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인이 로또 1등 되자, 가족같던 지인 부부가 변했다

우정식 기자 2020. 10. 1.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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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처럼 친하게 지내다 복권 당첨금 문제로 앙숙이 된 사연
로또/연합뉴스

한글도 모르는 60대 지적장애인을 속여 로또 1등 당첨금 일부를 가로챈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증거 부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았던 부부가 항소심에서는 실형을 선고받았다. 10년 넘게 친하게 지내다가 앙숙으로 돌변한 이들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서울 성북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A(여·65)씨 부부는 식당 손님으로 오던 C(65)씨와 2004년경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식당 인근 여인숙에 거주하면서 일용직 근로를 하던 C씨는 A씨와 부부의 식당에 자주 와 식사하면서 이들과 친분을 쌓았다. C씨는 선천성 지적기능 발달 지연으로 지적장애 3급 장애가 있었다. 사회연령이 13세 수준인 C씨는 문맹(文盲)인 탓에 은행에서 돈을 찾을 때면 지인이나 은행 직원에게 비밀번호를 적은 메모와 현금카드를 건네며 업무 처리를 부탁할 정도로 금전 관리와 대인관계에서 많은 불편을 겪는 처지였다. A씨의 남편 B씨는 이런 C씨의 장애인 등록과 C씨 딸의 산업재해 사망보험금 청구를 앞장서 도와줄 정도로 친했다고 한다.

A씨 부부는 2016년 7월 중순 C씨로부터 믿기 힘든 얘기를 들었다. 다름 아닌 ‘로또복권 1등에 당첨됐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친하게 지내던 C씨로부터 “로또가 당첨돼 택시를 타고 가야한다. 당첨금을 같이 받으러 가자”는 부탁을 받았다. C씨가 평소 자신을 잘 도와주던 B씨를 믿고 당첨금을 함께 받으러 가자고 한 것이다. 이에 B씨는 다음날 C씨와 함께 가서 세금을 제외한 담청금 15억 5880만원을 받는 것을 도왔다. C씨의 계좌로 거액이 입금되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한 것이다.

◇로또 당첨금이 갈등의 씨앗

A씨 부부는 2016년 8월 당시 운영하던 식당 주변이 재개발되면서 이주를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그러자 부부는 C씨에게 “로또 당첨금으로 충남 예산군에 땅을 사서 건물을 지어줄테니 같이 가서 살자”고 제안했다. C씨 소유로 땅을 사고 그 위에 건물을 지어줄 것처럼 말했다. 이에 C씨가 응했다. A씨 부부는 C씨로부터 같은해 8월부터 10월 사이 4차례에 걸쳐 총 8억 8500만원을 송금받았다. 땅을 사고 건물을 신축하는데 쓴다는 명목이었다.

A씨 부부를 잘 따르던 C씨는 이들과 함께 같은 해 8월 23일 충남 예산군 예산읍의 대지 330㎡를 3억 2500만원을 주고 샀다. 이어 한달 뒤 해당 토지에 대한 소유권 이전등기도 했다. 이 때도 B씨 등이 동행했다. 이어 2017년 3월 건축업자와 식당건물 신축을 위한 도급계약을 맺었다. 공사대금 3억 9000만원에 지상 2층 건물을 신축하는 내용이었다.

지적장애인의 로또 당첨금을 받아 지은 충남 예산의 한 식당 건물. /우정식 기자

C씨는 2016년 10월 A씨 부부 보다 훨씬 먼저 예산으로 내려왔다.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30만원을 내는 원룸을 얻어 생활하기 시작한 C씨는 건물 신축 현장에 자주 들러 상황을 살폈다고 한다. A씨 부부는 2017년 9월 식당 건물이 완공된 뒤에야 서울에서 예산으로 이사했다. 두달 뒤인 11월 식당 내부 인테리어 공사를 마치고, 고깃집을 개업했다.

