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 아닌 '중간 대피층'이 목숨 살렸다
실내 피난·소화시설 중요성 절감
[경향신문]
울산에서 지난 8일 밤 발생한 33층 주상복합아파트 화재는 대형 참사가 우려됐지만 사망자는 없었다. 이 건물에는 127가구 주민 380여명이 살고 있었다.
대형 참사로 이어지지 않은 데는 이 건물에 설치된 피난구역인 ‘중간 대피층’이 큰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간 대피층은 방화시설 등이 강화된 구역으로 화재 등 재난 때 주민들이 피신해 외부의 구조를 기다릴 수 있도록 만든 곳이다.
건축법은 50층이나 200m 이상 초고층 건물을 지을 때는 중간 대피층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화재가 발생한 울산 삼환아르누보는 높이 113m(33층)로 중간 대피층 의무설치 대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건물은 15층과 28층에 중간 대피층이 설치돼 있었다.
주민 77명은 중간 대피층과 건물 옥상으로 피했다. 소방대원들은 이들에게 불길이 닿지 않도록 보호 조치하면서 큰 피해 없이 비상계단을 통해 지상으로 내려올 수 있게 했다.
올해 초까지 이곳에 살았던 이봉길씨(62)는 “일찍 건물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주민들은 중간 대피층으로 이동했을 것”이라며 “중간 대피층에는 화염이 스며들지 못하도록 양압시설을 갖추고 있어 비교적 안전하다”고 전했다.
건물 밖 탈출을 시도한 주민 대부분은 화재 대응 매뉴얼대로 연기를 흡입하지 않도록 물에 적신 수건을 입에 대고 자세를 낮춘 채 빠져나오는 등 침착하게 대처했다.
소방당국은 강풍 때문에 구조 헬기를 띄울 수 없었다. 울산에는 고층 건물 화재에 대비한 고가사다리차도 없었다. 70m 고가사다리차는 전국에 10대뿐이다.
고가사다리차도 최대 23층까지만 화재를 진압할 수 있어 한계가 있다. 고가사다리차가 있었다 하더라도 강한 바람 탓에 사용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전국의 30층 이상 고층 건축물은 4692개나 된다.
배승용 조선대 소방재난과 교수는 “고가사다리차를 확보해야만 고층 건물 화재를 진압할 수 있는 건 아니다”라며 “무엇보다 내부 소화설비를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현석·백승목 기자 k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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