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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우선' 주차장 필요한가요? 서울 마포구의 실험

구경하 입력 2020. 10. 11.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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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위한 정책인데 여성도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정책들이 있습니다. 여성 우선 주차장이 대표적입니다.

차 댈 곳을 찾기 힘든 서울 도심에서 성별을 기준으로 주차 편의를 제공하는 데 대해, 일부 남성들은 역차별이라고 반발합니다. '여성이 주차를 못 한다'는 편견이 깔린 게 아니냐며 일부 여성들은 이 정책이 여성혐오를 부추긴다고 보기도 합니다.

■ "여성이 행복해야 모두가 행복" 여행주차장의 시작

여성 우선 주차장을 처음 도입한 건 2009년 서울시였습니다.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이 '여성이 행복하면 모두가 행복하다'는 슬로건 아래 '여성이 행복한 도시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새로 짓는 주차장에 여성 우선 주차 구역을 설치하도록 의무 규정을 만들었습니다.

도입 당시 명칭은 여행(女幸)주차장이었는데요, 주차장 출입구 또는 주차관리원과 가깝고 사각이 없는 밝은 위치를 여성 우선 주차면으로 지정해, 지하주차장 범죄에 불안해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취지였습니다. 2010년에는 UN 공공행정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서울특별시 주차장 설치와 관리 조례'에는 주차대수 규모가 30대 이상인 노상·노외·부설 주차장에는 총주차대수의 10% 이상을 여성이 우선하여 사용하는 주차구획으로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2009년 잠실역에 설치된 여행주차장.


시행된 지 11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종종 여성 우선 주차장을 폐지해달라는 민원이 서울시에는 접수됩니다. 남성 운전자에게는 역차별이고, 여성 운전자에게는 오히려 범죄 표적이 되는 공간이 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사실 여성뿐만 아니라 유아를 동반한 남성 운전자도 여성 우선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고, 남성이 주차해도 제재는 없습니다. 하지만 분홍색 실선으로 그어진 주차장은 누군가에겐 흔쾌히 배려하는 마음이 들기보단 좀 불편한 공간이 되고 있습니다.

고정된 성 역할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면서 여성 우선 주차장에 대한 평가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2009년 발행된 여행주차장 매뉴얼은 "여성들은 짐을 싣고 내리거나 유아를 동승하지만 기존의 주차 환경은 이러한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여성 우선 주차장의 도입 필요성을 설명했습니다. 짐을 싣고 내리거나 유아를 동반하는 돌봄노동이 여성만의 일이 아님에도 여성 운전자의 특성으로 언급한 점이 눈에 띕니다.

■ "모두가 편한 공간이 여성친화도시…유아동반자, 임신부, 노약자 우선 배려"

배려가 필요한 교통약자를 성별로 나눌 수 있는 것일까요. 이런 고민을 대안으로 내놓은 곳은 서울 마포구 여성정책과입니다. 마포구는 교통약자를 성별이 아니라 처한 상황에 따라 누구나 될 수 있는 포괄적 개념으로 접근했습니다.

예를 들어, 성인 여성보다는 유모차를 동반한 남성이, 보행보조기를 차에 싣고 이동하는 노인 동행자에게 더 넓은 주차장이 배려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마포구는 교통약자를 위한 더 넓은 주차장을 도입하면서 BPA라는 개념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넓은 주차장을 뜻하는 Broad Parking Area에 더해, 교통약자인 유아동반자 (Baby caring person), 임산부(Pregnant person), 노약자(Aged person)의 이중적 의미를 담았습니다.


BPA는 어린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부모나, 출산을 앞둔 임신부, 지팡이나 보행보조기를 이용하는 노인이 승하차 때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일반 주차면보다 0.3~0.5m 넓게 설계됐습니다.

이동 편의를 위해 출입구와 가까운 곳에 배치하되, 주차 공간의 색상은 성별 고정관념을 탈피해 연보라색으로 나타냈습니다.

최은영 마포구 여성정책팀장은 "장난감 대여점을 이용하려고 망원나들목 주차장을 찾은 운전자들은 유모차를 많이 동반하는데, 여성 우선 주차장이라고 해서 면적이 더 넓은 것도 아니고 아빠가 오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라고 도입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또, "여성친화도시를 여성만이 살기 편한 게 아니라 모두가 편한 공간으로 고민했다"면서 "마포구는 육아하는 아빠를 위해 여성 전용 화장실에만 있던 기저기 교환대 설치를 확대했다"고도 설명했습니다.

BPA가 설치된 곳은 마포중앙도서관의 2면과 망원나들목 공영주차장 8면으로, 마포구는 10개 면을 시범 운영한 뒤 신규 공영주차장에 확대 설치 여부를 정할 예정입니다. 서울시 조례상에 의무화된 여성 우선 주차장은 그대로 운영됩니다.

구경하 기자 (isegoria@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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