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미디어오늘

"후드득" 낙엽 떨어지듯 해고되는 항공 하청노동자

손가영 기자 입력 2020. 10. 03. 07:00

기사 도구 모음

음성 기사 옵션 조절 레이어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코로나19' 해고대란 최전선 "물 들어올 땐 노동 빼먹고, 물 빠질 땐 해고"… '인력 반토막 해고' 우후죽순

[미디어오늘 손가영 기자]

"후드득, 후드득." 지난 2월부터 이어진 항공사 하청노동자들 퇴직 행렬에 김정한씨(가명)가 "바람맞은 낙엽 같다"고 말했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듯 수백수천 규모 인원이 무력하게 공항에서 사라졌다는 말이다. 버티는 쪽과 사라지는 쪽이 확연히 나뉘었다. 사라진 대부분은 항공사 2~4차 협력업체 직원들, '최저임금 하청노동자'다.

김씨도 인천공항에서 일한 대한항공 3차 A하청업체 조업노동자다. 그가 무력하다고 말한 이유는 "다들 찍소리 못하고" 공항을 떠나서다. 그는 동료 직원 120여명이 한 번에 실직하는 걸 봤다. 지난 3월 이 업체가 반납한 '외항기 청소' 사업을 다른 업체가 인수하더니 4월 30여명만 고용 승계됐다. 희망퇴직, 권고사직 등 용어는 다양했지만 실질은 해고였다.

정부는 "하나의 일자리도 반드시 지키겠다"고 각오했지만 현장은 딴판이다. 회사가 고용유지 노력을 할 수 있게 만든 정부의 각종 지원책은 이들 앞에서 멈췄다. 대표 지원책 '고용유지 지원금'은 원청 항공사와 이들의 1차 협력업체까지만 도입했다. 지난달 29~30일 '해고대란' 최전선의 항공사 하청노동자들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1일 서울고용노동청 앞 합동 추석 차례 행사에 선 김정남 아시아나KO지부장. 사진=공공운수노조 중부지역지부 전병철씨.

아시아나항공 하청 KO "희망퇴직, 무기한 휴직, 정리해고, 셋 중 골라라"

김정남 아시아나항공KO지부장(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은 추석날 결국 눈물을 쏟았다. 지난 1일 서울고용노동청 앞, 길거리에서 싸우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합동 차례 행사에서였다. 그가 "부당해고를 철회하라"며 길거리 투쟁을 시작한 지 141일째다.

이날은 그가 KO에서 근무한 지 딱 9년째였다. 'KO'는 아시아나항공 비행기 청소, 수하물 탑재 등 조업을 맡은 2차 하청업체다. 그는 2011년 10월1일 입사해 김포공항에 이·착륙하는 아시아나항공기 수하물을 하역·탑재하는 일을 했다. 컨베이어 벨트를 지나는 승객들의 위탁수하물을 내리고 올리는 일을 매일 8시간 넘게 했다. "처음엔 업무가 고되 팔다리 관절이 쑤셔 '뼈 주사'를 맞으며 일을 배운" 그였다.

470명에 달하던 KO 직원들은 현재 절반도 남지 않았다. 희망퇴직 바람이 2번 거세게 불었다. 지난 3월 1차 희망퇴직 공고 때 100여명이 퇴직했다. 지난 7월 2차 희망퇴직 접수를 받을 땐 140여명이 퇴사했다. 1일 기준 170여명은 필수유지 인력으로 일하고, 50여명은 무급휴직상태이며 6명이 부당해고 피해자다.

▲ 지난 1일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사단법인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 등 단체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합동 추석 차례 행사을 열었다. 사진=공공운수노조 중부지역지부 전병철씨.

140명 2차 퇴직자 모두 '무기한 무급휴직'을 보내던 이들이었다. 지난 3월 희망퇴직 신청을 받던 KO는 희망퇴직과 '무기 무급휴직' 중 하나를 택하고, 택하지 않을 경우 정리해고 대상이 된다고 강요했다. 190여명이 무기 무급휴직에 동의해 일을 쉬었다. 이 경우 정부가 최대 6개월까지 매달 주는 무급휴직 고용유지 지원금 50만원을 받았는데 생계비로 턱도 없었다. 그래서 실업급여라도 받겠다며 7월 대규모로 퇴사했다.

KO는 직원들이 일방 해고를 반대한 최초 항공 하청업체다. 김 지부장과 함께 싸우는 6명이 해고를 반대했다. 제대로 된 논의없이, 희망퇴직과 기한없는 무급휴직 중 하나를 택하라는 강요는 부당하다는 이유였다. 이들에게 희망퇴직은 해고, 무급휴직은 기한이 없기에 '준해고'였다. 회사가 어떤 해고 회피 노력을 했는지, 순환 무급휴직제를 적절히 배분해서 쓸 수 없는지 등을 따져봐야 했다. 6명은 둘 다 택하지 않겠다고 버티다가 5월11일 해고됐다. 140여일째 싸우는 이유다.

