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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제2 도시' 될 날 멀지 않았다 [표지 이야기]

입력 2020. 10. 04. 15:37 수정 2020. 11. 09.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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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과 경제 지표 엎치락뒤치락.. 인구도 20년 안에 인천이 앞설 듯
[주간경향]

100여년 만에 ‘제2의 도시’ 자리가 바뀌게 될까. 수도권 집중화는 도시의 위상도 바꾸고 있다. 부산광역시의 성장은 부진한 반면 인천광역시는 가팔라 보인다. 인천은 이미 ‘서인부대(서울-인천-부산-대구)’론을 공공연히 내세우고 있다.

‘제2의 도시’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부산과 인천의 대표적인 신시가지인 부산 해운대./ / 경향신문 자료사진


현시점에서 제2 도시의 위상은 아직 부산이 가지고 있다. 인구가 더 많은데다 지역내총생산(GRDP)도 근소하게나마 인천을 앞서고 있다. 올해 8월 주민등록 인구 기준으로 부산(340만명)이 인천(294만명)보다 46만명이 더 많다. 2018년 확정자료 기준 부산의 지역내총생산은 89조9800억원으로 88조7350억원을 기록한 인천을 앞섰다. 전통적인 도시 서열이 반영된 행정기관코드도 직할시(현 광역시) 승격 시점에 따라 서울 다음 부산·대구·인천 순이다.

하지만 인천이 부산을 따라잡았다고 볼 수 있는 지표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1인당 GRDP는 인천이 더 높고, 두 도시 사이의 총생산 격차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2017년에는 한 차례 인천이 역전하기도 했다. 미래산업의 주축이 될 신성장산업 수출실적을 보면 지난해 인천은 112억달러를 기록, 부산(25억달러)보다 4배이상 많았다. 부산은 오랜 기간 수도권 다음가는 경제권인 동남권(부산·울산·경남)을 주도한 역할도 잃고 있다. 동남권 전체의 신성장산업 수출실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부산은 19%에 불과해 울산과 경남에 크게 못 미쳤다.

신성장산업 수출, 인천이 부산의 4배

향후 20년 안에 인구도 인천이 부산을 추월할 가능성이 크다. 1995년 인구가 388만3880명으로 정점을 찍은 이래 줄곧 줄어들기만 하고 있는 부산은 2030년대 중반이 되면 300만명 선이 무너진다. 반면 인천은 30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조선왕조 500년 이래 줄곧 수도이자 한반도의 중심도시 역할은 서울이 도맡아왔다. 반면 제2의 도시는 여러 도시가 자리바꿈해온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자생적인 상공업이 발달하기 시작하며 도시화가 진행된 조선 후기에는 인구 기준으로 개성과 평양이 제2의 도시 자리를 두고 경쟁했다. 1789년(정조 13년)의 호구수를 종합해 규장각에서 편찬한 〈호구총수(戶口總數)〉 자료를 보면 당시 한성 인구가 18만9153명으로 가장 많았고, 개성(2만7769명), 평양(2만1869명), 상주(1만8296명), 전주(1만6694명), 대구(1만3734명), 충주(1만1905명), 의주(1만838명) 순으로 인구 1만명 이상의 도시가 형성돼 있었다.

조선 후기까지만 해도 부산과 인천은 모두 제2의 도시 후보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그러나 19세기 말 외세의 개항 요구가 밀어닥치며 상황은 반전되기 시작했다. 부산이 1876년, 인천이 1883년 개항하면서 두 도시의 성장은 눈에 띌 정도로 빨라졌다. 인천에는 1899년 최초의 철도 노선인 경인선이 깔렸고, 부산 역시 1905년 경부선 철도가 부설돼 서울과 연결됐다. 개항 이후 외국세력 중 특히 일본에 의해 부산과 인천은 원산·목포·군산 등과 함께 도시화가 활발하게 진행된 것이다.

인천 송도 일대의 대형 건물들이 밤을 밝히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이 무렵부터 부산은 한반도 제2의 도시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1907년 대한제국 경무고문본부의 〈한국호구표〉 자료에 따르면 부산은 인구 3만9743명으로 한성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도시였다. 그 뒤를 평양(3만1576명)과 인천(2만7896명)이 이었다. 부산이 제2의 도시가 된 역사도, 인천과의 라이벌 구도가 형성된 것도 100년을 넘긴 셈이다. 당시만 해도 서울 다음가는 도시는 평양이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해당 조사에서 부산과는 별도로 인구가 집계된 동래·구포·사상의 인구가 2만명에 육박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부산이 실질적인 제2 도시였다고 볼 여지는 충분했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해방과 분단의 과정을 거치면서 부산의 입지는 더욱 강화됐다. 한국전쟁의 포화를 고스란히 받은 서울과 인천에 비해 부산은 임시수도 역할을 하며 물밀 듯이 밀려오는 피란민들을 수용하며 성장했다. 1963년 경상남도에서 분리돼 직할시가 된 부산은 1980년대까지 경공업과 무역의 중추 역할을 하며 더욱 팽창해 1990년대에는 인구 400만을 바라보는 도시가 됐다. 그러나 이후 사정은 역전되기 시작했다. 수도권으로의 집중이 가속화되면서 인천은 대구를 제치고 실질적인 제3의 도시가 됐고, 이제 부산의 위상마저 넘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도쿄 인근의 요코하마와 비슷한 인천

이러한 자신감으로 인천시는 2018년부터 1인당 지역내총생산, 경제성장률, 지방세 규모, 일자리 지표 등의 수치를 근거로 ‘서인부대’론을 공공연히 내세우고 있다. 인천시 관계자는 “인천이 서울·경기와 함께 수도권으로 묶여 실질적인 위상에 비해 명목적으로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으나 이미 명실상부한 제2의 도시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수도권에 자리 잡은 요코하마가 인천과 비슷한 점이 많다. 요코하마시가 있는 가나가와현의 인구는 2010년대 들어 오사카시가 속한 오사카부를 제쳤다. 그래도 여전히 전반적으로는 오사카가 일본 제2의 도시라는 인식이 강하다. 오사카를 중심으로 교토·고베 등과 이어진 ‘케이한신 경제권’이 도쿄·요코하마를 중심으로 한 수도권의 경제력을 능가하지는 못해도 제2 경제권으로서의 위상을 굳게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도 오사카는 에도막부 이전 1000년 역사의 수도였던 교토를 지척에 두고 상업을 바탕으로 경제력을 갖춘 제2 도시로서 자리 잡은 역사가 길다.

부산은 도시가 축소된다는 위기감을 바탕으로 지역 여론을 결집하고 있다. 다만 경쟁에서 앞서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기보다는 수도권 집중화로 인해 발생한 시민의 불편과 경제적 역량이 줄어드는 현상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지역주민들의 실생활을 고루 발전시키는 대안적 패러다임을 마련하는 쪽으로 부산발전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김형균 부산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도시들 간 인구경쟁은 도토리 키재기에 불과한 소모적 도시경쟁에 불과하다”며 “인천이 나름대로의 발전전략으로 성장을 해나가는 것은 당연하고, 마찬가지로 부산은 부산만의 발전전략으로 세계도시를 바라보며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주간경향 표지이야기 더보기▶ 주간경향 특집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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