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낙태죄 유지, 청와대 의지 강했다"..6~7월 이미 결론

이보라·이하늬·이주영 기자 2020. 10. 7.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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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회원들이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낙태죄 완전 폐지 촉구 기자회견 - 낙태죄 폐지가 답이다’ 기자회견을 하고있다. / 이준헌 기자


정부가 7일 여성의 임신중단(낙태)을 임신 14주까지 허용하는 낙태죄 형법·모자모건법 개정 입법예고안을 내놓는 과정에서 청와대의 입장이 크게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낙태죄를 유지하려는 청와대의 의지가 강했고 이런 입장이 법 개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공청회 등 시민들 의견을 듣는 공론화나 사회적 소통이 부족했다고 여성계·의료계 등이 비판했다.

7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복수의 정부 관계자들은 ‘낙태죄 개정안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청와대의 입장이 크게 작용했다’는 취지로 말했다. 낙태죄를 존치하되, 낙태 허용 기간을 14주로 유지하려는 청와대의 의지가 강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낙태죄 개정안은 정부 부처가 추진할 수 있는 법안 수준이 아니다. 청와대의 의중이 가장 크게 작동한 법안이라 볼 수 있다. 법무부가 양성평등정책위원회를 통해 권고안도 냈지만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국무조정실 등에 따르면 지난 6~7월쯤 입법예고안과 유사한 내용의 정부 초안이 이미 마련됐다. ‘임신 주수에 따른 낙태죄 유지’라는 골자는 이미 정해져 있었던 셈이다. 낙태죄 전면 폐지 입장이었던 법무부는 정부안을 바꾸기 위해 자문기구인 양성평등정책위원회를 통해 권고안을 내는 데 주력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양성평등정책위는 8월 임신 주수에 따라 낙태죄 처벌을 해선 안 된다며 임신중단 전면 비범죄화를 권고했다.

여성계는 이 과정에서 정부와 제대로 된 소통이 부족했다고 밝혔다. 김민문정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이날 통화에서 “국무조정실에 면담을 요청했으나 형평성을 이유로 거절 당했다”며 “공식채널을 통한 소통이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먼저 지난 8월 주무부처인 법무부에 간담회 개최 요청을 했다. 그래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만난 것이다. 보통 간담회에서는 정부안을 공유하고 논의하지만 이번엔 그러지 못했다”고 말했다. 의료계 역시 소통이 부족해 아쉽다는 입장을 냈다. 김동석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통화에서 “올해는 코로나19 등으로 간담회가 몇 차례 연기되면서 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개정안이 입법예고된다는 걸 기사를 통해 알게 됐다”고 말했다.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이뤄지지 못한 탓에 입법예고안 자체에 문제가 많다는 비판이 나온다.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은 앞서 성명에서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의 중요한 의미는 ‘처벌은 실질적인 효과가 없다’는 사실”이라며 “사회경제적 조건 개선과 성평등 정책, 성교육, 임신중지 접근성 확대, 안전한 보건의료 보장 체계 구축이 효과적임이 증명됐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임신 주수에 따른 제약이나 강제 숙려기간, 상담 의무제 등은 오히려 적절한 임신중지 시기를 놓치게 만든다”며 “이는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조건이 있는 이들에게 더 해로운 영향을 미치게 된다. 때문에 최근 다른 나라에서도 이 같은 불필요한 규제 조항들을 삭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입법예고안 마련 과정에서 정책 협의야 할 수 있지만 청와대가 어떤 입장을 갖고 이래라 저래라 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정부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종교계·의료계·여성계 등 많은 단체들의 의견을 들었다. 보건복지부는 의료계를 여러 번 만났고 법무부는 여성계를 만났다. 여성계가 강하게 주장해 시간을 더 드려 법무부와 간담회를 갖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보라·이하늬·이주영 기자 purp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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