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데 도와주기까지 하면 무기를 사준다 [박수찬의 軍]

박수찬 입력 2020. 10. 4. 08:01 수정 2020. 10. 4.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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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C-130J 수송기가 이륙을 위해 활주로에서 이동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국제정치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이 가장 강한 의미를 지니는 분야다.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밀당’이 치열하게 전개되지만, 각자가 원하는 부분을 들어주는 ‘주고받기’도 적지 않다.

이같은 ‘주고받기’는 군사 분야에서도 일어난다. 주변국에 의해 위협을 받는 국가가 군사 강국의 지원을 받고, 자신을 도운 국가에서 만든 무기를 구매하는 패턴이 계속 반복된다.

◆분쟁위협이 늘어나면 무기구매도 많아

최근 남캅카스 분쟁지역 나고르노-카라바흐를 둘러싸고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가 무력충돌을 벌이고 있다. 아제르바이잔을 형제국으로 인식하는 터키와 이란을 견제하려는 이스라엘은 아제르바이잔을 지원해왔다. 옛 소련의 일원이었던 아제르바이잔이 터키와 이스라엘산 무기를 많이 사용하는 이유다. 

아제르바이잔은 과거 아르메니아와의 무력충돌에서 열세였으나 오일 달러와 더불어 터키, 이스라엘의 지원에 힘입어 군사력을 증강해왔다.

아제르바이잔은 아르메니아 전차와 포병 등을 공격하는데 터키 바이락타르사가 만든 TB-2 무인공격기를 투입했다. 맘(MAM) 유도미사일과 움타스(UMTAS) 대전차미사일 등을 장착한다. 이번에 움타스 미사일로 아르메니아 T-72 전차를 산산조각내는 장면이 공개돼 주목을 받았다. 아르메니아군이 아제르바이잔군이 쓰던 이스라엘산 하롭 무인기를 격추하는 영상이 공개되기도 했으며, 이스라엘이 만든 사거리 250㎞짜리 단거리 탄도미사일 로라(ROLA)도 등장했다. 
터키가 개발한 TB-2 무인공격기. 아제르바이잔이 아르메니아군을 공격할 때 사용했다. 위키피디아
동지중해 가스전 시추와 탐사를 놓고 지난 8월 벌어진 터키-그리스 갈등도 이와 유사하다. 미국 지질조사에 따르면 동지중해에는 17억배럴의 석유와 3조4000억㎥의 천연가스가 묻혀 있다. 양국이 갈등을 벌이는 이유다. 

군사력에서 그리스는 터키에 열세다. 다만 터키의 영향력 확대를 꺼리는 프랑스, 이탈리아, 키프로스는 그리스와 연합훈련을 실시하는 등 그리스를 지원하고 있다. 프랑스는 강습상륙함 토네르와 라팔 전투기를 파견했다. 이에 그리스는 지난달 13일 라팔 전투기 18대 구매 계획을 발표했다. 미티어 중거리 공대공미사일(사거리 200㎞)과 스칼프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사거리 550㎞)을 장착하는 라팔 전투기는 그리스의 전략적 억제력을 한층 강화하면서 그리스-프랑스 관계를 더욱 밀접하게 할 전망이다.

아랍에미리트(UAE)는 최근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수요에 합의하면서 그 대가로 스텔스 전투기 F-35 구매를 기대하는 상황이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해 중동국가에 첨단 무기를 판매하지 않았다. 사우디아라비아에 공급한 F-15 전투기도 이스라엘이 구매한 것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버전이었다. 한국에도 제안됐던 스텔스 기능이 있는 F-15 사일런트 이글의 중동 판매조차 거부했으나 이스라엘에는 F-35를 인도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이스라엘과 충돌하지 않고 UAE에 F-35를 판매할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과 외교관계를 정상화한 UAE가 오래 전부터 F-35 판매를 요구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의 중동평화 구상에 호응한 ‘선물’이 F-35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 공군 F-35A 스텔스 전투기가 훈련을 위해 이륙하고 있다. 미 공군 제공
사우디아라비아는 수천억 달러를 들여 미국산 무기를 구매하는 ‘큰손’이다. 사우디가 미국과 무기거래 계약을 체결할 때마다 ‘사상 최대의 무기거래’라는 수식어가 등장한다. 국방기술품질원이 발간한 2019 세계방산시장 연감에 따르면 2009∼2018년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에서 134억7000만달러 상당의 무기를 구매했다. 

걸프만을 사이에 두고 이란과 대치하는 사우디는 미국의 지원을 받아 중동 맹주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오일 달러를 풀어 미국에서 무기를 사들이는 이유다. 

