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문 세력에 휘둘리는 與.. 당 내외 민주주의 사실상 실종 [심층기획]

김민순 2020. 10. 10.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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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덤 정치'에 사로잡힌 민주당
새 지도부 '친문' 색채 한층 짙어져
'소신파' 금태섭·박용진엔 원색 비난
당내 비판 등 거스를 땐 문자테러도
전문가들 "與 브레이크 고장.. 결국 무너질 것"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 연합뉴스
“당에 에너지를 끊임없이 제공하는 에너지원이 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지난달 한국방송기자클럽 초청토론회에서 “열성 지지 당원들의 움직임이 당내 다양한 의견을 만드는 데 저해가 되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는 질문에 “어느 당이나 강성 지지자가 있고 온화한 지지자가 있다. (이들은) 당의 대처나 지향성을 감시하는 감시자 역할이 될 수도 있다”고 답했다. 여권 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강성 ‘친문(친문재인)’ 지지자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이 대표의 이 같은 발언은 과거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대선 국면에서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뒤 상대 후보에게 가해졌던 친문 지지자들의 문자 폭탄이나 비방 댓글에 대해 “경쟁을 더 흥미롭게 만들어 주는 양념 같은 것이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던 언급을 연상케 한다. 지난 8월 전당대회에서 친문 색채가 한층 짙어진 지도부가 출범하면서 주요 현안에 대한 민주당 당론이 결정되는 과정에서 친문 지지자들의 주장이 준거 틀이 되고 있다.

공당이 강성 지지자들의 입김에 휘둘리는 현상은 특정 정치인을 배타적으로 선호하는 ‘팬덤 정치’와 무관치 않다. 팬덤 정치는 이 대표의 언급처럼 당의 ‘감시자’가 될 수 있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배타적 태도로 당내 민주주의를 해치는 부정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與, 깨져버린 다원성… ‘팬덤정치’의 그늘

올해 4월 총선을 거치면서 ‘친문세력’은 민주당의 최대 주주가 됐다. 친문 지지자들은 공천 과정에서부터 적극적으로 개입해 문 대통령이나 문재인정부의 정책을 비판한 비문(비문재인) 후보들을 걸러냈다. 검경수사권 조정 등 여권이 추진한 정책에 문제를 제기한 금태섭 전 의원이 대표적 희생양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 당시 그를 적극 두둔한 인사들은 대거 공천장을 받아들었다. 친문 후보들이 전면에 나선 총선에서 민주당이 압승을 거두면서 친문 ‘단일대오’ 체제가 만들어졌다.
여당이 국회 내에서 절대 과반을 차지하고 현직 대통령 지지자 일색으로 재편되면서 입법부의 행정부 견제 기능은 사실상 무력화됐다. 청와대의 국정 과제는 국회를 장악한 여당에 의해 속속 입법 절차를 밟고 있다. 여당 내 반대 목소리는 사실상 실종 상태다. 친문 지지자들은 소수의 이견조차 틀어막고 있다. 추미애 법무장관 아들의 군 휴가 특혜 의혹 사태 와중에 “병역은 국민의 역린”이라며 추 장관을 비판한 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친문세력의 ‘표적’이 됐다. 추 장관의 대응방식을 비판했던 조응천 의원 역시 친문 지지자들로부터 “차라리 국민의힘으로 가라”는 등의 원색적 비난을 받았다. 올 총선과 지난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친문 지지자들의 영향력을 지켜본 의원들은 청와대와 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헌법기관인 의원 개개인은 사라지고 청와대의 지침을 수행하는 여당만 보인다는 비판이 나온다.

민주당 내에서 국민정서와 동떨어진 목소리가 자주 들리는 것도 친문 팬덤의 부산물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추미애 사태’ 당시 민주당에서는 “추 장관 아들은 안 가도 되는 군대를 갔다. 오히려 칭찬해줘야 한다”고 특혜 의혹 당사자를 두둔하거나 안중근 의사에 빗댄 논평이 나왔다.

민주당의 한 중진의원은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온라인 중심으로 활동하는 강성 지지자들은 당내 비판을 배척하고 따르지 않으면 ‘문자테러’ 등 공격도 감행한다”며 “비위를 맞추지 않으면 내가 다음번 타깃이 되는데 어느 누가 ‘쓴소리’를 할 수 있겠느냐”고 토로했다. 친문 지지자들의 강한 결속이 당내 다양성을 저하하고, 정파 대립과 국론 분열을 부추긴다는 비판이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박근혜 전 대통령도 지지층이 견고했지만, 실패했다. 상황이 같다고는 볼 수 없지만 강성 지지자들에게 휘둘리다 침묵하는 다수의 지지를 잃어버릴 수 있다”며 “문재인정부 역시 정권재창출을 위한 기로에 서 있다”고 말했다.
◆“‘레드팀’ 없는 민주당… 외부 비판 수용이 살길”

박성민 정치컨설팅 그룹 민 대표는 “이해찬 대표에 이어 이낙연 대표 체제에서도 민주당은 여전히 이견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며 “어느 정당이든 이견이 허용돼야 하고, 그게 민주주의의 기본인데 ‘레드팀’ 역할을 아무도 하지 않으니 폭주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박 대표는 그러면서 “‘브레이크’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 민주당이 계속 이런 식으로 나가면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민주당 의원들이 강고한 친문 지지자들이 선호하는 정치를 하면서 객관적인 외부 비판에 대해서는 귀를 닫아버리는 ‘자기확신’과 ‘확증편향’에 빠져 있다”면서 “처음에는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친문 지지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태도를 취했지만 어느새 자기 스스로도 (친문 지지자들의) 논리에 빠져버렸다“고 진단했다.

박창환 장안대 교수는 민주당의 친문 쏠림 현상의 원인으로 ‘조급함’을 꼽았다. 그는 “거대 여당이 되면서 정책 현안을 다 해결할 것처럼 공언했지만 현실에서는 오히려 스텝이 꼬이고 있다”며 “예컨대 ‘부동산3법’을 통과시켰는데 주택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는 식으로 각종 현안이 풀리지 않는 데서 오는 조급함이 곳곳에서 실수로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박 교수는 “내년 서울·부산 시장 보궐 선거를 앞두고 조그마한 흠이라도 잡히면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문제 해결 방식을 독단적으로 이끌어가고 있다”며 “정치는 입장이 다른 쪽과도 함께 풀어나가야 하는 만큼 공개적이고 투명한 방식으로 숙의하고, 타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민순 기자 so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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