▲지난 9월29일 서울고용노동청 앞 농성장에서 만난 김계월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아시아나KO부지부장. 사진=손가영 기자.

"물 들어올 땐 노동 쥐어짜고, 물 빠지면 버린다"

KO의 부당해고는 항공 하청노동자가 처한 취약한 고용 불안을 그대로 보여준다. 6명은 모두 지난 7월 인천과 서울 지방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두 달 넘게 복직하지 못했다. 회사는 판정에 불복해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했다.

'표적 해고' 정황까지 드러났지만 KO는 "정당 해고"라고 주장한다. 회사는 정리해고자를 선별한 근거로 지난 1월 시행한 인사평가를 들었다. 해고자 6명은 인사평가 사실을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하기 전엔 듣지 못했다. KO는 평가 자료를 요구한 지노위에 해고자 6명의 자료만 냈고, 이 자료마저 평가자, 평가점수 등 핵심 내용은 모두 비공개였다. 인천지노위는 정당하게 평가했다는 KO 주장에 "합리적 기준에 따라 해고대상을 선정했다고 볼 수 없고 근로기준법 취지도 도외시한다"고 밝혔다.

KO가 이를 행정소송까지 끌고 가면 해고자 6명의 복직까진 수년이 더 걸릴 수 있다. 노동자 6명이 부당해고를 인정하지 않는 회사에 강제력을 행사할 방법은 마땅찮다. 가장 젊은 해고자가 만 56세다. 내년 4~5월 만 60세 정년을 채우는 이들만 2명이다. '회사에 밉보인' 아시아나KO지부 조합원들은 정년이 넘어서도 일할 수 있는 '촉탁직'으로 고용되기도 힘들다.

▲KO가 인천지방노동위원회 등에 제출한 '정리해고 대상 선출 근거'인 2019년 인사평가표. 부당해고자들은 인사평가 존재 여부부터 명확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직원들에 충분한 고지없이 갑자기 공고된 희망퇴직 신청 공지글. 희망퇴직과 무기한 무급휴직 둘 중 하나를 택하고, 둘 다 택하지 않는 직원은 정리해고될 수 있다는 문구가 적혔다.

김 지부장은 부당해고 싸움이 쉽지 않다며 쓴웃음 지었다. 이들은 지난 5~6월에만 서울 종로구 아시아나항공 본사 앞에 설치한 농성 천막이 3번이나 강제 철거됐다. 결국 트럭 트렁크에 천막을 올려 주차하는 방법까지 찾았다. 비가 연일 내린 올해 여름은 습도 때문에 텐트에서 매일 잠을 설쳐 특히 견디기 힘들었다. 김 지부장은 "중노위 판정만 2~3달 더 걸리겠지…. 월동 준비를 하고 있다"며 웃었다.

"성수기 땐 휴가도 반납하고, 화장실 가고 싶어도 참아가며 몰린 비행편수를 처리했다. 여기 근골격계 질환 없는 이들이 없다. 그러고도 법정 최저임금만 주더니 코로나19 사태가 닥치니 그대로 해고한다. 물 들어올 땐 노동자들로 노 젓고, 물 빠지면 책임도 안 지고 버린다. 그냥 물러서진 않을 거다. 부당해고는 바로 잡혀야 한다. 우리 해고는 정당한 요구를 하는 민주적인 노조를 무너뜨리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6여년 인천공항에서 아시아나항공기 청소를 했던 김계월 아시아나KO부지부장이 말했다. 김 부지부장은 6명 해고자 중 하나다.

50명, 240명, 320명… 공항, "인력 반토막" 정리해고 중

아시아나항공의 다른 하청업체들 사정도 비슷하다. 그나마 미화업체 'KF'나 중·경정비 지원업체 'KR'은 아직 KO보단 상황이 낫다. 이곳 직원들은 1주일~1달 무급휴직을 돌아가면서 쓰고 있다. 외항기 지상여객 서비스를 맡는 'AH'는 절반 인력감축을 목표로 한 희망퇴직이 공고됐다.

국제선이나 외항사를 맡는 대한항공 하청업체 사이에서도 "다 반토막 났다"는 말이 돈다. 인력이 절반 넘게 줄었다는 말이다. 지난 4~5월께 대한항공 기내식을 탑재하던 B업체에선 240여명이 희망퇴직했다. 대한항공 1차 협력사 '한국공항'의 ㄱ씨는 "화물청사와 여객청사를 오고가며 화물을 운반하던 C업체도 50명이 그만뒀다는 얘길 들었다"고 전했다.

KO처럼 대한항공 기내 청소를 맡는 2차 하청업체 'EK맨파워'는 지난 4월 직원 400여명 중 74명을 제외하고 정리해고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60여명은 이미 희망퇴직으로 회사를 나갔고, 280여명이 무급휴직 중이다. 정부로부터 받던 무급휴직자 지원금 50만원도 10월부턴 나오지 않는다. 지원금으론 먹고 살 수 없어 몰래 '하루 8만원' 일용직 노동을 나갔다가 적발돼 24만원을 토해 낸 직원들도 있다.

