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배 빠른 진짜 5G 서비스" 정부와 통신사의 대국민 허풍이었다

정철환 기자 2020. 10. 7.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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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영 장관 "28㎓ 5G 전 국민 서비스 생각 전혀 없어"
"기업과 이미 그렇게 추진"..통신 3사와 조율한 듯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답변을 준비하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종전 4G보다 속도는 20배, 연결할 수 있는 기기는 10배로 늘어나고 지연 속도는 10분의 1로 줄어든 넓고, 체증 없는 ‘통신 고속도로’가 바로 5G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4월 8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5G 상용화 축하 행사’에서 한 말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이 말은 그대로 이뤄지지 않을 공산이 커졌다. 우리나라 정보통신 정책의 수장인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7일 국정감사에서 28㎓(기가헤르츠) 주파수를 이용한 전 국민 대상 ‘초고속 5G(5세대)’ 서비스를 할 계획이 없음을 공식화했기 때문이다. 현재는 3.5㎓ 주파수에서만 5G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28㎓ 주파수 대역의 5G 서비스는 현재 4G의 4~5배 수준인 5G 속도를 ‘4G의 최대 20배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꼭 필요한 기술이다. 이 때문에 국내 통신 소비자들은 늦어도 연내에 전국 대상의 28㎓ 서비스 구축이 시작될 것으로 기대해왔다. 하지만 5G 출범 1년 6개월 만에 정부가 이를 부인하고 나서면서, 통신 소비자들 사이에는 “정부 믿고 비싼 5G에 가입했는데 뒤통수를 맞았다”는 격한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4월 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 공원 K-아트홀에서 열린 '세계 최초 5G 상용화, 대한민국이 시작합니다' 행사에서 통신사 대표들과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정호 SKT CEO, 하현회 LG 유플러스 CEO, 황창규 KT 회장, 문 대통령./연합뉴스

◇'4G의 20배' 속도는 28㎓ 서비스 필요

최 장관의 이날 발언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과기정통부 국정감사에서 윤영찬(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윤 의원이 “28㎓ 주파수로 전국망 서비스가 과연 가능하겠느냐”는 취지의 질문을 하자, 최 장관은 “정부는 28㎓ 주파수의 5G 서비스를 전 국민에게 서비스한다는 생각은 전혀 갖고 있지 않다”고 답변했다.

그는 이어 “(28㎓를 이용한 5G 서비스는) 대개 기업 간 서비스(B2B)를 많이 생각하고 있다”면서 “실제 기업들과 그렇게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이는 기업 사옥이나 대학 캠퍼스, 대형 쇼핑몰, 기차역·공항, 운동 경기장 등에서 기업 혹은 기관과 계약을 맺어 제공하는 형식으로만 28㎓ 대역의 초고속 5G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의미다. 전국 방방곡곡, 골목 구석구석에서 ‘4G의 최대 20배’라는 초고속 5G 서비스는 사실상 어려워진 것이다.

국내 5G 서비스는 지난 8월 정부의 공식 품질 평가에서 초당 500~800메가비트(Mbps)의 내려받기 속도를 보였고, 이는 4G 속도(158Mbps)의 4~5배 수준에 불과해 ‘4G 대비 최대 20배 빠르다’는 기존 주장과 차이가 크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통신 3사는 이에 대해 “28㎓의 높은 주파수를 활용한 서비스를 하면 속도가 대폭 빨라질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28㎓를 이용한 5G 서비스는 B2B에 적합하며, 전국망 서비스는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주장도 펼쳐왔다. 28㎓ 주파수를 이용한 5G 서비스는 현재 사용 중인 3.5㎓ 주파수의 5G에 비해 데이터 전송 속도가 훨씬 빠르지만, 전파 도달 거리는 3.5㎓ 대비 15% 이하다. 이 때문에 전국망 서비스를 위해서는 건물과 집마다 5G 기지국과 중계기를 설치해야 해 최소 20조원의 투자비가 필요한 것으로 통신 업계는 추정해왔다. 최 장관의 이날 발언은 이런 통신 3사의 입장이 정부와 충분한 조율을 거쳐 정해진 것을 방증(傍證)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정부가 5G 불완전 판매 조장했다"

정부가 28㎓ 주파수를 이용한 5G 전국망 서비스 여부에 대해 명확히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와 통신 업계는 그동안 “2020년 하반기에 28㎓ 서비스 투자를 시작할 것”이라고만 밝히고, 28㎓ 서비스를 어떻게 할 것인지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IT (정보 기술) 업계에서는 “그동안 정부와 통신 회사들의 모호한 태도가 통신 소비자들의 기대를 더 부풀려온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통신 소비자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부터 ‘5G는 속도가 4G의 20배’라고 언급해가며 5G 서비스를 추켜세웠고, 5G에 대한 기대와 신뢰가 높았는데 이것이 한 번에 무너졌다”는 것이다. 특히 청소년과 주부 소비자들 사이에서 “집에서 28㎓를 쓸 수 없다면 5G의 매력이 크게 떨어진다”면서 “정부가 5G 서비스의 ‘불완전 판매’를 사실상 조장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이에 대해 “28㎓ 5G의 전국망 서비스를 약속한 적은 없다”는 입장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한 국장급 간부는 지난 8월 브리핑에서 “5G가 4G의 20배 속도라는 것은 대체로 통신 업계에서 홍보를 하면서 나온 얘기”라고도 했다. 28㎓ 주파수를 이용한 초고속 5G 서비스에 대해 ‘정부가 보장한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한편 최기영 장관은 이날 오후 국감에서 “본인 발언에 대해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며 “28㎓ 5G 서비스 전국망 서비스는 해당 주파수를 매입한 통신사가 결정할 문제로 정부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전국망을 구축해서 사용하기엔 기술적 어려움이 보여서 그런 말씀 드린 것이며 이통사나 주파수를 할당받은 곳에서 하겠다고 하면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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