마냥 좋아보이던 이들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다. A씨 부부가 식당을 개업한 뒤 C씨는 이들을 도와 식당일을 많이 거들었다고 한다. 식당 건물에 C씨가 기거할 방도 마련돼 A씨부부가 ‘집에 들어와 살라’고 했지만, C씨는 식당 건물로 들어오지 않고 기존에 살던 원룸에서 생활했다. 그러다가 2018년 1월 19일 돌연 예산에서 강원도 철원으로 훌쩍 떠났다. C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식당 건물에 들어가 살면 머슴을 살 것 같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장애인 결국 부부 고소

그리고 7개월 뒤인 같은해 8월 초 C씨는 주변인 도움을 받아 대전지검 홍성지청에 A씨 부부를 사기 등 혐의로 고소했다. 이들이 C씨 소유로 땅을 사고 그 위에 건물을 지어줄 것처럼 말했지만, 토지와 건물 모두 A씨 명의로 등기한 사실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경찰이 조사한 결과 C씨에게 8억8500만원을 송금받은 A씨 부부는 7억5000만원을 실제 땅을 사고 건물을 올리는데 썼지만, 나머지 1억원 가량은 자녀 등 가족들에게 나눠주는 등 임의로 썼다. 또 해당 건물과 땅을 담보로 1억 5000만원에 달하는 대출금도 받아 일부를 가족에게 나눠주는 등 개인적인 용도로 썼다. A씨 부부는 건물 2층 일부를 임대하고 받은 전세 보증금 6000만원도 C씨에게 주지 않고 생활비 등으로 마음대로 썼다. 이에 검찰은 A씨 부부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사기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재판에서는 ‘돈을 주고받는 과정에 피고인들과 피해자 사이에 합의가 있었느냐’ ‘피해자가 거금을 다룰 만한 판단력이 있느냐’가 쟁점이 됐다. 1심을 맡은 대전지법 홍성지원 형사1부는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들이 당초부터 피해자의 돈을 가로챌 의사가 있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며 A씨 부부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토지와 건물은 C씨 소유로 하되, 등기만 A씨 명의로 하고 식당을 운영하며 피해자에게 생활비를 주기로 서로 합의했다’는 A씨 부부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재판부는 “C씨가 B씨가 가입을 만류했던 보험에 가입하는 등 재물 소유에 관한 개념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며 “단순한 유혹에 현혹될 만큼 판단능력이 결여됐다고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항소심, 1심 ‘증거 부족’ 뒤집고 부부에 실형 선고

그러나 검찰의 항소로 2심을 맡은 대전고법 형사1부(재판장 이준명)는 최근 원심 선고를 파기하고 A씨와 남편에 대해 각각 징역 3년 6개월과 징역3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A씨 부부는 ‘C씨와 새로 지은 건물에서 식당을 동업하기로 했다’는 취지로 진술했지만, 재판부는 식당 등의 이익금 정산이 이뤄지지 않은 점, C씨가 일관되게 “땅과 건물을 자신 명의로 하는 것으로 알았다”고 진술한 점 등을 근거로 C씨의 손을 들어줬다. ‘고액의 재산 거래 능력에 관한 피해자의 정신기능에 장애가 있다’는 점이 결정적 근거가 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일상에서 음식을 사 먹는 행위와 거액 부동산을 사는 행위는 전혀 다른 판단력을 필요로 한다”며 “피해자는 숫자 읽기에도 어려움을 느껴 예금 인출조차 다른 사람 도움을 받았다”고 전제했다. 또 A씨 부부와 피해자 사이에 명의신탁 약정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소유와 등기 개념도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피해자를 상대로 피해자 소유로 땅을 사고 건물을 지을 것처럼 속였다”면서 “A씨 부부는 C씨 명의로 땅을 사고 건물을 지어줄 의사가 당초부터 없었고, 자신들 소유로 할 생각이었다”고 봤다.

C씨는 법정에서 토지와 건물이 자신이 아닌 A씨 명의로 등기된 점을 뒤늦게 알고도 A씨 부부에게 바로 항의하지 않고 강원도로 떠난 이유에 대해 “뭐 해 달라고 얘기도 하기 싫더라고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고 해서 내가 떠난 거예요. 거기 있으면 노예가 돼요”라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일반적인 사람 같으면 즉시 항의하거나 수사기관에 고소했을 텐데, 피해자는 지적장애로 인해 문제 해결에 어려움을 느끼고, 자신이 직면한 상황을 그저 회피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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