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차벽' 운용지침 무시했나..코로나 집회 대응 '도마'

CBS노컷뉴스 박정환·차민지 기자 2020. 10. 6. 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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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2017년 경찰개혁위 권고에 따라 '차벽 지침' 개정
'원칙적으로 차벽 사용하지 않는다', '시민 불편 최소화'
경찰 "차벽, 불가피했다..코로나19 등 상황 감안"
코로나19와 집회의 자유 여전한 논란거리
개천절인 3일 오전 서울 광화문 도로에 돌발적인 집회·시위 등을 차단하기 위한 경찰 버스가 줄지어 서있다. (사진=연합뉴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경찰이 지난 3일 보수단체들의 '개천절 집회'를 총력 차단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 방식을 두고 '물음표'가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 광화문 광장 일대를 둘러싼 과도한 '차벽'은 2008년 '명박산성'을 연상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청 내부 지침에는 '차벽은 집회 현장에서 원칙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다. '인권 경찰'을 강조하던 문재인 정부 초기 경찰개혁위원회 권고를 따른 것이다. 코로나19 시국 속에 집회의 자유 보장과 적절한 공권력 투입의 '조화'가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경찰, 2018년 개정한 '차벽운용지침' 지켰나

6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지난 2018년 6월 '집회시위현장 차벽운용지침'을 개정했다.

입수한 지침 '제2장 설치 및 운용'에 따르면 △집회·시위현장에서는 원칙적으로 차벽을 사용하지 않는다 △차벽은 경찰 통제선, 경찰 인력만으로 집회·시위 참가자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거나 집회·시위 참가자들의 과격 폭력행위(화염병·죽창·쇠파이프·각목·돌 등 이용)를 저지할 수 없는 경우에 한해 설치한다 등으로 규정돼 있다.

지침에선 △차벽은 집회시위 권리보장과 공공의 안녕질서, 일반국민의 통행권이 조화되도록 필요한 최소한도로 설치·운용한다 △차벽은 주위 사정을 합리적으로 판단해 필요한 장소와 시간에 맞게 단계별로 설치·운용하면서 국민불편을 최소화한다 △차벽은 경찰목적 달성에 적합한 다른 수단을 우선 강구한 후 설치한다 등도 명시돼 있다.

차벽을 '최후'의 수단으로 명시하면서 시민불편 최소화를 내세우는 셈이다. 통행로는 50m마다 1곳 이상의 지점에 확보하는 것이 원칙이다.

경찰이 지난 3일 개천절 당시 서울 광화문 광장 일대를 차벽으로 사실상 '원천봉쇄' 한 것과 관련, 해당 지침을 지켰는지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경찰에 따르면 당시 서울 전체에 경찰버스 500여대가 투입됐으며 이중 300대는 차벽에 이용됐다. 투입 경력은 광복절 집회(9500여명)를 뛰어 넘는 1만1천여명 수준이다.

개천절 때 인근을 오가던 시민들은 여러 불편을 호소한 바 있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 광화문을 찾았다는 이모(75)씨는 "서대문역이 너무 멀어 근처에서 택시를 잡을 계획이지만, 버스가 길을 다 막고 있어 어디까지 가야할지 모르겠다"고 탄식했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박모(22)씨 역시 "인근에서 등산을 하고 식사를 하러 내려왔는데 여기저기를 다 막고 있어서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그래픽=안나경 기자)
경찰은 선제적 '예방'을 위해 불가피하게 차벽을 설치했다고 했지만, '차벽 원칙적 사용 불가'라는 대원칙이 성립됨에 따라 예방·제지는 개정안에서 아예 삭제됐다. '차벽 설치 및 운용요건'에서 '보호를 요하는 일정한 장소 또는 시설에 불법으로 접근하거나 진입하는 것을 예방 제지할 필요가 있는 경우'가 대표적인 삭제 조항이다.

경찰의 이같은 지침은 '인권 경찰'을 강조하던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 2017년 9월 경찰개혁위원회 권고를 그대로 따라 개정한 것이다. 당시 이철성 경찰청장은 "개혁위가 제시한 권고안의 취지에 충분히 공감하며 모든 권고 내용을 수용하겠다"며 "집회·시위에 대한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겠다"고 공언했다.