사우디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하자 예맨 후티 반군 미사일을 요격할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등을 포함한 1110억 달러(130조원) 상당의 무기 구매를 약속했다.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 시절인 2010년에는 F-15SA 전투기 84대와 헬기 200여대, 정밀유도무기 등 600억 달러 규모의 무기구매계약을 맺었다. 이렇게 구매한 무기 중 상당하는 예맨 내전에 사용돼 논란을 빚었다.

인도와 갈등을 빚는 파키스탄은 공동의 적을 두고 있는 중국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은 경제, 군사적으로 파키스탄을 지원하고 있고, 파키스탄은 중국에서 다양한 종류의 무기를 도입중이다. 알 칼리드 전차와 85식 전차, 69식 전차 등 지상장비 상당수는 중국산이다. 중국산 054A 프리깃함 4척도 내년까지 파키스탄에 인도될 예정이다.  
프랑스 공군 라팔 전투기가 이륙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중국은 파키스탄의 방위산업 진흥도 돕고 있다. 파키스탄은 기존에는 소총 등만 생산할 수 있었고, 그나마도 외국에서 기술을 도입해 만들었다. 하지만 중국과 JF-17 전투기 공동생산을 통해 정밀유도폭탄 등을 만들 수 있게 됐다. 중국은 파키스탄의 군함, 전차 등 중화기 생산 및 정비능력을 지원했다. 그 결과 2018년 하반기부터 2019년 상반기까지 파키스탄의 방산수출액은 2억달러를 넘어섰다.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아…다변화 필요성도

한국도 마찬가지다. 6.25 전쟁 이후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 북한의 위협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한 한국은 수십년에 걸쳐 미국산 무기를 도입해 운용했다.

1953년 7월 정전협정 체결 당시 한국 육군은 14개 사단 45만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전협정에 규정된 한반도 내 무기반입금지조항을 공산측이 무시하자 1957년 유엔군사령부는 이 조항을 폐기했다. 

이후 미국은 한국군에 현대적인 무기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F-5A 전투기와 M48전차, 고속수송함, 구축함 등이 1960년대까지 한국군에 배치됐다.
미국 공군 F-35A 스텔스 전투기가 비행을 하고 있다. 미 공군 제공
1968년 F-4D 전투기 도입은 동북아시아 제공권 판도를 흔들만큼 중대한 사건으로 기록된다. 베트남전쟁을 치르고 있던 미국은 1960년대 말부터 F-4 해외 판매를 선별적으로 진행했다. 미국이 첨단 무기 제공에 제한을 걸던 시절인데도 한국은 미국, 영국, 이란에 이어 세계 4번째로 F-4를 확보했다.

1970년대 이후 한국의 경제력이 성장하면서 미국에서 제공되는 군사지원은 줄어들었다. 대신 돈을 주고 미국 업체에서 완제품을 구매하거나 기술을 도입해 국내에서 생산하는 비중이 늘었다. KF-5 전투기, M16A1 소총, M48A5K 전차 등이 대표적이다.

1990년대부터는 K-1, K-2 소총과 KT-1 훈련기 등 국산 무기가 대거 등장했다. 하지만 핵심 장비들은 여전히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미국산 무기 편중이 지나치다고 지적한다. 6.25 전쟁 당시 한국을 돕기 위해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들도 동참했다. 유럽 국가들은 한반도 유사시 유엔군사령부의 일원으로 참전할 나라들이다. 

KC-330 공중급유기, 타우러스 장거리 공대지미사일, 미티어 중거리 공대공미사일 등 유럽에서 개발한 무기들이 국내에 반입되고 있으나 한국군의 핵심 군사장비는 여전히 미국산이 주류를 이룬다. 미국산 무기의 성능과 군수지원능력이 우수하고 주한미군과의 상호운용성을 감안하면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공군 18전투비행단이 활주로에서 이탈한 전투기를 크레인으로 견인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하지만 6.25 전쟁 당시 한반도에서 피를 흘렸고, 유사시 한국을 도울 유럽 국가들과의 군사적 유대관계를 강화하려면 유럽산 무기에도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유럽 국가 군대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규격을 따르고 있으므로, 상호운용성도 문제가 없다.

무기구매를 매개로 경제, 과학기술 분야 협력을 강화하는 방안도 있다. 유럽 국가 군대는 한국처럼 규모가 크지 않아 유럽 방산업체들은 수출에 적극적이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세계 각국이 국방비를 삭감하면서 유럽 방산업체들의 수출 시장이 위협받고 있다. 한국은 첨단 장비 개발을 진행하고 있으나, 관련 경험이나 기술 등이 부족한 경우가 있다. 수리온헬기 개발 사례처럼 유럽 업체와 제휴해 공동개발을 하면 기술 확보와 리스크 감소 등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도입 규모가 수조원에 달하는 전략무기를 사고 파는 것은 국제정치적으로 상호 신뢰를 돈독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한반도 유사시 우리를 도울 미국, 유럽의 무기구매에서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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