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하고 춤추는 18명의 김구..창작뮤지컬 '백범' 첫공부터 강렬한 인상

민병무 입력 2020. 10. 3. 00:27 수정 2020. 10. 3.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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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1일까지 국립박물관 극장용에서 공연..피날레 '나의 소원' 부분 뭉클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의 창작뮤지컬 ‘백범’이 10월11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공연된다.

[아이뉴스24 민병무 기자] 흰 두루마기를 입고 검정 뿔테안경을 쓴 18번 백범이 무대 중앙에 당당하게 섰다. 조명이 그에게 쏟아졌다. 그리고는 ‘백범일지’ 부록에 나와 있는 ‘나의 소원’ 일부분을 결연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읽을 때마다 들을 때마다 마음을 울리는 명문(名文)이다. 이토록 자기 생각을 또렷하게 드러내며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준 글이 있었던가.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느님이 내게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 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세 번째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관객 모두가 뭉클함에 콧등이 찡해졌다. 살짝 눈물을 훔치는 사람도 보였다. 1번부터 18번까지 모두 18명의 백범이 나오는 ‘백범’이 첫 공연부터 강렬한 인상을 심어줬다.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이 올해 ‘박물관 우리 역사 잇기 시리즈 2탄’으로 준비한 창작뮤지컬 ‘백범’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여파로 원래 예정보다 20일 늦은 9월 29일부터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지각공연을 시작했다. 추석 연휴기간(10월 2~4일)에 이어 10월6~11일에도 계속 공연된다.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의 창작뮤지컬 ‘백범’이 10월11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공연된다.

이번 작품은 김구의 독립운동 시기만을 부각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73년 삶 전체와 그 시대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전개하고 있다.

18명의 백범이 김구의 생애에 걸쳐있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이름만 들으면 바로 떠오르는 독립운동가 김구는 물론이고 신분상승을 위해 과거에 응시했던 소년 김창암, 치하포 사건으로 재판에 회부된 청년 김창수, 탈옥수로 떠돌며 어렵사리 찾은 인연과 백년가약을 맺은 김구, 그리고 광복 후 혼란한 조국에서 생의 마지막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았던 김구에 이르기까지 한국과 중국을 누비며 격정적으로 살았던 그의 인생여정을 흥미진진하게 펼쳐놓았다.

그동안 김구는 대부분 나이 지긋한 중년 남성의 모습으로만 그려졌다. 하지만 창작뮤지컬 ‘백범’은 이런 틀에 박힌 이미지를 거부했다. 1막(1장~12장)과 2막(13장~20장)에 걸쳐 김구의 이미지로 상징되는 흰색 두루마기와 검정 뿔테안경이 등장한다. 이 두 가지 소품을 지닌 사람이 바로 그 장의 김구가 된다는 약속을 바탕으로 스토리가 이어진다.

김구는 남자가 되기도 하고 여자가 되기도 한다. 또 중년이나 노인이 되기도 하고 청년이 되기도 한다. 김명희, 채태인, 권상석, 최현선, 이정수, 민준호, 유신, 윤유경, 송임규, 윤지인, 진태화, 김승용, 김다경, 김서안, 남궁혜인, 장재웅, 정원철, 신은총 등 18명의 배우가 모두가 김구다. 각자 한 순간, 한 장면의 김구를 맡아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해가는 김구를 릴레이로 연기한다.

이런 구성은 백정(白丁)과 범부(凡夫)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자신만큼의 노력으로 나라를 위해 애쓰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긴 김구의 호 백범(白凡)의 의미를 확대한 것이다. 루틴한 연대기적 스토리텔링 형식을 이겨낼 만한 콘셉트를 찾던 장우성 연출가가 등장인물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아이디어를 제시해 장성희 작가가 극본을 썼다.

원미솔 작곡가 역시 김구에 붙는 고정된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기존의 시대극 뮤지컬이 흔히 사용하던 음악 스타일과 완전히 다른 선택을 했다. 랩음악 하는 김구를 탄생시켰다. 프롤로그부터 18명의 김구가 모두 등장해 백범의 의미에 대한 이야기를 랩으로 쏟아낸다. “살아 무엇하리 / 빈하고 천하고 흉한 삶 / 천생이 상놈 / 평생을 산놈 / 눈물조차 곰보 안에 갇혀 / 흐르지 못하는 빌어먹을 운명 / 아! 다 꺼져버려라!” 시대에 강렬히 저항했던 백범의 정신은 오늘의 힙합 사운드와 어우러져 강렬한 시작을 알리고, 이후에도 랩이 이어진다.

‘백범’은 누구나 다 아는 가슴 아픈 일제 강점기를 다루고 있지만 모든 세대가 함께 즐기고 공감할 수 있도록 극적 재미를 많이 넣었다. 랩을 비롯한 다채로운 스타일의 변화를 시도하는 음악과 역동적인 군무가 돋보인다. 또한 다양한 등장인물의 생동감 있는 캐릭터를 살린 연출과 함께 국경을 넘나들며 종횡무진 전개되는 스토리에 걸맞게 영상장치를 적극 활용한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선사했다.

힙한 음악에 어울리는 퍼포먼스는 안무가 홍유선이 완성했다. 이번 공연은 배우들의 군무 퍼포먼스가 많다. 과거시험, 동학운동, 결혼식, 독립운동 등 변화무쌍한 장면별 변화만큼이나 군무 구성에도 다채로운 변화를 줬다. 특히 의자나 감옥 창살 등 소품을 활용해 펼치는 퍼포먼스는 뮤지컬 ‘백범’만의 또 다른 볼거리다.

1장부터 20장까지 이어지는 다이내믹한 퍼포먼스와 귀에 쏙쏙 박히는 랩은 이목을 사로 잡는다. ‘나의 소원’ 마지막 부분이 나오는 20장은 특히 울림이 컸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작품의 부제인 ‘끝나지 않은 소원’처럼 그가 남긴 소원은 현재에도 이루어지지 못한 채 남아있다. 이번 공연은 다양한 세대가 우리 역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만날 수 있는 작품이자 지금의 시선으로 과거가 아닌 우리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선사하고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잇따라 공연이 축소되고 취소되는 가운데 ‘높은 문화의 힘’을 우리 스스로 개척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그러려면 공연장으로 먼저 달려가야 하지 않을까.

민병무기자 min66@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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