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격 공무원 '자진 월북' 주장하는 정부⋯ 사자명예훼손 인정될 가능성은?

심민관 기자 2020. 10. 7.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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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지난달 북한군의 총격으로 사망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모씨에 대해 "자진 월북한 것으로 보인다"는 입장을 냈다. 이를 두고 진실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성급한 발표로 이씨의 명예를 훼손된 데 대해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법무법인 대한중앙의 조기현 변호사는 6일 "이씨의 자진 월북을 주장한 정부에 대해 유족 측이 해당 발표가 허위사실임을 입증할 수 있다면 ‘사자(死者)명예훼손’을 이유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씨가 자진 월북하지 않았다는 점을 알면서도 정부가 자진 월북으로 몰아갔다는 점이 밝혀질 경우 유족 측이 정부에 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것이다.

본래 사자명예훼손은 형법(제308조)에 따라 허위사실을 고의로 적시해 사자의 명예를 훼손했을 때 성립하는 범죄다. 이는 불법행위로 간주돼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이 발생한다.

익명의 한 법률전문가는 "해당 사안의 경우 원칙적으로는 형사재판이 가능하지만, 검찰이 현정부에 대해 기소를 결정해야 한다는 점에서 부담이 될 수 있다"며 "반면 민사재판의 경우 유족의 청구만 있으면 소송이 가능해 일단 민사로 사자명예훼손의 불법성을 다룰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 정부에 의해 사자명예훼손이 일어난 사실이 인정된 사례들도 형사가 아닌 민사로 다뤄진 경우가 많았다.

예로 정부에 의해 억울하게 자진 월북자로 몰렸다가 58년 만에 법원 판결로 사자명예훼손을 인정한 사례가 있었다.

지난 1955년 군 복무 중이었던 B씨는 벌목작업을 위해 사역을 나갔다가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는데, 군은 그가 잦은 보직변경에 불만을 갖고 월북했다는 내용의 월북사건조사서를 작성했다. 유족들은 B씨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민사소송을 진행했고,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2013년 "국가가 군 복무 중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B씨를 월북한 것으로 처리해 고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지난 2014년에도 정부가 1960~1970년대 인혁당 사건에서 북파공작원 C씨를 북한의 남파간첩으로 허위발표해 사자명예훼손으로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판결했다. 당시 서울고등법원은 정부가 유족들에게 간첩의 가족으로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불이익을 줬다며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법조계 안팎에서는 이번 공무원 피격 사건의 경우 사자명예훼손 민사소송을 해도 유족 측이 승소하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해당 사건에 대한 정보가 보안상 외부에 공개되지 않아 유족 측이 이씨가 자진 월북하지 않았다는 점을 입증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조기현 변호사는 "정보가 통제된 상황에서 이씨가 월북을 하지 않았다는 점을 민간인인 유족 측이 입증하기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며 "과거 정부에 의한 사자명예훼손 판결이 50년이 지난 뒤에야 나온 것도 민간인이 정부를 상대로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점을 입증하는게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했다.

판사 출신인 법무법인 광장의 손병준 변호사도 "형사재판으로 이 사안을 다루면 국가기관인 검사가 정부행위에 대한 허위사실 여부 입증책임을 지겠지만, 민사재판의 경우에는 유족 측이 입증을 해야한다"며 "민사법원도 이를 직권조사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이씨가 자진 월북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혀내도, 정부에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의견도 나온다.

법무법인 오킴스의 엄태섭 변호사는 "사자명예훼손죄가 성립하려면 해당 내용이 허위라는 것을 알고도 적시했다는 고의성 입증 절차가 필요하다"며 "만약 정부가 고의성을 부정한다면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엄 변호사는 "다만, 아직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발표하는 것은 처벌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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