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감사위원에 中 경쟁사 스파이 앉혀라?..재계는 '패닉'

심재현 기자 2020. 10. 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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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경제 일방통행 기로에 선 재계]<1>상법 개정안 '독소조항' 논란

[편집자주] 정부와 정치권이 '공정경제' 명분을 앞세워 그간 기업이 반대해온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처리 강행에 나섰다. 재계의 반발이 거센 가운데 개정안의 독소조항을 점검하고 대안과 함께 기업 활성화를 위한 추가 입법사항을 찾아본다.

삼성 이사회에 중국 경쟁업체 이사가? 스파이 걱정에 잠 못자는 재계
1-① 감사위원 분리선출·대주주 의결권 3% 제한
"아군 작전회의에 적군 장수가 참여하도록 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송원근 연세대 교수)

정부가 추진하는 상법 개정안의 감사위원 분리선출과 대주주 의결권 3% 제한 조항을 두고 재계의 우려가 크다. 해외에서도 입법 사례가 없는 규제를 도입하겠다는 정치권에 대한 원초적인 실망감이 터져나온다.

◇한국적 특수상황 '재벌개혁' 때문이라지만…


개정안의 감사위원 분리선출 조항은 감사위원이 되는 이사회 이사 가운데 최소 1명 이상을 이사 선출 단계부터 따로 뽑도록 하는 것이다. 개정안은 이때 최대주주 의결권을 특수관계인 지분을 포함해 최대 3%로 제한하도록 했다.

도입 취지는 그동안 최대주주의 입맛에 맞는 인사가 감사위원으로 선출되면서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을 받아온 감사 기능을 보완하겠다는 것이다. 정부 여당과 일부 야당은 '재벌'이라는 한국의 특수상황을 감안할 때 기업을 정상화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방안이라는 입장이다.

개정안 처리를 주도해온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사회의 구성을 다양하게 만들 수 있도록 길을 열어야 이사회가 제 기능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30대 기업 중 29곳, 투기자본에 노출


재계에서도 그동안 일부 기업에서 감사 기능이 부실했다는 점은 인정한다. 문제는 개정안이 원안대로 시행되면 기업의 방어권이 사실상 보장되지 않는 데다 이 때문에 영향을 받는 기업의 범위가 지나치게 광범위하다는 점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 따르면 개정안 시행 이후국내 시가총액 상위 30위 기업 가운데 최대 29개사의 이사회에 해외 기관투자자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감사위원을 진출시킬 수 있다.

이를테면 삼성전자의 경우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 삼성물산, 삼성생명 등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이 21.2%에 달하지만 감사위원 선출 땐 의결권이 3%로 제한된다. 반면 해외 기관투자자인 블랙록, 뱅가드, 캐피털리서치앤드매니지먼트, 노르웨이 은행투자운영위원회 등 4곳의 지분만 합해도 의결권이 10%를 넘는다.

해외 투기자본이나 경쟁사가 '의도'를 갖고 손을 잡으면 삼성전자나 현대차 감사위원으로 중국 경쟁사 인사나 2006년 KT&G 먹튀 논란을 일으켰던 헤지펀드 칼아이칸 같은 '기업 사냥꾼'이 진입하는 경우를 배제할 수 없게 되는 셈이다.

◇영업보고·회계장부 열람 '권한 막강'…해외서도 입법사례 없어


감사위원의 권한은 감안하면 좀더 생생하게 재계의 우려를 체감할 수 있다. 감사위원은 회사 영업에 관한 보고·조사권, 각종 서류·회계장부 요구권, 자회사에 대한 영업보고 요구권 등을 갖는다. 주요 경영사항을 결정하는 이사회 구성원이기도 하다. 사실상 기업의 핵심부를 적진에 노출하게 될 수 있다.

유정주 전경련 기업제도팀장은 "감사위원 분리선출 제도가 정부 기대와 달리 외국 투기자본이나 경쟁사가 국내 기업의 이사회를 장악하게 하는 발판이 될 수 있다"며 "핵심 정보에 손쉽게 접근할 기회가 되거나 먹튀 논란의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주주 권한 강화에 민감하고 이를 활용한 투기자본이 일찌감치 발달한 미국, 영국 등 해외에서 감사위원 분리선출과 최대주주 의결권 제한에 신중한 것도 이런 우려 때문이다. 해외에서는 감사위원 분리선출제도를 입법한 사례가 없다.

◇대기업 견제 불똥에…중견·중기 '전전긍긍'

재계 일각에서는 정부와 정치권이 재벌개혁을 앞세워 추진하는 상법 개정안이 오히려 중견·중소기업을 구석으로 몰아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상법 개정안이 주요 규제 대상으로 하는 상장사 가운데 대기업은 15% 수준에 그치고 나머지는 모두 중견·중소기업이다.

