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물주 위에 건물주라지만.. "임대료 안들어오면 오래 못 버티는건 마찬가지"

연지연 기자 2020. 10. 8. 06: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 7월 서울 독산동에 꼬마빌딩을 하나 마련한 진모(41)씨는 임차인이 월세를 연체할까봐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건물 하나 갖고 싶다는 꿈을 이뤘다는 기쁨은 잠시, 은행에 내야할 이자 비용을 충당하지 못하면 어째야 하는지 고민이 더 커졌다.

장사가 안 된다는 임차인의 시름을 들으면 스트레스가 배가 된다. 진씨는 "임차인 월세를 받아야 은행에 이자를 낼 수 있는 입장인데, 임대인의 사정은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것 같다"면서 "어렵게 결정하고 마련한 자산인데 혹여 은행에 넘어갈까봐 걱정이 크다"고 했다.

코로나19 등 재난으로 피해를 본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임대료 감액 청구권을 쓸 수 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상가임대차법) 개정안 소식에 소규모 임대업을 하는 임대인의 한숨도 깊어지고 있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세간의 인식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대출을 기반으로 소규모 임대사업을 하는 경우도 많아 예상 밖의 임대료 손실이나 중단으로 이자를 갚지 못하는 경우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8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임대료가 6개월 이상 들어오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다는 건물주들의 호소가 이어지는 상황이다. 최근 서울 역삼동의 대지면적 200㎡짜리 6층 건물을 매수한 A씨가 대표적인 예다. 그는 보증금 1억4000만원에 월세 1200만원을 받는 조건으로 48억5000만원에 건물을 매수했다. 대출은 30억원 가량을 받았다. 취득세 2억2000만원, 등기비용과 중개수수료를 뺀 실제 투자금액은 18억원 수준이었다.

은행 대출액 30억원에는 3% 가량의 금리가 붙었다. 한 달 이자만 750만원이다. 건물 관리비까지 제하고 나면 한 달에 300만원 가량의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이 중 3개월치는 1년치 재산세로 빼둬야 한다. 결국 1년치 월세에서 나오는 수익 중 9개월치에 해당하는 3000만원 정도가 임대인이 가져가는 수익인 셈이다. 여기서 임차인들이 월세를 연체하거나 상가임대차법에 근거해 월세를 임의로 줄여서 입금하면 이자 내는 것도 힘들어진다는 게 A씨의 주장이다.

논현동의 대지면적 207㎡ 5층짜리 꼬마빌딩을 매수한 B씨의 장부를 들여다 봐도 사정은 비슷했다. B씨는 보증금 3억5000만원에 월세 1200만원을 받는 조건으로 44억원에 건물을 매수했다. 실제 투자금액은 22억원, 대출은 3% 금리로 21억원을 받았다. 한 달에 내야 하는 이자는 525만원이다. 월세에서 이자를 제외하면 약 550만원의 수익을 낼 수 있다. 월세 두달치는 재산세라고 생각하고 비용으로 제외하면 빌딩 소유로 1년에 거둘 수 있는 수익은 5500만원 정도다.

꼬마빌딩 건물주 임모(49)씨는 "우리 상가 1층에 김밥집 임차인이 재료를 들여와 김밥을 판매해 수익을 얻는 것처럼 나는 건물유지관리와 임대를 해서 수익을 얻는다. 나도 조마조마한 하루를 사는데, 건물주라는 이유 만으로 희생과 양보만을 원한다"고 했다.

이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임대료가 들어오지 않으면 은행에 이자를 내기가 어려워지고, 6개월 이상 연체되면 건물이 경매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시중은행들은 3개월 이상 이자를 연체할 경우 채무자에게 이자상환에 대한 공지를 하고, 6개월 이상 이자가 연체되면 경매에 넘기는 등의 방법을 모색한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통상 이자가 3개월 이상 연체되면 상환 능력에 대한 실사가 들어가는데,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통과되기 이전부터도 임차인과의 갈등은 해결하기 어려운 이슈로 분류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임차인과 임대인이 갈등을 빚을 경우 명도 소송 등으로 기간이 상당 부분 소요되기 때문이다.

빌딩중개전문업체 ‘빌사남’ 관계자는 "공실이 생기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임차인의 입장을 마냥 배려해 임차료를 깎아줄 수도 없는 처지인 것이 건물주도 현금흐름을 예상하고 사업을 진행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다른 빌딩중개업계 관계자는 "임대료를 깎아준다고 해서 은행이 이자부담을 줄여주는 것도 아니고, 정부 차원에서 세제혜택이 있는 것도 아니다"라면서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분위기인 것도 문제"라고 했다.

실제로 임대로 인한 투자수익률은 높지 않은 편이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 2분기 서울 지역 주요 상권의 투자수익률은 2%를 넘지 못했다. 테헤란로가 1.91%로 가장 높았고, 광화문과 명동, 동대문, 논현역 등은 1.2~1.4% 사이다. 시중은행 대출 이자보다 낮다. 다만 부동산 상승기에는 시세 차익을 기대할 수 있는 만큼 매각으로 큰 수익을 내는 경우도 많다.

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차입급 비중이 높아 공실이 났을 때나 임대료가 연체됐을 때를 대비하지 못하는 이들의 물건들이 내년 초부터 경매에 나올 수 있다"면서 "주택시장에서 재미를 본 사람들이 지가 상승을 노리고 들어오기도 하지만, 임대차 개정법 등 최근의 분위기를 감안하면 무리한 건물 투자는 지양해야 한다"고 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