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의 기로에 선 지역언론 [표지 이야기]

2020. 10. 4.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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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다변화로 신문·방송 영향력 줄고 포털에서 지역언론 기사는 찬밥
[주간경향]

“지역언론의 혁신은 지방분권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한 절대적 선결과제다. 지역언론의 올바른 비판과 감시 기능이 없다면 지방화 역시 왜곡되고 좌초될 수밖에 없다. 지역언론 역할의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지역언론이 처한 상황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 pixabay


오늘 나온 진단이라고 해도 손색없을 이 문장은 17년 전 부산지역 신문이 보도한 내용이다. 2003년에도 “지역언론은 고사상태”라는 말을 썼다. 전통미디어의 위기라는 말은 식상하다. 미디어환경 다변화로 신문·방송의 영향력은 날로 줄어드는데다 포털에서 지역언론 기사는 배제되기 일쑤다. 이미 산업적 위기를 겪어온 지역언론은 코로나19까지 덮치자 생존의 기로에 섰다.

“매체환경이 급변하더라도 자기 주변, 자기가 속한 지역에 우선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수용자들의 기본 취향은 바뀌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지역언론 시장은 여전히 발전 가능성이 있다” 17년 전 언론학 교수의 분석은 오늘도 유효하다. 다만 건강한 지역언론을 되찾기 위해선 내부의 혁신뿐 아니라 정책적 지원이 시급하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그래도 필요하다

“뭔가 축소된다는 느낌을 계속 받아왔어요. 자체적으로 만드는 프로그램 수가 줄고 공동 제작이 많아졌죠. 통폐합 이야기는 한 10년 전부터 계속 나왔고요.” 오랜 기간 지역방송사에서 일하고 있는 작가 A씨는 말한다. 최근 MBC·KBS의 지역사·지역국 통폐합 방침에 지역사회·내부 구성원들의 반발이 만만찮다.

“어찌 됐든 통합이 되면 지역의 뉴스를 지역만의 색깔과 시선으로 바라볼 순 없거든요. 만약 태풍이 동해를 지난다고 하면 서울의 방송들은 잘 다루지 않아요. 수도권을 강타한다고 하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태풍 뉴스를 다뤄요. 지역방송사가 인근 대도시로 통합된다고 하면 이곳의 뉴스들은 대형 폭발사고가 터지지 않는 이상 별다르게 나가지 않을 것 같다는 거죠.”

호남지역 방송기자 B씨도 위기를 실감한다. 그는 “전국 어딜 가나 (언론이) 어려운 상황인데 여기선 더 적나라하게 느끼고 있다”고 했다. 지역언론이 중앙언론에서 물리적으로 담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전하고, 주민의 목소리에 가까이 다가간다면서도 “오히려 시청자들과 멀어지기도 한다”고 했다. “지역언론 역시 도청·시청·경찰·검찰 등 출입처 위주로 짜여 있어요. 크지 않은 파이를 쪼개다 보니 시민들이 관심 없어 할 만한, 기초의원 정도만 알고 넘어가도 되는 뉴스들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유튜브나 콘텐츠 재가공 같은 문제에는 무관심하고요.”

최근 들어 지역언론에서도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등 의미 있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 지속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품은 많이 드는데 인력을 투입할 여력은 없기 때문이다. “일단 사람들이 무엇에 반응을 하는지도 모르는 상황이에요. 우리끼리 출입처 나눠놓고, 공무원들은 기사 보고 연락을 주니 ‘영향력이 있구나’ 생각할 뿐이죠. 진짜 반응이 오는 리포트를 만들어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렇게 적자가 심한 상황에서 인력을 확충하기는 힘들 거라고 생각은 해요. 때론 지역방송 할당에 대한 중압감이 보도의 질을 낮추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기사 꼭지 수를 줄이고 지금의 인력이 현장에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를 넓히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지역언론의 출입처 의존 보도 경향은 지표로도 나타난다. 대전충남민언련이 지난 8월 3일부터 14일까지 2주간 대전 주요 일간지 4곳과 인터넷신문 3곳의 보도를 조사했더니 총 6856개 기사 중 4406개(64.2%)가 보도자료성 기사였다. 대전충남민언련 이기동 대표는 “이미 90년대부터 전통언론과 지역언론 위기에 대한 진단이 다 나왔다. 이걸 구체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이 없으니 이 상태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언론사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먹고사는 문제도 중요하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논란에 빠질 수 있겠지만, 단편적 기사를 나열하는 것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이 알고 싶어하는 정보들을 제공하는 것부터가 문제해결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절실한 ‘외부 수혈’

지역언론의 위기를 두고 저마다 진단이 다양하다. 미디어 환경 변화에 대비하지 못했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지만, 지역언론 문제에 미온적인 정부를 향한 비판도 거세다. 지역언론은 아카데미·스포츠 등 각종 사업으로 수익을 내고 있는데 코로나19 장기화로 행사 개최가 어려워지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올린 내년도 지역신문발전기금 예산 94억원을 79억원으로 삭감했다. 전국 40여개 지역방송에 대한 방송통신발전기금 지원 규모는 40억원이다. 문체부 산하 아리랑TV와 국악방송, 언론중재위원회 세 곳에는 500억원이 지원되는 것과 대조적이다.

언론노조 지역신문노조협의회는 지난 8월 성명을 내고 “문재인 대통령은 공약에서 밝힌 ‘신문의 진흥과 지역신문 지원으로 건강한 신문언론을 발전시키겠다’는 약속을 지키라”고 촉구했다. 방송협회도 “방송의 지역성 구현과 지역 간 차별 해소를 위해 기금 지원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라며 지역방송 지원 규모 확대를 요구했다.

전대식 지역신문노조협의회 의장(부산일보 노조위원장)은 이론을 넘어서는 현실적 처방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내부적으로 우리가 저널리즘을 치열하게 고민해 양질의 콘텐츠 만들어야 하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자를 양성하거나 뽑아야 하는데 인건비 문제로 연결됩니다. 기자를 뽑을 여력도 안 되는 상황에서 내부적으로 뭔가 하자는 이야기들은 굉장히 공허할 뿐입니다. 뽑으려면 돈이 없고, 뽑아놔 봐야 (실력을 쌓아) 서울로 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현실입니다. 내부적 노력은 노력대로 가야 하고 외부적 지원도 따라야 합니다.”

지난 4월 구글은 ‘저널리즘 긴급 구제 펀드’를 만들어 지역언론 지원에 나섰다. 조건은 ‘저널리즘 구현’이었다. 지원금은 인건비·인쇄비 등 필요한 곳에 알아서 쓰도록 했다. 국내 지역지 상당수가 지원을 받았다. 전국 풀뿌리지역언론이 모인 바른지역언론연대 회장인 이영아 고양신문 발행인은 ‘정부도 네이버도 아닌 구글이 내민 손’이라는 칼럼을 썼다. “있는 돈도 못 쓰는 한국 정부와 조건 없이 긴급자금을 지원한 구글 사이의 서글픔, 지역신문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네이버와 국경을 넘어 한국의 지역신문을 찾아온 구글 사이의 씁쓸함이 밀려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기자협회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지역신문은 지역 여론의 장으로서 미디어 생태계 안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지역문화 향상에 기여하고 지방 분권 시대를 여는 데도 중요한 토대가 된다”며 지역신문에 대한 안정적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2022년 종료되는 한시법인 지역신문발전지원특별법을 상시법으로 전환하는 것을 국정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주간경향 표지이야기 더보기▶ 주간경향 특집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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