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형 칼럼] 국민위한 대통령 없다는 나훈아 외침

김세형 입력 2020. 10. 6.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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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30일 방송된 나훈아 콘서트의 뒷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도 시청률이 18%를 넘으며 연휴 내내 이어진 높은 관심을 입증했다.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공연. /사진=KBS 캡처.
[김세형 칼럼] 길었던 2020년 추석 명절에 가황 나훈아 씨가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왕이나 대통령을 본 적이 없다"는 느닷없는 멘트에 정치판은 아직도 뜨겁다.

개천절에 세종로 재인산성을 전 세계에 타전한 사진, 강경화 남편의 요트 쇼핑 등으로 시끄러웠지만 나훈아의 '대통령' 파장은 압권이었다.

나씨가 이말을 한 전후 맥락을 보면 코로나19 난국의 해결은 역사 속의 유관순 안중근 논개나 금 모으기처럼 보통 국민의 몫이 아니겠는가, 왕 대통령이 언제 도움이 된 적 있나 하며 지나갔다.

그러면서 "국민이 힘이 있으면 위정자(僞政者)들이 함부로 못 한다"고 슬쩍 한 자락 걸쳐놓았다.

이는 미국의 영화배우 찰리 채플린의 명대사를 생각나게 하며 나씨가 그를 벤치마킹했는지도 모르겠다.

링컨이 타계(1865년)한 지 100년쯤 경과해 채플린은 "저는 단 하나의 존재 바로 광대입니다. 광대라는 존재를 통해서 나는 어떤 정치인보다 높은 수준에 오릅니다"고 말했다.

당시 닉슨이 탄핵당하고 카터의 경제실정으로 미국이 엉망이 돼버렸을 때 광대의 존재는 대통령을 웃음거리로 만들기 충분했다.

지난 9월 30일 KBS 2TV에서 방송한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나훈아'가 시청률과 화제성을 '올킬'하며 화려한 시작을 알렸다. 사진은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사진=KBS 캡처.
나훈아의 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못하고 있다, 북한 김정은 체제가 우리 공무원을 바다에서 살해한 데 대한 대처가 그게 뭐냐고 직접 꼬집은 대목은 없다.

그래서 여당 국회의원은 "나씨를 오독(誤讀)하지 마라. 그는 민주주의를 강조하고 있다"고 견강부회했는데 그것은 유시민이 김정은을 '계몽군주'라고 부른 것만큼 어색했다.

세상은 복잡하게 꿰맞추려 하면 잘못된 답을 얻는다.

나훈아의 왕 대통령 발언이 그리 큰 파문을 일으킨 것은 최근 김정은 사과, 재인산성 등을 둘러싼 문 대통령의 대응을 불편하게 보기 때문일 것이다.

대통령이 국정 운영을 훌륭하게 하고 있는데 광대가 나와서 웃기려고 한다면 그야말로 웃기는 광대가 돼버리고 거기서 끝이어야 옳다.

그런데 지금 상황이 안 그렇다는 말씀이다.

여기서 잠시 역사 속에서 국민을 위해 목숨을 건 왕 대통령이 없었는지 머릿속을 뒤져보자. 당신은 답을 찾아냈는가.

알렉산더 시저 진시황제 나폴레옹…. 암만 뒤져봐도 나르시스적 영웅담에 빠진 게 아니라 백성을 위해 죽어간 왕은 찾을 수 없다.

한국의 역사에선 세종대왕 정도가 목숨은 몰라도 항상 백성을 위해 밤낮을 잊고 궁리하고 일했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고 미국사에서 워싱턴 링컨 대통령은 평가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워싱턴은 건강 등을 고려해 재임을 한사코 사양하다 봉사한 것으로 돼 있고 링컨은 남북전쟁으로 미국이 분할되지 않나 밤낮을 노심초사했다.