실업급여를 못 받는 직원을 위해 선임자가 먼저 퇴사한 경우도 있다. 대한항공 수하물 탑재 등을 맡는 D하청업체에선 실업급여를 최장 수급 기간인 '9개월'까지 받을 수 있는 직원 일부가 "사정이 좋아지면 9개월 후 복직시켜준다"는 말을 듣고 퇴사했다. 고용보험 가입 기간이 10년 이상인 50세 이상 가입자는 최장 9개월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A업체의 김정한씨는 "15일 일하고, 15일 무급휴직하면 수입이 4분의 1로 줄더라. 차비, 통신비 정도 나오는데, 그래도 회사에 있는게 나으니 일부는 무급휴직을 감내하면서 버틴다"고 말했다. 이어 "차라리 실업급여를 받으려고 나가는 이들도 있다. 다만 3~4월 퇴직한 이들의 수급기간이 대부분 10~11월 중 끝난다.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 년 공항에서 일한 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라고 물었다.

▲ⓒpixabay.

항공 하청? 사실상 인력파견업체, 구조 바꿔야

현장엔 "회사도 해고 외엔 방법이 없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사회적 책임은 딴 나라 얘기"라는 비판이 더 지배적이다. 회사가 고용을 유지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해고부터 꺼낸다는 뜻이다.

고용유지 지원금 회피가 단적이다. 정부는 코로나19로 대량 실업이 발생할 수 있는 일부 업종을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정해 고용을 유지하는 업체에 많게는 휴직급여의 90%까지 지원하는 고용유지 지원금을 지원한다. 그러나 자본금 규모가 작거나 다양한 업종에 인력을 파견하는 하청업체 상당수는 이를 이용하지 않고 무급직이나 권고사직·희망퇴직을 단행한다. '휴직급여 10%' 지출도 감당하지 않는 실정이다.

인천공항노동자 고용불안 문제에 대응 중인 공공운수노조 영종특별지부는 항공사·면세점·지상조업·호텔 및 카지노·물류업 등에 종사하는 6만여명 노동자 중 3만여명이 유급·무급 휴직 및 희망퇴직 상태에 있다고 추정한다. 이마저 소규모 업체와 인력파견업체 수치를 제외한 값이다.

노동계에선 장·단기적 해결 방안을 같이 요구한다. 단기적 대책으론 지원제도 사각지대 개선이다. 특정 조건의 사용자는 의무적으로 고용유지 지원제를 신청하게끔 제도를 정비하고, 항공업 및 지상조업 등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을 연장하는 안이다. 항공업에 진출했지만 업종을 특정할 수 없는 인력 파견업체에 고용 유지 지원제 신청 자격을 주는 방법도 과제다.

이영수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8월 펴낸 '코로나19로 심화된 항공산업의 문제점과 공공적 재편방향 모색' 연구논문에서 '사실상 인력파견업체로 운영해온 지상조업 노동구조를 전면 개편하자'고 근본적 개선을 제안했다.

▲20일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원 등이 기자회견을 열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타격을 입은 항공·공항 노동자 한시적 해고금지 및 비정규직 정리해고 중단을 촉구하는 항공·공항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하기 위한 현장 실천단을 발족을 선언했다. 2020.04.20. 사진=민중의소리

이 연구위원은 "비용경쟁이 아닌 안전과 품질, 양질의 일자리 등이 보장되는 업종으로 전환하기 위해 지상조업 면허와 운영 규제강화 등으로 대형화·전문화·직영화 등이 필요하다"며 "지상조업에 대한 재무 적정성과 안전성, 전문성, 안전과 노동 관련 기준 등을 대폭 강화해서 진입장벽을 높이고, 운영과정에서도 공항공사 등을 통한 평가와 인증을 통해서 면허재발급 절차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연구위원은 또 "대형항공사에 지원될 기간산업안정기금이 '비용의 사회화, 이윤의 사유화 구조'의 귀결이 아닌 공공적 개입 확대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지난 4월 대한항공엔 1조2000억원, 아시아나항공엔 1조7000억원을 긴급지원한다고 결정했다. 이에 더해 정부는 '5차 비상경제회의'에서 '일자리 위기 극복을 위한 고용 및 기업 안정 대책' 중 하나로 기간산업안정기금 조성 계획을 발표했다. 총 40조원 한도로 기간산업에 특수채를 발행해 지원하는 안이다.

이 연구위원은 "(기금 대출을 받는 기업 경우) 보유주식 의결권 행사, 노동자의 경영 참여 보장, 다단계 하청 축소 등을 명시해서 자금지원 기업의 소유와 운영에 대한 공적 개입을 강화해야 한다"며 "다단계 하청 구조에서 위기가 아래로 전가되지 않도록 자금지원 기업(원청)에게 협력업체 계약과 고용유지 의무도 부여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기금 운용에서 노동자 입장이 반영될 수 있도록 노동자 대표 참여를 보장하는 기금운용심의회 구성을 개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Copyrights ⓒ 미디어오늘.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