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방역은 정상과 예외 상태 구별 안 되는 취약한 법질서의 산물"

박은하 기자 2020. 10. 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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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사회'에 실린 박이대승 불평등과시민성연구소장 글
"기본권 제한 과정서 '예외 상태' 선언 없어..관련 조항 미비"

[경향신문]

집단감염 이어지는 정신과 병원 집단감염이 발생한 서울 도봉구 창동의 한 정신과 전문병원이 코호트 격리(동일집단 격리) 조치되면서 4일 건물 전체가 폐쇄돼 있다. 200병상 이상의 규모를 갖춘 이 병원에서는 지난달 28일 첫 확진자가 나온 이후 전날까지 확진자가 모두 46명으로 늘어났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지난 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등장한 ‘경찰 차벽’은 방역의 딜레마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코로나19 방역은 헌법에 보장된 시민의 기본권을 억누르며 이뤄진다. 이동을 제한하고, 영업을 금지하고, 집회를 불허하는 일 등이다.

한국에서는 확진자 동선을 공개하는 방식까지 추가됐다. 이 같은 방식으로 이뤄지는 이른바 ‘K방역’은 정상 상태와 예외 상태가 구별되지 않는 취약한 법질서 체계를 반영하며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주장이 나왔다.

지난달 발간된 계간 ‘문학과 사회’ 131호(2020년 가을호)는 박이대승 불평등과시민성연구소장의 ‘예외 상태의 정상화, 혹은 예외로서의 정상 - 팬데믹 이후의 법과 국가’를 게재해 이 같은 주장을 소개했다.

지난 3월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방역당국은 감염자의 개인정보에 동의 없이 접근해 동선을 일일이 추적한 후 파악된 동선을 모두에게 공개하고, 감염자와 접촉한 집단을 강제격리하는 방식을 택했다.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이후 제정된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76조 2항에 근거한 조치이다. 이 조항이 언제, 어떤 절차를 거쳐 발동돼야 하는지 규정하는 부수적 조항은 없다. 박이 소장은 “이 조항은 개인의 헌법적 권리를 침해한다”고 말했다.

지난 5월 이태원 클럽에서 확진자가 발생하자 정부는 이 법을 근거로 이동통신사 이태원 기지국에 신호가 잡힌 1만명의 정보를 수집했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은 이 법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대규모 위기 해결과 공공의 안전을 위해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제한하는 일은 해외에서도 일어난다. 차이는 정상적 상태에서 헌법의 효력을 중단하는 ‘예외 상태’를 선언하는 과정이 있었다는 점이다. 지난 3월11일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을 선언하자, 미국 정부는 1976년 발효된 ‘국가 비상사태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3월13일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프랑스 정부는 3월16일 공중보건법에 의거해 긴급 이동제한 명령을 선포한 뒤 법적 근거 논란이 일자, 의회가 3월23일 보건 긴급사태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사후적 규정을 마련했다. 이렇게 정상과 예외를 구분하는 것은 정상적 상태에서는 기본권이 굳건히 지켜져야 한다는 법질서의 원리가 반영돼 있다.

박이 소장은 “한국의 법질서의 특징은 예외와 정상이 구분되지 않는다는 점”이라며 “어떤 조건에 따라 예외 상태를 선언하고 종료해야 하는지를 규정한 헌법 조항이나 법률이 없다”고 말했다. 헌법에 계엄에 관한 내용이 있지만 비상시 군 동원에 관한 내용이다. 그는 “국가권력은 굳이 예외 상태를 선언하지 않아도 비헌법적 수단을 활용하고 일상적으로 개인의 권리를 규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감염병예방법의 위헌 소지가 있는 조항이 뒤늦게 논란이 되거나 경찰의 차벽 설치, 차량 시위에 대한 전면 금지 시도 등이 단적이다.

박이 소장은 이런 법질서를 바탕으로 한 ‘K방역’은 현재까지는 감염 확산을 효과적으로 차단했지만, 앞으로도 유지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신속한 조치가 가능하나 논란에 취약하다. 끊임없이 위헌 논란이 불거지다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오면 조치의 정당성을 잃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정상 상태가 불분명한 국가기구의 권한 행사는 자의적이 되기 쉽고, 헌법을 쉽게 위배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그는 “진정한 위기는 위기 이후 돌아가야 할 평범한 일상을 상상할 수 없을 때 시작된다”며 법과 통치의 정상적 절차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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