중견기업연합회 관계자는 "시장의 관심이 크고 내부 방어시스템도 탄탄한 대기업보다 중견·중소기업이 외부 세력의 표적이 될 우려가 크다"며 "가뜩이나 취약한 중견·중소기업 생태계가 한번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20대 국회(2020년 5월30일~2020년 5월29일)까지는 국내 정치권에서도 이런 문제 때문에 대체로 감사위원 분리선출 도입에 신중한 입장이었다. 상법을 담당하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당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간사를 맡았던 김진태 전 의원은 "감사를 그냥 내주고 세계 기업의 파고를 헤쳐나가라는 것이냐"라며 법안을 반대했다.

◇"감사 독립성 강화 땐 방어장치도 보완해야"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달 21일 국회에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한 대안을 담은 리포트를 전달했다. 리포트에는 투기펀드 등이 이사회에 진출하려고 시도할 경우만이라도 최대주주의 의결권 제한을 완화해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감사의 독립성을 보장한다는 취지를 받아들이되 기업의 방어장치를 보완하는 방식이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이날 긴급 기자간담회에서 "불공정거래를 바로잡고 대주주의 전횡을 막겠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동기를 놔둔 채 결과만 갖고 규제하면 부작용을 낳게 된다"며 "합리적인 대안은 무엇인지, 예상되는 부작용은 무엇인지 검토하고 토론하는 자리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 집 한채 값에 SK 자회사도 줄줄이 소송 노출
1-②다중대표소송제
정부가 상법 개정안에서 도입하려는 다중대표소송제를 두고 재계에서 걱정이 터져나오는 것은 기업의 소송 리스크가 급격하게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정안은 비상장회사 주식 지분의 100분의 1이나 상장회사 지분의 1만분의 1만 보유하면 해당 회사가 50% 이상을 출자한 자회사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SK 14억, 한국콜마 4000만원…때아닌 지주사 리스크


개정안이 시행되면 SK그룹의 지주사인 ㈜SK의 경우 시가총액 13조9665억원(9월29일 기준)의 0.01%인 13억9665만원의 지분만 확보해도 ㈜SK가 5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SK E&S, SK실트론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된다. 서울 지역의 웬만한 지역 집 한 채 값만 있으면 SK그룹을 상대로 소송전을 벌일 수 있는 셈이다.

중견기업의 경우에는 '문턱'이 더 낮다. 풀무원과 한국콜마홀딩스 같은 중견지주사는 4000만~6000만원 수준의 확보하면, 중소기업 상장사의 경우 100만원대 지분만 확보해도 자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 수 있다.

◇4대 그룹에서만 50개사 이상 소송 위험 노출

좀더 파고들면 4대 그룹에서만 다중대표소송제 리스크에 노출되는 기업이 50개사를 넘어선다. 삼성그룹에서는 347억원 안팎의 삼성전자 지분으로 삼성디스플레이(84.8%·이하 삼성전자 보유지분), 삼성메디슨(68.5%), 삼성전자판매(100%), 세메스(91.5%), 삼성전자서비스(99.3%), 스테코(70%), 삼성전자로지텍(100%) 등 7개사에 소송을 걸 수 있다.

삼성생명 지분 12억원어치를 보유하면 삼성카드, 삼성자산운용, 삼성SRA자산운용, 삼성생명금융서비스보험대리점, 삼성생명손해사정 등 5개사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현대차그룹에서는 현대오트론·현대캐피탈·현대케피코, SK그룹에서는 11번가·SK에너지·SK종합화학·SK인천석규화학·SK모바일에너지·SK루브리컨츠·SK하이닉스시스템·SK브로드밴드, LG그룹에서는 하이프라자·하이엠솔루텍 등이 다중대표소송제 도입에 따른 소송 가능 기업에 들어간다.

