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집권 세력만 누리는 '여행의 자유'

조미현 입력 2020. 10. 6. 00:19 수정 2020. 10. 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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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짓을 한다면 부담이지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 내 삶을 사는 것인데 다른 사람을 신경 쓰면서 살 수는 없지 않느냐."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남편 이일병 연세대 명예교수가 지난 3일 미국행(行) 비행기를 타기 전 언론에 한 말이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말처럼 공직자 가족이어도 '개인의 사생활'은 보호돼야 한다.

이 교수의 행보가 씁쓸한 뒷맛을 남긴 건 그가 '호화 요트'를 사려고 해서도, 미국에 가기 8개월 전 베트남을 다녀와서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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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와중 해외로, 지방으로
힘 없는 국민만 발 묶어 놓나
조미현 정치부 기자 mwise@hankyung.com

“나쁜 짓을 한다면 부담이지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 내 삶을 사는 것인데 다른 사람을 신경 쓰면서 살 수는 없지 않느냐.”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남편 이일병 연세대 명예교수가 지난 3일 미국행(行) 비행기를 타기 전 언론에 한 말이다. 코로나19가 확산하는 와중에 자유여행을 하는 게 공직자 가족으로서 적절하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야당은 물론 여당조차 ‘부적절한 처신’이라고 비판했지만, 사실 이 교수의 말은 틀린 게 없다. 이 교수가 감염병에 확진이 되거나 자가격리 수칙을 어기고 돌아다닌 것도 아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말처럼 공직자 가족이어도 ‘개인의 사생활’은 보호돼야 한다. 이 교수의 행보가 씁쓸한 뒷맛을 남긴 건 그가 ‘호화 요트’를 사려고 해서도, 미국에 가기 8개월 전 베트남을 다녀와서도 아니다. 이 교수가 말한 ‘내 삶’이 나머지 일반 국민에게는 허락되지 않아서다.

지난 추석 두 돌 된 손자를 노부모에게 보여드리는 즐거움을 참은 사람이 있다. 쫓기는 일상에서 벗어나 귀한 휴가를 쪼개 해외여행을 떠나는 것을 낙으로 삼다 접은 사람도 있다. 공동체에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마음에 자기 삶의 일부를 포기한 것이다.

박병석 국회의장이 지난달 26일 6박8일 일정으로 유럽 순방길에 올랐을 때만 해도 공무(公務)라는 이유로 그런가보다 했다. 문재인 대통령조차 지난해 12월 중국 방문을 마지막으로 해외 순방 일정을 ‘올스톱’했지만, 박 의장 측은 미루고 미룬 일정이라고 설명했다. 박 의장은 그러나 당초 방문이 예정된 체코는 현지 코로나19 상황 탓에 들르지도 못했다.

지난 1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노무현 전 대통령 참배를 위해 봉하마을에 방문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허탈감마저 들었다. 정부는 연휴 전 “불효자는 고향에 온다”고 했고, “온라인으로 성묘를 하라”고도 했다. 전국의 부모님은 자식을 불효자로 만들지 않기 위해 방문을 마다했다. 그런데 여당 대표는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했다. 순전히 정치적 지지 기반을 다지기 위한 목적으로밖에 보기 어렵다.

이 교수의 여행도, 박 의장의 순방도, 이 대표의 참배도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코로나19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여행을, 순방을, 참배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국민도 알아야 한다.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은 4일 SNS에 이렇게 썼다. “굳이 엄격히 준수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이 있다면 힘 있는 분들의 이탈만 용인할 것이 아니라 수칙을 수정해 국민 전체에게도 알려주십시오.”

동의한다. 코로나의 종식이 어렵다면 이제는 코로나와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국민과 공유할 때다. 이동의 자유가 집권 세력과 주변 인사들에게만 허락돼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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