉴스

이후 발전소 시험가동과 환경영향평가가 순조롭게 이뤄져 지난 7월 9일 조사보고서 채택까지 마무리 됐다. 당시 환경 분야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환경영향조사 전문위원회는 시민 참여 속에 열병합발전소를 3개월간 시험 가동해 6개 분야 66개 항목에 대한 환경영향조사를 실시, 모두 법적 기준 이내인 것으로 확인된 조사 결과를 최종보고서로 채택했다.

주민 수용성 조사는 7차례 실무협의를 거쳐 발전소 반경 5km 내 법정 동리 3만4000여 명(남평읍, 금천·산포·다도·봉황면, 영산·빛가람동)을 대상으로 주민투표 70%와 공론조사 30%로 진행하기로 이미 합의해 놓은 상황이라고 전남도는 전했다.

하지만, 주민 수용성 조사를 위한 전제 조건인 손실보전방안 마련을 위한 협의는 벽에 부딪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당초 연료로 사용할 예정이던 SRF를 사용하지 못하게 될 경우 한국난방공사가 입을 손실을 누가 얼마나 보전해야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데 산자부와 전남도, 나주시, 한국난방공사 등 논의 주체 간 입장 차가 커 쉽사리 논의가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1단계 기본합의서 채택 후 1년 시한(9월 25일)이 다가와 합의가 원천무효가 될 위기에 처하자 지난 달 23일 민관협력 거버넌스는 손실보전 협상 시한을 오는 11월 30일까지 두 달 연장하기로 합의했다.

전남도는 협상 시한 연장에 대해 “그동안 수차례 실무 협의에도 불구하고 한국난방공사의 손실 보전을 위한 대안사업 찾기가 쉽지 않아 난항을 겪어왔다”며 “그동안 실무협의회에서 논의해오던 손실보전방안 협상을 거버넌스 위원회로 격상해 논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도는 또 손실보전 방안으로 △열병합발전소 부지내에 수소연료전지 설치운영 및 발생한 열을 한난에 무상 공급 △열요금 인상 △열 공급용 도시가스 공급비용 인하 △전남도와 나주시 소유 유휴부지를 활용한 태양광 발전사업 추진 △6개 시·군 소각시설 설치에 대해 국고보조금을 50%에서 70%로 상향 지원 건의 △3개 시(목포·순천·나주)의 SRF 생산시설 활용 등 6개 방안에 대해 중점 논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일단 파국은 면했으나 남은 두 달 동안 손실보전 방안 마련에 합의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는 지적이다.

우선, 범시민대책위 집행부는 협상시한 연장 합의문에 ’11월 30일까지 손실보전 방안을 마련하지 못할 경우 열 공급은 한국지역난방공사의 재량에 맡긴다'는 표현이 기본합의서 내용에 반한다는 이유를 들어 합의안 추인을 거부했다. 집행부의 추인 거부로 인해 합의서에 서명을 한 범대위 공동위원장이 사퇴해, 향후 협상 테이블이 정상화될 수 있을지 우려를 낳고 있다.

또, 한국난방공사 측은 주민 수용성 조사에서 발전소 연료로 SRF가 아닌 LNG가 선택될 경우, SRF 발전설비 매몰 비용 1500억원을 비롯, SRF를 생산해 발전소에 공급하기로 계약한 광주 SRF 생산시설 매몰 비용, 향후 20년간 발전소 운영 손실, 전남 3개 시에 건설한 전(前)처리시설 비용 등을 포함해 손실 비용을 9000여억원으로 추산했다.

하지만, 전남도와 나주시 등 다른 협상 주체들의 입장은 다르다. 전남도 관계자는 “한국난방공사 측이 손실액으로 추산한 금액이 과중해 이를 보전할 만한 대안을 찾기 어렵다”며 “협의 주체들이 먼저 손실 보전 범위에 대한 기준부터 마련해야 하지만 지금까지 평행선만 달려 왔다”고 말했다.

한국난방공사 측은 “2년 이상 발전소 가동을 못해 적자가 계속되면서 주가가 떨어지고 주주들이 항의하는 등 경영 전반에 어려움이 크다”며 “전남도와 나주시 등이 구체적인 손실보전을 위한 대안을 제시하면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전남도는 “기관마다 (손실보전에 대한)인식이 달라 협상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는 점에는 공감하고 있다"며 "추석 연휴 이후에는 5개 참여 기관이 한층 적극적인 자세로 협상에 임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 섞인 전망을 내놨다.

이민원 거버넌스 공동위원장도 “어렵게 연장 합의가 이뤄진 만큼 한국난방공사와 범대위를 비롯한 거버넌스 참여기관과 긴밀해 협조해 손실보전 방안에 대해 조속히 합의점을 찾아 부속합의서를 작성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만일 남은 기간 민관협력 거버넌스 참여 주체들 간 협상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경우, 기본합의서는 무효가 되고 3년을 끌어온 갈등은 원점으로 돌아간다.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민·관이 머리를 맞댄 정책 실험도 실패로 남게 된다.

반면, 민관협력 거버넌스가 다행히 11월 말까지 합의안을 도출하면, 나주열병합발전소 가동을 둘러싼 갈등은 일단락될 수 있다. 하지만, 주민 수용성 조사에서 SRF를 연료로 사용하지 않는 쪽으로 결론이 날 경우에는 한국난방공사가 투자한 SRF 발전설비와 SRF 연료 생산시설 등이 무용지물이 되고, 이에 따른 손실 보전을 위한 예산 투입 등 잘못된 정책으로 인한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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