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가구가 만장일치제로 운영.. 영화에나 나올 법한 마을 [노준희의 조화로운 삶을 찾아서]

노준희 2020. 10. 7.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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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삶 추구하는 영동군 백화마을.. "맘 터놓고 어울려도 강요하지 않아요"

[노준희의 조화로운 삶을 찾아서]

충북 영동군 황간면 백화산 아늑한 남쪽 자락 품 안에는 40가구가 모여 사는 '백화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2012년 조성 당시부터 큰 화제를 몰고 왔다. 모든 집은 '스트로베일 하우스'라고 하는 '짚과 흙을 섞어 다진 벽'으로 만들었고, 태양광을 설치했으며 화목 보일러 난방 방식을 선택했다. 

뿐만 아니라 입주 2년 전부터 주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함께 사는 마을살이에 대해 의논했다. 자신이 살 집을 어떻게 만들까부터 공동의 것을 자신들이 의논해서 만장일치제로 결정했다. 기존의 아파트나 전원주택 분양 방식과는 전혀 달랐다. 

이후 백화마을은 여러 신문과 방송에 소개되며 집을 짓고 마을을 형성하는 새로운 방향이자 꿈꾸는 가치가 되었고 전국적으로 친환경 마을 조성 붐을 일으키는 도화선이 되었다. 그러나 삐딱한 시선으로 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래, 얼마나 잘 사나 보자'라는 의심 어린 눈길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기자가 찾은 백화마을은 여전히 만장일치제 회의 방식을 유지하며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각자의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개성 만점인 그들이 오랜 기간 평화롭게 마을을 유지하는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 영동군 백화마을.   40가구가 모여사는 친환경마을인 백화마을이다. 이 마을은 2012년 스트로베일로집을 짓고 모든 가구에 태양광 시설을 하는 등 마을 전체를 친환경 건축으로 지어 화제를 몰고 온 마을이다.
ⓒ 노준희
 
친환경을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생각한 사람들 

자연의 소중함은 누구라도 안다. 하지만 우리에게 아낌없이 내어주는 자연을 보전하고 살리는 데는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산다. 지구에 관심이 적어서, 살기 바빠서…. 백화마을 주민들은 마을을 만드는 단계에서부터 친환경 주택을 지향했다. 입주예정자 모임 '두꺼비 학교'에서 그들은 최대한 많은 것을 논의하고 시행착오를 줄이려 했다. 

스트로베일 하우스. 지구에 해롭지 않은 황토와 짚을 이용해 벽을 만들어 세우는 방식은 당시 참신한 친환경 주택 건설방식이었다. 벽 두께만 30센티에 이르며 공사 기간도 긴 데다 비용도 적지 않고 건설방식도 까다로웠다. 그러나 까다로운 만큼 누리는 만족은 컸다.
 
▲ 마을주민이 함께한 송년회와 새해맞이  아이들도 마을주민이기에 마을 송년회와 새해맞이 행사를 의논할 때도 함께한다. 어른들 틈에서 자연스럽게 경청하는 아이들 모습이 진지하다.
ⓒ 백화마을
 
안덕균 백화마을 대표는 "지을 때는 여러모로 힘들었지만 살아보니 정말 좋다는 걸 느낀다. 냄새가 빨리 빠져 청국장 같은 음식도 걱정 없이 해 먹고 비염 있던 사람들은 코 막히는 일이 적고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에 시원해 훨씬 쾌적한 주거생활이 가능해졌다. 살아보면 이런 기능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실 것"이라고 말했다. 몸이 느끼면 충분히 알 터인데 살아보지 않고 비용만 따져 생각하면 친환경을 선택하기 어렵다.

게다가 영동군이 인정하는 수질 1등급 지하수를 사용하는 백화마을은 수도요금 또한 전혀 들지 않는다. 또 집마다 설치한 태양광은 자연 에너지의 힘을 보여주었다. 매일 3kW를 생산하는 시설인데 안덕균 대표의 주택은 지난 폭염 동안 에어컨을 매일 사용해도 월 전기료는 5000원 수준이었다. 같은 평수 아파트라면 10만 원은 족히 나온다는 게 김미숙 전 부녀회장의 설명이다.  

물론 모든 면에서 완벽하진 않았다. 입주 당시 큰 결심을 하고 들인 목재 펠릿 보일러는 시간이 흐르자 고장이 나고 관리 불편의 문제가 생겼다. 화목 보일러의 일종인 펠릿 보일러는 펠릿(산림부산물을 압축성형 후 건조한 연료)을 사용해 경제성이 좋고 탄소배출이 적다. 

