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무력충돌을 살펴보자

박성민 2020. 10. 1.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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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쟁의 시작부터 전망까지

[박성민 기자]

지난 9월 27일(현지 시각)으로 옛 소련 구성국이었던 아제르바이잔(Azerbaijan)과 아르메니아(Armenia)가 '나고르노-카라바흐(Nagorno-Karabakh)' 분쟁지역에서 다시 무력충돌을 벌였다. 2016년 4월 마지막 무력 충돌 이후 다시 두 나라 간의 교전이 일어난 것이다.

나고르노-카라바흐(Nagorno-Karabakh) 지역 분쟁의 시작

아래 지도에서 표시된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은 단순하게 보아서는 어떠한 지역인지에 대한 이해가 쉽게 되지 않는다. 원래 이 지역은 1917년 10월 볼세비키에 의한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면서 남부 지역에 있는 코카시언 세 민족(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에 의하여 트랜스-코카시안 연합(Transcaucasian Federation)을 1918년 형성했다가 같은 해에 조지아의 독립과 동시에 다시 분리됐다.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국경 분쟁 지역
ⓒ BBC 화면 갈무리
 
곧이어 1차 대전이 끝나면서 스탈린 치하의 구 소련연방(USSR)에 의하여 병합이 되었다. 이때 소련연방은 아제르바이잔 영토이지만 아르메니아 인들이 더 많이 거주하는 자치권 지역을 만든 것이 현재 나고르노-카라바흐(Nagorno-Karabakh)지역에 대한 분쟁의 시작이다. 이러한 이유에 대해서 역사학자들은 여러가지 원인을 지적하고 있으나 크게는 스탈린의 '분리와 지배'(Divide and Rule) 전략에 따른 결과로 보고 있다. 

20세기 전반에 걸쳐 이 지역주민들은 아르메니아와 합치고자 하는 여러 번의 시도가 있었다. 구소련이 해체되기 전 1988년 자체 선거를 통하여 아르메니아와 병합을 하는 쪽으로 결정했으나, 오히려 격렬하게 반대하는 아제르바이잔과 무력 충돌이 시작되는 발단이 됐다. 이렇게 시작한 나고르노-카라바크 전쟁(1988~1994)은 6년동안 지속됐으며 대략 3만 명이 희생됐다고 추정된다.

1994년 전쟁이 멈춘 이후, (인구 15만 명이 조금 넘는) 이 지역은 독립을 선언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어느 국가로부터도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 지역을 둘러싼 주변 국가들과의 외교적인 관계도 복잡한 편이다. (동방정교의 일부인) 기독교가 다수인 아르메니아는 미국을 포함한 러시아와 유럽의 지원을 받고 있으며, 이슬람교도가 많은 아제르바이잔은 터키와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 특히 인접한 터키와 국경을 마주한 아르메니아는 터키의 인종학살에 대한 오랜 역사적 앙금을 가지고 있어서 더욱 아제르바이젠과의 관계가 좋지 않다.

브레진스키 교수의 진단

지금의 분쟁을 이해할 수 있는 서적 중 (1997년에 발행하고 2000년 한국에서도 번역된) 즈비그뉴 브레진스키(Zbigniew K. Brzezinski, 1928-2017)의 <거대한 체스판>(The Grand Chessboard)을 소개하고 싶다. 20년이 넘은 책이지만 저자가 이야기하는 내용은 지금의 사태를 이해하고 예측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Zbigniew K. Brzezinski,1928-2017) - 거대한 체스판
ⓒ 삼인출판사
 
브레진스키 교수는 20세기 후반 미국의 전략적인 관점에서 "우크라이나, 아제르바이잔, 남한, 터키, 이란 등은 매우 중요한 지정학적 추축이다"(64쪽)라고 밝히고 있다. 미국 전략가들의 시각에서 5개의 가장 중요한 지정학적 지역 중 4개가 중동과 러시아와 인접한 곳에 집중된 것에 비하여 동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한국이 있다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다.

저자는 이 책의 여러 부분에서 "아제르바이잔이 제한된 규모와 적은 인구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에너지 자원과 더불어 지정학적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특히 5장 '유라시아의 발칸'에서는 현재의 분쟁에 대한 가능성을 정확하게 예상하고 있었다.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에 대한 저자의 설명을 자세히 들어보자.
 
"소련이 붕괴하자 400만 명이 채 안 되는 코카서스 지역의 아르메니아인과 800만 명이 넘는 아자르인은 아제르바이잔 내의 밀집 지대인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지위를 둘러싼 것이었다. 이 분쟁은 대규모 인종청소로 이어졌으며, 각각의 방향을 선택한 수십만 명의 이주민과 추방자를 발생시켰다.

아르메니아가 기독교 국가이고 아제르바이잔이 이슬람 국가임을 감안할 때, 이 분쟁은 종교 전쟁의 색채를 띈 것이기도 했다. 경제의 황폐화를 몰고 온 전쟁은 두 국가 모두에게 안정적인 독립을 확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아르메니아는 주요한 군사 원조국 러시아에 더욱 의존하게 되었으며, 아제르바이잔은 독립과 내적 안정을 위해 나고르보-카라바흐를 포기해야 했다." - 본문 171쪽

투르크 언어를 사용하는 아제르바이잔과 터키와의 친밀한 관계는 이해할 수 있지만, 이란은 같은 이슬람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입장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저자는 계속해서 설명하고 있다. 즉 이란 북쪽 지역에 있는 "아자르인이 아제르바이잔에 살고 있는 아자르인의 두 배"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자국 내의 아자르인들의 분리 운동을 반대하는 이란의 입장에서는 터키와 같이 지지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앞으로의 전망

현재 나흘 째 지속되고 있는 전투는 1994년 이후의 충돌 이후 가장 큰 교전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양 측은 서로가 먼저 교전을 시작했다고 비난하고 있다. 무엇보다 터키의 지도자들이 군사지원의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많은 전문가들은 확전의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터키 대통령 에르도간(Erdogan)은 월요일 "모든 자원과 마음을" 가지고 같이 (아제르바이잔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터키의 외무 장관은 많은 아르메니아계 후손이 있는 프랑스가 아르메니아와 연대하고 있다고 비난했으며, 프랑스 마크롱(Macron) 대통령은 "터키로부터의 전쟁과 같은 메시지"에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악수하는 터키 대통령 에르도간과 아제르바이잔 대통령 알리예브(좌),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우)
ⓒ CBC 화면 갈무리
 
유럽과 중동의 여러 나라들의 역사와 이해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이 두 나라의 충돌은 "평화인가 확전인가"의 국면에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에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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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필자의 블로그(https://psean21c.tistory.com/125)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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