◇소송 리스크 3.9배 늘어…"기업 발목에 납덩이 다는 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은 다중대표소송제가 도입되면 상장사의 경우 소송 리스크가 최대 3.9배 상승할 것으로 예상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단순하게 소송 비용이 늘어나는 것뿐 아니라 기업인의 경영활동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 부담이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다중대표소송제가 도입되면 글로벌 경쟁사가 국내 기업을 상대로 악의적인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커진다"며 "정부가 글로벌 시장에서 뛰는 한국 기업들의 발목에 커다란 납덩이를 다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장은 "소송을 당했다는 사실만으로 평판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며 "소송 대상이 기업이 아닌 이사이지만 이를 빌미로 적대적 투자자가 이사 선임에 간섭하는 등 경영권을 흔들 수 있기 때문에 기업도 상시적인 소송 리스크에 노출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일은 100% 자회사만 허용…소송 남용 방지책 마련

재계에서는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라는 정치권 요구에 따라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그룹이 된서리를 맞게 됐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지주사 지분 1%만 투기세력에게 넘어가도 피지배 계열사 전체가 투기세력의 소송전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는 다중대표소송제의 요건을 엄격하게 제한한다. 미국은 모자회사가 100% 지배관계이거나 경영진이 같아 사실상 하나의 회사로 봐도 무방한 상태에서만 다중대표소송을 인정한다.

일본은 모자회사가 100% 지배관계이고 모회사를 100% 지배하는 또 다른 모회사가 없을 때 다중대표소송을 허용한다. 추가로 모회사에 '중요한 자회사'일 경우여야 대표소송이 가능하다. 부당이득을 목적으로 하거나 모회사에 손해가 나지 않은 사안에 대해서는 대표소송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조문도 있다. 모두 소송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투기펀드 '엘리엇'은 왜 '현대차'에 집중투표제 요구했나
1-③ 집중투표제

"현대자동차와 기아차, 현대모비스 정관을 고쳐 집중투표제를 배제하는 조항을 없애라."

2018년 4월. 당시 지배구조 개편안을 발표한 현대차그룹에 대해 미국계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은 이같이 요구하며 공격의 고삐를 죘다. 한국 정부가 집중투표제 의무화가 포함된 상법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을 파고 들어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개정되지도 않은 상법을 들고 나온 엘리엇의 주장을 일축했지만 '집중투표제'가 보유지분이 낮은 헤지펀드에 유리한 협상 카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각인시켰다.

집중투표제는 주주총회에서 등기이사를 선임할 때 주식 1주당 1표씩 의결권을 주는 기존 방식과 달리 선출하는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주는 제도다. 이를테면 5명의 이사를 선출할 경우 1주를 가진 주주는 5표(의결권)를 행사할 수 있고 이를 1명의 이사에게 몰아줄 수 있다.

이에 따라 소액주주들도 자신들을 대표하는 이사 선출이 가능하고, 대주주가 내세운 이사 선임을 막을 수 있다. 소액주주 권익 보호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투기 자본에 악용될 소지도 있다.

2006년 영국계 헤지펀드인 칼 아이칸이 다른 외국계 투자자들과 손잡고 집중투표제를 악용해 이사를 선임했던 KT&G 사례가 대표적이다. 칼 아이칸 연합은 이후 경영진 교체 요구 등 KT&G를 공격해 약 1500억원의 시세차익을 챙긴 뒤 떠나면서 '먹튀' 논란을 일으켰다. 재계에서 집중투표제 도입을 우려하는 이유다.

하지만 여당을 중심으로 상법개정안 추진이 속도를 내면서 집중투표제도 포함될 가능성이 커졌다. 당초 경영권 침해에 대한 지적이 나오면서 정부가 제출한 '공정경제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에 빠졌지만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안 발의와 함께 국회 통과를 강력하게 밀어부치고 있어서다.

박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도 약속하고 민주당 당론 법안에도 담겨져 있고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에도 있던 집중투표제가 정부 입법안에선 실종됐다는 사실이 놀랍다"며 "재벌개혁은 둘째치고 합리적인 기업운영의 밑돌을 놓아주려는데 중요한 나사 하나 빠진 채로 국회로 넘어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앞서) 발의한 상법 개정안에 집중투표제가 있는 만큼 국회에서 바로 잡아야 한다"며 "관료들은 한 발 뺐지만 민주당은 거대여당으로서 개혁입법을 완수할 책임감을 갖고 누락된 집중투표제를 보완해 통과시켜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재계는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청구요건 완화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1주 1의결권 원칙' 등 시장경제원칙과 주주기본권을 침해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국가가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고 있지 않거나, 부작용 많아 오래전부터 기업 자율 도입으로 전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도 1940년대까지 22개주에서 의무화했지만 1950년대 이후 대부분 임의규정으로 바꿨다. 현재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한 국가는 칠레와 멕시코, 러시아 등 3개국 불과하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단독주주도 집중투표를 청구할 수 있도록 하면 총회꾼과 투기자본의 경영위협 수단으로 악용될 것"이라며 "집중투표제 의무화를 추진할 경우 일부 주식에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해 해당 주주의 지배권을 강화하는 차등의결권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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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현 기자 urme@mt.co.kr, 최석환 기자 neokis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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