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기사 환경 열악" 총출동한 정부여당.. 업계 "과장된 주장"

곽래건 기자 입력 2020. 10. 3. 18:01 수정 2020. 10. 3.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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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노조 "물량 너무 많아 장시간 노동 시달려"
업계 "물량 협의 가능한데 기사들이 원치 않아"

택배 물량이 몰리는 추석을 앞두고 최근 정부와 정치권에서 택배 기사들을 보호해야 한다며 잇따라 택배 분류 작업 현장을 방문했다. 그동안 민주노총 산하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택배노조)을 중심으로 ‘택배 기사 근무 여건이 열악하고, 정당한 대가를 못 받고 있다’는 주장이 있었는데, 정부와 정치권이 적극 동조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노조 주장이 ‘택배 산업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았고, 과장됐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택배 기사 챙기기 나선 정부·정치권

3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추석 연휴 택배 물량은 작년보다 30% 이상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매년 추석 연휴엔 택배 물량이 평소보다 10% 이상 늘어나는데, 올해는 코로나의 영향으로 더 몰렸다.

지난달 17일 택배노조와 시민 단체 등으로 구성된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는 ‘추석 물량은 몰리는데 업무량이 과하고, 정당한 대가를 못 받고 있다’며 파업을 예고했다. 정부와 업계가 ‘하루 평균 1만명을 추가 투입하겠다’고 하며 파업은 하루 만에 없던 일이 됐다.

하지만 이후 정부와 정치권은 잇따라 택배 기사 챙기기에 나섰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달 23일 경기도 김포의 CJ대한통운 터미널을 찾았다. 박근희 CJ대한통운 대표가 장관을 맞기 위해 현장에 나와 있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이튿날인 지난달 24일 실태 점검을 하겠다며 서울 중구의 CJ대한통운 터미널을 방문했다. 현장 방문엔 손명수 국토교통부 2차관과 임서정 고용부 차관도 참석했다. 관련 부처 차관들이 총출동한 것이다.

지난달 23일 경기도 김포의 CJ대한통운 터미널을 찾은 이재갑 장관이 택배기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이태경 기자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지난달 24일 서울 중구의 CJ대한통운 터미널을 찾아 관계자들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노동계에선 현 정부와 여당이 특수 형태 고용 종사자의 대표 격인 택배 기사 챙기기에 나섰다고 보고 있다. 특수 형태 고용 종사자란 대리 기사나 골프장 캐디처럼 월급 대신 건별 수수료를 받는 이들을 뜻한다. 법적으로는 사업자 신분이고, 일반 근로자와 사업자 성격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현 정부는 특수 형태 고용 종사자의 고용보험 가입을 추진하고, 노조 설립을 인정해주는 등 이들의 권익 강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노동계 관계자는 “택배 기사가 일반인에게 친숙하고, ‘기사들이 고생한다’는 인식이 강한 것이 정부 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했다.

◇노조 “근무 환경 열악” VS 회사 “과장된 주장”

하지만 노조와 업체 주장은 첨예하게 맞선다. 업체들은 ‘노조 주장이 과장됐다’고 반박한다. 핵심 중 하나는 택배노조가 ‘공짜 노동’이라고 주장하는 분류 작업이다. 터미널에서 택배 기사의 배송차에 물품을 싣는 작업은 택배 기사가 직접 한다. 택배노조는 이 과정에서 각 지역 기사별로 택배 물건을 나눠야 하는데, 회사가 여기에 대한 비용 지급을 안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업체들은 2010년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분류 작업에 대한 암묵적 동의가 있었고, 분류 작업은 기사 본인을 위한 작업이라는 측면도 있다’고 반박한다. 특히 송장의 바코드를 읽어 목적지별로 나눠주는 ‘자동 분류기’가 설치된 곳들은 노조 주장처럼 분류 작업의 업무 강도가 높지 않다는 것이 업체들 주장이다.

노조는 “물량이 넘쳐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물량을 감당하기 위해 아르바이트생을 쓰거나 가족까지 동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업체 관계자는 “본인이 원하면 물량과 배송 지역을 줄일 수 있지만, 대다수 기사가 수입이 줄어들까 봐 꺼린다”며 “아르바이트생을 쓰거나 가족을 동원하는 것도 결국 그게 돈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달 23일 경기도 김포 CJ대한통운의 터미널에서 택배 기사들이 자동 분류기를 통과해 나온 택배 물건을 차량에 싣고 있다. /연합뉴스

택배 기사는 월급 대신 택배 한 건당 600~800원가량의 수수료를 받는다. 배달을 많이 하면 할수록, 고정 거래처를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돈을 많이 버는 구조다. 업계 1위인 CJ대한통운의 올해 상반기 기사 1인당 월평균 수입은 690만원이다. 기름값, 차량 할부비, 수수료 등을 뺀 실수입은 524만원 수준이었다. 지난달 말 서울 서대문구에서 만난 택배 기사 김모(48)씨는 “몇 년 전이면 노조 주장이 맞는다고 하겠지만 지금은 회사마다, 개인마다 근무 환경이나 수입 차이가 크다”고 했다.

◇결국 택배 수수료 올라갈 가능성

정부와 업계에선 결국 노조와 업체의 갈등이 택배기사가 건당 수수료를 얼마 받냐의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택배 기사 처우를 개선하려면 결국 일은 줄이되, 수입은 유지하거나 늘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론 쉽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국토부 관계자는 “시장에서 업체와 기사들이 서로 경쟁해 정해진 수수료를 정부 주도로 올릴 수도 없고, 업체들이 한꺼번에 올리면 담합이 된다”며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고 당장 이뤄지긴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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