그런데 당시 정부는 목재 펠릿 보일러 보급에만 신경을 썼을 뿐, 활성화와 관리정책은 뒷받침되지 못했다. 안 대표는 "불완전 연소로 인한 그을음과 보일러 막힘 등 문제가 발생해 관리에 불편을 느끼곤 했다"고 전했다. 비용과 관리 등을 생각하면 수명을 다한 화목 보일러를 기름보일러나 가스보일러로 바꿀 수밖에 없는 실제적인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 그래도 마을에는 여전히 화목보일러를 사용하는 가구들이 있다. 
 
▲ 마을 송년회 때 아이들 모습.   해마다 열리는 마을 송년회에서 아이들도 빠질 수 없다. 아이들은 협동미로게임을 즐기며 자신이 함께 사는 마을의 구성원임을 즐겁게 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 백화마을
 
100가지 중 한두 가지 누리느냐, 10가지 중 다 누리느냐 그 차이 

20세기에 태어나 날 때부터 있었던 문명의 이기를 끼고 살 수밖에 없는 우리는 시골에 들어가 사는 것에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교통도 불편하고 도시에서 다양하게 누릴 수 있는 문화와 근거리 편의시설에 대한 아쉬움 등이 주된 이유다. 하지만 이근향 백화마을 총무의 말은 좀 달랐다. 

"예를 들어 도시가 100가지를 누릴 수 있는 환경이라고 할 때, 출퇴근에 바빠 정작 한두 가지도 제대로 못 누리지요. 도시 생활에 비하면 이곳 백화마을은 10가지 선택지밖에 없다 해도 거의 다 누리고 사는 거 같아요. 덕분에 시간과 여유로움이 생겨서 되게 만족하고 있어요." 

오히려 도시에서 없던 생활 네트워크가 생겼다. 백화마을은 황간 요금소와 황간역에서 각 10여 분 거리다. 황간역에서 대전으로 가서 KTX를 갈아타면 서울까지 2시간도 안 걸리는, 은근 교통 편의 지역이 바로 백화마을이다. 

또 마을 입주민 전체가 들어있는 단체대화방에서는 황간역에 간다거나 시내에 간다거나 아니면 시내에서 들어올 시간이 되면 자신의 위치를 알리며 카풀할 주민을 찾는 일이 잦다. 카풀 네트워크가 잘 돼 있어 차편이 없어 마을로 들어오고 나가기 힘든 경우는 찾기 힘들다. 거기에 더해 나가는 이에게 대신 살 것을 부탁하기도 한다. 그러면 누구 하나 싫은 내색 없이 흔쾌히 이웃의 부탁을 들어준다. 또 마을 공동텃밭에서 가꾼 채소 수확물을 사진 찍어 단체대화방에 올리면 필요한 사람이 알아서 가져간다. 도시에서는 언감생심 꿈꾸기 어려운 실화다. 

물리적 담만 없는 게 아니라 마음의 담도 없어 

물론 마을에서 살다 여러 가지 이유로 떠난 사람들도 있다. 그럼에도 남아있는 사람들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김미숙 전 부녀회장은 "정말 좋은 점은 마음을 터놓고 만날 수 있는 이웃이 생겼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맛있는 것이 생기면 나눠 먹으려는 마음을 먼저 보이며 들고 와요. 위아래로 띠동갑인 이웃들도 항상 살갑게 대해주니 너무나 고맙죠. 나 또한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커져 뭐라도 하게 되면 그걸 또 감사하게 생각해주고. 무엇보다 가식이 아니라는 거. 도시에서는 이렇게 마음 터놓고 지내기 쉽지 않았거든요." 
 
▲ 마을 공동공간에 만든 수영장에서 노는 아이들.   어른들은 해마다 여름이 되면 아이들이 마음껏 여름을 즐길 수 있게 간이 수영장을 만들어주곤 한다. 아이들은 이 안에서 신나게 여름을 만끽한다. 이게 바로 온 마을이 아이를 키우는 방식 아닐까.
ⓒ 백화마을
 
또 백화마을은, 아이들을 키우는 방식도 마을공동체의 의무란 생각이 들게 한다. 이근향 총무는 "어릴 때 어른들 모습을 자주 겪어보고 산 사람은 어른이 돼서도 무의식적으로 사람 관계 맺는 데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는 이웃 부모가 어딜 가고 아이만 있으면 물어보고 뭐라도 먹을 거를 챙겨주며 신경을 써주죠. 아이들은 이런 면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마을살이의 사람들 사는 모습을 보는 거예요. 그러면 어른이 됐을 때 삶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이곳 사람들은 아이들을 더 사랑스럽게 보는 시선이 있어요. 다른 거는 못해 주지만 눈빛 마주치며 더 애정을 가지고 '나누는 게 이런 거야'라는 생각, 어른들은 하고 있어요."