더욱이 재임 중 아들이 죽어 부인이 우울증에 걸려 이를 위로하려고 며칠 전 자신이 죽은 꿈을 꾸고도 극장행을 강행했다가 암살자의 총에 비운을 달리했다.

사람들은 대통령 총리, 나아가 국회위원 장관 등이 자신의 안위나 영달보다 국민과 국가 장래를 위해 일한다고 착각(?)한다.

이는 링컨이 취임사에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고 강조한 데서 전 세계 시민에게 그렇게 각인됐다고 한다.

그런 각인은 1986년 제임스 뷰캐넌이 공공선택이론으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할 때까지 그런 믿음을 깨뜨리지 않았다.

우리도 그런 믿음 속에서 살아온 것 같다.

그런데 이번 추석 연휴에 우리는 트럼프와 바이든 간 미국 대선 토론에서 전 세계를 대표하는 미국의 대통령 후보라는 자들이 승리를 위해 저급한 험담을 서슴지 않고 권모술수를 부리는지 똑똑히 봤다.

한국 헌정사에서도 문재인정부에서처럼 국민을 노골적으로 갈라치기 하여 내 편이 조금 많아 권력만 유지하면 된다는 계략을 본 적이 없다.

지난 3일 광화문을 둘러싼 경찰버스 /사진=연합뉴스
북한 대처에 화가 난 단체들이 의사표시 좀 하겠다는데 세종로를 경찰차로 완전 철벽으로 쌓은 것은 반대 의견에 귀를 닫겠다는 오기다.

국민과 국가의 운명이 어떻게 되든 말든 20년 권력을 잡겠다는 것이다.

나훈아는 아무 뜻 없이 왕과 대통령을 말했는데 뭘 하다 들켜 제 발에 저린 것처럼 정치인들이 화들짝 놀라 펄쩍 뛰는 것이다.

2020년 추석에 대한민국 국민이 발견한 진짜 모습은 이것이다. 놀라운 발견이다.

뷰캐넌은 미국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들이 "지금 이 자리만 보전한다면 못할 일이 없다"는 그 시커먼 속을 간파하는 경제이론으로 노벨상을 탔다.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위정자는 없고 정부 정책 일하는 것도 제 속만 챙기며 "정치인은 모두가 썩었다"는 리얼리티를 감안해서 보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소득주도성장, 한국판 뉴딜, 1·2차 재난기금의 뜻이 뭔지 제대로 보일 것이다.

내 편을 늘리는 정책으로 내 자리를 보전하겠다는 것이다.

유시민은 코너로 몰리자 "내가 너무 고급 비유를 했나 보다. 나를 공격한 사람은 소크라테스를 고발해 죽게 할 사람들"이라고 소피스트를 능가하는 궤변을 토했다.

소크라테스가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현자"라는 델포이 신탁을 받았으나 죽음을 피하지 못했던 진짜 이유는 자신만 똑똑하고 나머지는 전부 바보인 것처럼 표현한 에이로네이아 화법이 아테네 법정에서 재판관과 여론을 분노케 한 점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자꾸 엇나가는 추미애처럼 대중을 분노케 하면 무엇이든 태워버린다.

추석 명절에 KBS방송에서 한 나훈아의 발언을 두고 야당은 "언중유골"이라 하고 여당은 "애써 아전인수 해석을 하지 말라"고 강변한다.

둘 중 하나는 헛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씨가 국민이 힘이 있으면 위정자들이 함부로 못 한다는 말을 왜 곁들였는지 여당과 유권자들은 새겨볼 일이다.

지금 국민이 힘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말인데 그것은 결국 대중이 분노로 심판할 일이다.

나훈아가 별 뜻 없이 한 말이 광야에서 선지자의 외침이 됐다면 이는 좋은 각성이다.

나훈아의 왕 대통령 발언 전과 후에 한국 정치 기상도가 바뀐다면 그는 찰리 채플린 이상의 역할을 한 것이다.

[김세형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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