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돌격대 아니면 나팔수만 보이는 與黨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2020. 10. 5.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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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실패 상기하자면서 내부 의원들 입단속만 치중
금태섭 의원 징계 관철은 다른 의견 不容한다는 메시지
5공 시절보다 더한 言路 차단..권력 妄動 방기한 책임 져야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지난 4월 총선에서 승리한 후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당선자 전원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 내용은 2004년 열린우리당 실패의 교훈을 잊지 말자는 것이었다. “우리는 승리에 취했고 과반 의석을 과신해 겸손하지 못했다”고 했지만, 사실 강조점은 “자신의 생각보다 당과 정부, 국가와 국민의 뜻을 먼저 고려해서 말과 행동을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는 데 있었다. 풀어 말하면, ‘튀려고 하지 말고’ 당에서 시키는 대로 하라는 것이다. 그 후 민주당은 그 전해 공수처 법안 투표에서 당론을 거스르고 기권 표를 던진 금태섭 전 의원에게 징계를 내렸다. 그 건으로 공천을 못 받아 선거에 출마도 못 한 금 전 의원에게 또다시 징계를 내린 것이다. 굳이 이렇게까지 처벌할 필요가 있었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더불어민주당 의원들, 특히 초선들에게는 이 대표가 편지를 통해 던진 경고가 결코 빈말이 아니라는 걸 실감하게 해 주는 일이었다. 이렇게 여당 의원들은 ‘군기’가 잡혔다.

추석 연휴를 마치고 돌아온 의원들은 지역구민들이나 친척들에게 문재인 정부 국정 운영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제대로 정당정치가 돌아간다면 그런 의견들이 당내 논의나 국회 활동을 통해 활발하게 제기되어야 하지만 이런 역할을 여당 의원들에게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동안 여당 의원들은 청와대의 나팔수나 돌격대 이외의 모습을 보여준 바 없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그동안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을 겪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여당의 이런 무기력 또한 매우 드문 일이다. ‘제왕적 당 총재’라는 비판을 받아왔던 김영삼, 김대중 정부 때에도 아들 문제로 인한 잡음이 끊이지 않자, 자식 문제라는 사안의 예민함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우려를 대통령에게 제기한 건 여당 의원들이었다. 심지어 전두환 정권하에서도 여당은 지금과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1985년 전두환 정권이 학원 소요 관련 학생들을 격리 수용해서 ‘선도 교육’을 하겠다는 학원안정법을 추진했을 때 여당인 민정당 내에서도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고, 반대 입장을 천명한 원내총무 이종찬은 이로 인해 경질되었다. 딴소리를 할 수 없는 지금의 여당은 김영삼, 김대중 정부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전두환 시절의 여당만큼도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는 것이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발생한 ‘노무현 탄핵’ 여파 속에서 신생 정당 열린우리당은 152석을 차지하는 돌풍을 일으켰다. 당선자 가운데 3분의 2인 108명이 초선이었다. ‘백팔번뇌’라고 불릴 만큼 이 초선 의원들은 사안마다 문제를 일으켰고 이런 혼란 속에 당 의장의 임기는 4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더욱이 노무현 대통령이 ‘당정 분리’를 맹목적으로 지키면서 여당은 더욱더 통제되지 못했다. 노 정부가 결정한 이라크 파병에 대해 반대의 선봉에 선 것도 열린우리당 의원들이었다. 결국 당정 분리는, 노 전 대통령이 임기 말 토로한 대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경고 편지를 보내고 금 전 의원에 대해 반복해서 ‘본때를 보여준 건’ 바로 이러한 ‘열린우리당의 교훈’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그때와는 정반대로 여당에서 딴소리가 아예 나올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하지만 정당의 역할은 시민사회와 정부를 연결해 주는 것이다. 다양한 국민의 소리를 듣고 그걸 권력층에 전달하는 것이 여당의 역할이다. 당정 분리를 위해 당의 목소리를 듣지 않겠다는 노 전 대통령의 생각이 애당초부터 잘못되었던 것인 만큼이나, 여당 의원들의 입을 틀어막아 다른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도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지금의 여당은 정치적 소통의 매개체이거나 하의상달(下意上達)의 통로라기보다는, 대통령과 청와대를 홍보하고 수호하며 그 반대 의견을 억압하고 비판하는 전위대로 기능하고 있다. 현 정권의 편협함에는 이처럼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여당의 무능함도 한몫을 하고 있다.

정치의 세계에서 언로(言路)는 인체의 혈관과 같은 것이다. 혈관이 막혀 피가 제대로 돌지 않으면 건강에 치명적 위험이 오는 것처럼 언로가 막히면 권력은 추락할 수밖에 없다. 여당이 입을 다물면 권력 집단 내부의 조기 경보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는다. 결국 호미로 막을 수 있는 일을 가래로도 막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열린우리당 때는 당정 분리로 인해 언로가 막혔다면 이번에는 당 내외의 압력 속에 여당 의원들의 입에 재갈이 물려졌다. 더불어민주당은 과연 열린우리당의 실패와는 다른 길로 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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