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기의 시시각각] "국민 위해 목숨 건 대통령은 없다"

전영기 2020. 10. 5.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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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존재 이유를 물은 나훈아
물새 먹잇밥 되도록 자국민 방치
추미애 장관은 언론·야당에 협박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9월 30일 공연에서 나훈아가 “국민이 힘이 있으면 (뻔뻔스러운) 위정자들이 생길 수가 없다”고 얘기한 지 이틀 만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악의적·상습적인 가짜뉴스를 유포하는 언론에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하겠다. 허위 비방과 날조를 일삼는 국회의원들에게 합당한 조치가 없다면 가능한 모든 법적 수단을 강구할 것”이라는 페이스북 글을 보았다. 기자는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서 추 장관이 국민을 향해 협박하고 있는 것이라고 느꼈다. 그의 안하무인과 억지, 뜬금없는 결론에 역겨움이 생겼다.

국민이 준 법무장관이라는 권력을 자기와 자기 아들을 방어하기 위해 저렇게 뻔뻔스럽게 사용해도 되는 걸까. 공직자의 권력은 국민을 보호하는 데 사용해야 하는 것 아닌가. 국민이 힘이 있다면 저렇게 대놓고 야당과 언론을 짓밟고 멸시할 수 있을까. 정부의 존재 이유에 대한 의문이 꼬리를 문다.

법무부 장관은 시종일관 “아들이 군인의 기본권인 연가를 적법하게 사용했다. 자신에게 보장된 권리를 행사하는 데 무슨 청탁이 필요하고 외압이 필요한가”라고 말했다. 우리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권리가 법에 보장됐다고 해서 그 행사가 항상 적법하지는 않다. 권리 행사가 적법하려면 별도의 법령에 따라 절차와 형식을 갖춰야 한다. 절차와 형식을 무시하고 벌이는 청탁이나 외압은 그 자체로 불법이다. ‘권리가 있기에 자동적으로 행사도 적법하다’는 제 자식 보호론은 법리상 궤변인 데다 ‘배가 고프면 도둑질하라’는 말처럼 위험하다.

인사권자(법무부 장관)한테 면죄부를 준 듯한 서울동부지검의 수사 내용에 따르더라도 추 장관은 자기 보좌관의 카톡에 아들 부대의 지원장교 전화번호를 남겼다. 보좌관은 장관이 전화번호를 남기자마자 “네”라고 한 뒤 “바로 통화했는데 (지원장교가) 예외적 상황이라 내부 검토 후 연락을 주기로 했다”는 답변을 추 장관한테 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예외적 상황’인 추미애 아들의 휴가 연장은 어떻게 청탁이나 외압 없이 적법이 됐을까.

추 장관은 “전화번호 전달을 (내가) 보좌관에 대한 지시로 볼 근거가 없다”고 억지를 부렸다. 그는 지시로 볼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보좌관과 지원장교가 1주일 전에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점을 댔다. 그렇다면 추 장관은 ‘지원장교의 010-XXXX-XXXX’ 전화번호를 보좌관의 카톡에 왜 남겼나. 보좌관과 지원장교 사이의 1주일 전 연락 사실은 추 장관이 보좌관에게 지원장교의 전화번호를 건네준 사실과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다. 맥락상 보좌관에게 명백한 지시를 해놓고 인과관계 없는 과거의 사실을 들이대 지시하지 않은 증거라고 주장하는 것은 꼴불견이다. 동부지검은 최소한 ‘청탁 금지법’ 위반이나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혐의에 해당하는 사실을 밝혀 놓고도 추미애식 꼴불견 해석을 따라 무혐의 처분을 내렸으니 그 죄를 더할 뿐이다.

사실 정부의 존재 이유는 추미애가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한테 물어야 할 문제다. 나훈아가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이 나라를 누가 지켰냐 하면 모두 보통 국민이 지켰다”고 한 말을 문 대통령은 자신과는 관계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제 나라 국민이 영문도 모르고 총살당해 불에 태워졌거나 물새의 먹잇밥이 됐는데도 살해 책임자에 대해 항의 한마디 하지 않았다. 오히려 살해 책임자를 각별하게 받아들였다. 이 정권의 사람들은 대통령의 처신을 ‘통 큰 포용’이라고 하는데 제 자식을 죽인 옆집 사람한테도 그럴 수 있겠는지 묻고 싶다. 대한국민은 앞으로 목숨을 스스로 챙겨야 할 때가 올지 모른다. 정부가 자국민 보호를 포기하는 나라가 되면 그렇게 될 것이다. 이 나라를 지킨 것은 대통령이 아니라 보통 국민이었다는 나훈아의 인식은 슬플 정도로 통렬하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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