한 아이는 온마을이 키운다고 했다. 백화마을엔 유치원과 초중고 아이들만 15명 정도. 지난 8년 동안 온 마을이 하나하나의 아이를 키우고 있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만장일치제를 고수하는 이유 

뭐니 뭐니 해도 이 마을의 가장 큰 특징은 '만장일치제'다. 다수결도 아닌 만장일치제라니. 만장일치제는 8년 동안 변함없이 마을의 중대사를 논의할 때 사용한 제도다. 알고 보니 속뜻이 깊다.

이근향 총무는 "마을을 처음 만들 때 공동시설이 필요했고 각 2000만원 정도 부담해서 공동공간과 식당 등을 만들었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그런데 전선 지중화 시설은 또 각 2000만원 정도 부담이 생겼고 필요하지 않다며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한 사람이라도 반대하면 우린 하지 않아요. 찬성 입장에서는 불만이지만 안 하고 싶은 사람은 만족할 수 있고 또 다른 사안에서 찬성과 반대가 섞이니까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어 다시 거론 안 해요. 이로 인한 갈등이 초기에는 있었으나 이제는 인정하는 인식이 자리 잡았어요. 아파트처럼 살지 않으려고 왔으니 조금씩 양보가 가능해지더라고요."
 
▲ 마을을 이끄는 사람들 중.   왼쪽부터 이근향 총무, 가운데 안덕균 대표, 오른쪽은 안덕균 대표의 부인이자 전 부녀회장인 김미숙씨.
ⓒ 노준희
 
함께할 일도 강요는 하지 않아 

전원에 있는 주택이어서, 마을공동체로 살고 있어서 마을 단위로 할 일이 많지만 마을 청소도 나오든 안 나오든 강요하지 않는다. 상황이 되면 할 것이고 못 나오면 못할 이유가 있을 거라고 본다. 또 다른 일로 봉사를 실행할 수도 있으니.

이곳도 새해에는 떡국나눔 행사도 하고 한 해가 갈 때 송년회도 하고 야유회도 가고 보통의 마을처럼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을 누린다. '아나바다 나눔터'도 상시운영한다. 자신이 안 입는 옷이나 안 쓰는 물건을 일정한 공간에 내놓으면 필요한 사람들이 알아서 가져가고 1000원씩만 내게 한다.

이 수익금을 모아 한때는 그린피스나 황간중학교 장학금으로 기부도 했다. 때로는 마을 잔치에 쓸 떡을 만들고 아나바다를 관리하는 주민들이 친환경 세제나 샴푸, 비누 등을 만들어 팔기도 한다. 여름이면 '교육문화센터'로 불리는 마을공동공간 마당에 수영장을 만들어 아이들이 맘껏 뛰놀게 한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의 여파로 모든 것을 잠정 중단한 상태다. 
 
▲ 마을공동공간 교육문화센터.   백화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이용하는 공간. 마을에 중요한 행사나 의논할 일이 있을 때 반드시 이용하는 공간이다. 외부 에너지 교육도 이곳에서 하고 아나바다 장터도 이곳에 있다. 방문객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도 있으며 체력단련실과 배움 프로그램을 위한 공간도 있다.
ⓒ 노준희
 
또 백화마을은 각자 삶의 만족에만 그치지 않고 마을 단위로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었다. 2014년에 '백화마을협동조합 가치그린'을 만들어 영동군 '기후에너지체험마을'로 선정, 친환경 교육 강사를 4명 정도 양성해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했다. 이 총무는 "그동안 영동 초중고 거의 모든 학교가 이 마을에서 주도하는 기후에너지체험을 해봤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덕균 대표는 "실제 누릴 거 다 누리고 산다. 특별할 거 없는 평범한 마을"이라고 말했다. 이근향 총무는 "친환경을 지향하는데 살면서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게 핵심"이라고 말했다. 

"무엇이든 약간은 고민해야 해요. 쓰레기 분리배출도 플라스틱병 포장지 벗겨서 버리라고 공지하면 그냥 버릴 때도 있지만 벗겨서 버리기도 해요. 친환경 고민은 큰 데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한번 더 신경 쓰는 거. 고민할 수 있냐 없냐가 우리 삶을 다르게 할 수 있어요. 도시에서 쓰레기 분리배출이라도 더 신경 쓰면 그게 조금 더 친환경적인 삶이 되는 거 같아요. 고민하는 단계가 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닐까요? 그게 바로 배려이고 소통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을 대하는 마음의 다른 표현이지요."

8년 전 친환경 마을을 지향하며 입주민들의 소망을 담아 태어난 백화마을. 백화마을은 자연이 늘 가까이 있고 이웃은 형제만큼 진한 배려를 건네며 환경을 보호하려 애쓰고 서로를 이해하며 사는 이심전심의 마을이었다. 다른 마을과 다를 게 없는 평범한 마을 구성이면서 큰 갈등과 분쟁 없이 그들이 여전히 백화마을에서 행복하게 사는 이유, 그들이 고민하고 실천한 삶의 방식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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