◇경찰 "불가피했다…지침도 최대한 지켜"

경찰은 여전히 "불가피했다"는 입장이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전날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개천절 차단 조치는 직접적인 접촉에 의해 야기될 수 있는 전염병 감염 확산 우려를 최소화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한글날에도) 개천절과 같은 조치가 필요하다면 그렇게 할 것"이라고 했다. 강경 대응 기조를 그대로 유지한 셈이다.

2011년 헌법재판소에서 "평화로운 집회·시위를 막고 집회 참가자들을 주위와 고립시킨다"며 차벽 설치를 위헌이라고 판단한 것에 대해서도 김 청장은 2019년 서울고등법원 판결을 들어 "차벽을 인정한 판례도 있다"고 맞섰다.

당시 법원은 차벽과 관련 "시민들의 생명, 신체, 재산에 중대한 손해가 발생할 위험도 있었으므로, 경찰로서는 차벽을 이용해 그 진행을 제지한 것 외에 그러한 위험을 제지할 별다른 수단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집회 참가자들은 밧줄과 사다리를 준비하는 등 물리적 충돌이 우려되는 상황이었기에 현재 상황과는 결이 다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찰청은 '지침'을 어겼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50m마다 시민 통행로를 설치하는 등 지침에 따라 차벽을 설치했다"고 해명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원칙적으로 차벽을 설치하지 않는 것이 지침이지만 예외적으로 과격, 폭력 행위를 저지할 수 없을 경우엔 설치할 수 있도록 돼 있다"며 "당시 보수단체들은 1인 시위를 단체로 하겠다고 예고하는 등 충분히 우려가 되는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코로나19 감염 우려도 경찰과 시민, 단체들의 접촉을 최소화해야 했기에 차벽을 설치한 부분도 있다"며 "예방을 위해 차벽을 설치하는 것도 경찰관 직무직행법 5조, 6조에 명시된 '위험 발생의 방지', '범죄의 예방과 제지'에 근거가 있다"고 덧붙였다.

◇차벽 설치 등 여전히 논란거리…"기준 마련해야"

'차벽' 설치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논란거리다. 집회의 자유는 헌법상 기본권으로, 그 자체만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지침이 마련된 2017~2018년 상황과 현재 코로나19 시국은 다르다는 반론도 있다.

2017년 경찰개혁위원회에서 인권보호분과 위원으로 활동했던 양홍석 변호사는 통화에서 "차벽을 치면 어디가 안전해지나. 광장이 안전해지나, 광장의 접근을 막으니 안전해진다고 생각은 할 수 있겠지만 전형적으로 윗사람을 보면서 하는 방식"이라며 "보수단체 사람들이 광화문 광장 이외에 풍선 효과처럼 빠져나가서 다른 곳에서 산발적 집회하면 더 문제가 된다"라고 말했다.

정부가 일부 보수단체의 개천절 집회에 대해 금지 통고한 가운데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 펜스와 집회금지 경고문이 설치돼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반면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승재현 연구위원은 "최후 수단성 측면에서는 과잉성이 분명히 있다"면서도 "2017년 경찰개혁위 내용을 현재 코로나19 상황과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공공방역과 집회, 시위의 자유는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로 논란거리다. 외신을 종합하면 프랑스 최고행정법원(Council of State)은 지난 6월 "집회 시위에 대한 금지는 현재의 보건위기 상황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며 "집회와 시위의 권리는 국민의 기본적인 자유"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도 "모든 시위는 보건위생 수칙을 지키고 사전에 당국에 집회사실을 신고하고 공공의 안전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되지 않는 한 허용되어야 한다"고 전제를 달았다.

결국 코로나19 시국에서 집회 자유 보장을 좀더 면밀히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승재현 연구위원은 "코로나19 상황에서 면대면 접촉은 금지되지만 집회의 표현의 자유는 그 위험성 정도를 판단해서 무작정 금지해선 안된다"며 "허용할 수 있는 건 허용하도록 해서 집회 시위 방법으로서의 자유 보장을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한편 보수단체들은 여전히 한글날 대규모 시위를 고수하는 상황이다. 경찰에 따르면 한글날 서울 지역에 신고된 집회는 이날 기준 총 1096건이다. 경찰은 이중 102건에 개최 금지를 통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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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박정환·차민지 기자] kul@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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