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이 할 일을 한명이..근무중 낚시도 간 현대차 노조

류정 기자 2020. 10. 6. 03: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황당한 노조 관행, 경직된 노동법.. 기업 발목잡고 청년채용 막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제5공장에서 직원들이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인 투싼ix 차체를 조립하고 있다./현대자동차

현대차 울산공장 일부 직원은 ‘묶음 작업’이라는 일 '몰아주기’를 한다. 2~3명이 할 일을 1명이 몰아서 하고 나머지 직원은 그냥 쉬는 것이다. 2명의 일을 1명이 하면 ‘두발 뛰기’, 3명의 몫을 1명이 하면 ‘세발 뛰기’다. 이렇게 번갈아가면서 몰아주기를 하다 보면 적게는 20~30분, 많게는 1시간씩 놀 수 있다. 현대차는 최근 이런 ‘묶음 작업’으로 근로 태만 행위를 한 직원 50여 명을 적발해 징계 처분을 내렸다.

현대차 직원들은 이런 일 몰아주기뿐 아니라 ‘내려치기’ ‘올려치기’ 같은 수법으로 휴식 시간을 확보한다. 컨베이어 벨트 위의 차가 다가오기 전에 5~6대를 빠르게 ‘내려치며’ 작업한 뒤 쉬다가, 이번엔 작업 안 된 차 5~6대가 다 지나간 뒤에 뒤에서부터 앞으로 ‘올려치며’ 작업한다. 이렇게 하면 휴대폰으로 축구나 영화를 볼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내려치기'를 활용하면 ‘조기 퇴근’도 가능하다. 퇴근 시간보다 10~20분 먼저 작업장을 떠나, 정문에 대기하고 있다가 퇴근 시간 정각에 문이 열리면 곧바로 나가는 것이다. 최근 현대차는 상습적으로 조기 퇴근을 반복하며 낚시를 다닌 직원을 정직 처분 했다. 전 세계 현대차 공장 중에서도 이런 식의 느슨한 근무를 할 수 있는 곳은 한국밖에 없다. 현대차 한국 공장의 임금 수준은 전 세계 공장 중 단연 최고로 알려져 있다.

현대차 노조가 이런 ‘귀족 노조’가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한번 채용하면 해고가 거의 불가능한 한국의 경직된 노동법과, 이를 무기 삼아 파업을 일삼아 왔던 강성 노조가 있다. 현대차 노조는 단 하나의 조립 과정만 빠져도 차가 완성되지 않는 자동차 공장의 특성을 악용, 각종 혜택을 요구하며 단체협약을 계속 노조 측에 유리하게 고쳐 왔다. ‘정년퇴직자 자녀 우선 채용’이나 ‘공장 내 와이파이 설치’ 같은 황당한 단체협약이 이런 과정에서 생겨났다가 여론의 비판을 받고 사라졌다. 아직 남아 있는 ‘노조 동의 없는 전환배치 금지’ 조항은 전 세계에서 한국 자동차 공장(현대·기아차, 한국GM)에만 존재한다.

현대차 울산공장의 편성효율은 55%로, 100명이 할 수 있는 일을 200명이 하는 수준이다. 현대차 미국·체코·터키 등 해외 공장은 대부분 편성효율이 95% 이상이다. 하지만 회사는 한국의 노동법과 노조와의 단체협약에 따라 울산공장 직원들을 해고하거나 다른 곳에 배치할 수 없다. 생산 속도를 높이는 것도 노조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현대차 직원들이 각종 ‘기술'을 동원해 휴식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건, 컨베이어 벨트가 느리게 돌아가는 데다 인력이 적정 수준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지난해 생산직 신입 채용을 중단했다. 기존 인력도 부담스러운데, 도급 직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하는 부담까지 져야 하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2012년 이후 제조 공장의 도급업체 직원들을 ‘불법 파견’으로 규정하는 판결이 잇따르고, 노조의 압박이 지속되자 현재까지 도급 직원 9100명을 정규직으로 고용해왔다.

다른 자동차 업체 사정은 더 심각하다. ‘불법 파견’ 문제 때문에 한국GM은 회사 존립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 6년간 3조원대 적자가 누적된 한국GM은 도급 직원들로부터 40여 건의 소송에 시달리며 2000억원의 법원 공탁금을 내야 할 처지다. 이 회사 CEO인 카허 카젬 사장은 검찰에 기소돼 출국 금지돼 있다. 시장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 파견 근로를 폭넓게 허용하는 미국·유럽 등 해외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한번 채용하면 시장 상황과 관계없이 끝까지 책임져야 하고, 도급도 쓰기 어렵고, 강성 노조에 항상 휘둘리는, 노조만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말이 나오는 것이다.

이처럼 노동 경직성이 높아지면서 부작용도 커지고 있지만, 정부는 이념적 접근만 고집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기업 내 비정규직을 없애겠다고 선언하고 밀어붙임으로써, 인천공항 정규직 노조와 취업 준비생들이 반발하는 이른바 ‘인국공 사태’를 일으켰다. 노무현 정권(2007년) 때 도입된 ‘비정규직 보호법’은 비정규직을 보호하기는커녕 되레 2년짜리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모순을 낳았지만 법은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5일 “상법 개정안 등 경제 3법뿐 아니라 노사 관계, 노동법도 함께 개편하자”고 제안한 것도, 경직된 노동법과 노사 관계가 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일자리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봤기 때문이다. 박지순 고려대 교수는 “우리 노동법은 이데올로기 싸움 때문에 시대에 맞지 않게 뒤처져 있다"며 "기업과 근로자가 상생할 수 있는 노동법 현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