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가정폭력 남편을 살해..법원, 아내에 선처했다

김주영 기자 2020. 10. 7.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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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가장 살해한 울산 母子
법원 어머니엔 집행유예, 아들엔 징역 7년 선고

40년간 가정폭력을 휘두른 60대 가장을 존속살해한 혐의를 받는 모자(母子)가 국민참여재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어머니는 아들의 죗값을 뒤집어쓰려 6번의 경찰 조사 중 마지막 조사에서야 아들이 먼저 남편을 때리고 둔기로 내려친 사실을 시인했다. 법정에 입장한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흐느끼며 오열하던 어머니는 끝까지 “모든 것은 제 잘못”이라며 “부모를 잘못 만난 아들은 죄가 없다. 부디 아들은 살려달라”며 재판장에게 용서를 구했다. 그런 어머니를 법원은 선처했다.

울산지법 제11형사부(재판장 박주영)은 7일 아버지 김모(69)씨를 존속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아들 김모(41)씨와 어머니 송모(65)씨에게 각각 징역 7년과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일러스트=이철원.

이들은 지난 5월 12일 울산 남구 신정동 한 아파트에서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됐다. 40년간 송씨에게 가정폭력을 휘두른 김씨는 이날도 10여년 만에 휴대폰을 바꾼 부인에게 ″돌대가리 같은 X, 니 같은게 무슨 2만5000원짜리 요금제 내면서 새 폰쓰냐"며 폭력을 휘둘렀다. 이를 말리던 아들은 아버지가 엄마 목을 조르는 모습에 주먹을 휘둘렀고 급기야 둔기로 아버지 머리를 내려쳤다.

그러나 아들은 사건 당일 어머니가 아버지를 살해했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어머니는 그 증거를 만들기 위해 아들의 폭행으로 쓰러진 남편 입에 10여년 전 남편이 사둔 염산을 부었다. 그러나 의식이 있던 남편이 고개를 돌려 실패했다. 아들은 막걸리 병으로 깔때기를 만들어 엄마에게 건넸다. 어머니는 이를 이용해 염산을 부었으나 또 실패했다. 급기야 어머니는 아들이 쓴 둔기로 남편의 머리와 배, 가슴을 수차례 내려쳤다.

이 사실은 6번의 경찰 조사 중 마지막 조사에서야 밝혀졌다.

김씨는 어머니 진술과 각종 증거가 제시된 후 그제서야 자신도 범행에 가담한 것을 시인했다. 검찰이 뒤늦게 범행을 시인한 이유를 추궁하자 김씨는 “둔기로 아버지를 내려친 사실이 기억나질 않아 진술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살해에 가담한 이유에 대해선 “어머니를 지켜드리기 위해서였다”고 밝혔다. 김씨는 송씨가 "제 잘못이니 아들만은 살려달라”고 재판장에 애원하자 그제야 “가정을 못 지킨 자신이 원망스럽고 아버지, 누나에게도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검찰은 사건의 단초는 가정폭력을 휘두른 아버지에게 있었지만, 살인을 막을 기회는 여러번 있었다고 강조했다.

검사 측은 송씨가 가정폭력을 피하려고 2019년 3월 별거를 했으나 아들이 아버지와 재결합을 권유한 점을 추궁했다. 별거 당시 아들은 전세금 6000만원을 들여 송씨의 새 거처를 마련해줬는데, 이후 어머니가 2020년 4월 재결합하자 전세금을 돌려받아 재개발 아파트를 구입했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송씨는 재결합을 원치 않았다.

이에 대해 아들은 “아버지가 별거 후 아파트 3층에서 추락해 다리를 다쳐 병간호가 필요했고, 어머니에게 용서를 구하며 달라진 모습을 보여서지, 돈 때문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김씨가 둔기로 아버지 머리를 때려 송씨 범행을 유발한 점, 범행 후 둔기를 송씨에게 발로 민 점, 범행 1시간 후에야 경찰에 신고한 점, 수사 내내 아버지에게 미안해 하는 등 반성의 기미가 없었던 점도 지적했다.

변호인들은 40년간 지속된 가정폭력이 살인의 원인이라며 감형을 주장했다. 근거로 김씨가 송씨를 둔기로 때려 머리와 팔 등을 수차례 부상하게 한 점, 아들도 재떨이 등으로 아버지에게 맞았고, 딸 역시 지속된 폭력으로 자살시도까지 하고 서울로 거처를 옮긴 점 등을 제시했다.

아버지의 형제 자매와 딸, 이웃주민도 모자가 처벌받지 않길 바란다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20년간 이들 부부의 앞집에 살았던 한 이웃주민은 “송씨는 이웃주민에 피해가 갈까 맞을때도 큰 소리 한번 안 냈다"고 했다. 또 "성격이 검소해 남편 먹일 고기, 과일은 제일 좋은거 사도 자기가 좋아하는 고구마는 들었다 놨다, 시장을 한바퀴 돌아도 못 사던 사람”이라고 했다.

딸 역시 “배관공이던 아버지가 평생 집에 돈을 벌어준 건 맞지만, 글도 못 읽는 어머니 역시 평생 파출부, 목욕탕일 등을 했다"며 “그런데도 아버지는 어머니가 손주 양육을 하느라 일을 못하자 식충이라며 돈벌어오라고 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송씨는 폭력을 신고할 경우 자식에게 피해가 갈까 경찰에 신고도 하지 않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김씨 측 변호인은 오랜 가정폭력으로 김씨 역시 폭력적인 성향이 생겼다고 주장했다. 범행 당시 심신미약상태였다고도 했다. 초등학생 아들이 김씨에게 전화를 걸어 “할아버지가 할머니 목을 조르며 죽이려고 한다”고 했고, 송씨 목을 조르고 폭행하는 아버지를 보자 흥분해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행했단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와 배심원 9명은 전원 심신미약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배심원 의견을 반영해 재판부는 송씨에게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거동이 불편하고 만취한 남편을 살해한 수법이 잔혹하고 일정 시간 의식이 남았을 피해자가 극심한 고통을 겪었을 점을 감안하면 범행결과가 대단히 참혹하다”며 “그러나 결혼 후 40여년간 가정폭력으로 고통받으면서도 원망보단 피해자에게 순종했고, 가족 생계와 손자 양육에 헌신한 피고인을 유족은 물론 이웃까지 선처를 바라는 점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김씨에 대해선 “친아버지를 잔혹하게 살해한 것은 국민 정서에 반하는 패륜적 범죄”라며 “어머니를 단지 경제적 문제로 재결합하게 한 점, 둔기로 아버지를 먼저 때려 사건의 주요 결과를 일으킨 점, 어머니가 사건 전모를 밝힐 때까지 부인한 것은 불리한 정상”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 반성중이고, 오랜 기간 아버지 폭력으로 고통을 겪은 것으로 보이는 점, 유족도 선처를 탄원하는 점, 부양할 자녀가 있는 점은 유리한 정상”이라고 밝혔다. 또 “살해에 이르게 된 경위를 전적으로 피고인 잘못으로만 돌릴 수 없고, 아버지 폭력이 아내와 자녀 건강, 세대를 이어 심각한 폭력을 구조화하는 끔찍한 가정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노력으로 판결을 내렸다”고 양형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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