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열병식에서 눈길을 끈 5가지 장면

박서강 2020. 10. 1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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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10일 노동당 창건일 75주년을 맞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병식을 개최했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전했다. 이례적으로 어두운 자정에 열린 이번 행사에서는 폭죽 등 화려한 불빛들이 사용돼 이목을 끌었다. 평양=노동신문 뉴스1
노동당 창건일 7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백마를 탄 북한 인민군들이 김일성광장으로 입장하고 있다. 평양=노동신문 뉴스1

북한이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을 10일 새벽 전격 개최했다. 수해피해와 코로나19 등 특수한 상황 속에서 새롭게 시도한 심야 행사인 만큼, 과거에 볼 수 없던 새로운 장면들이 연출됐다. 열병식에서 눈길을 끈 장면들을 모았다.


#1 김정은의 눈물

북한 최고지도자가 수많은 병력과 군중, 중계 카메라 앞에서 울먹였다. 올해 북한이 겪은 ‘삼중고’, 즉 경제제재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수해를 언급하며 주민들에 대한 미안함과 감사함을 전하면서다.

김 위원장은 “가혹하고 장기적인 제재 때문에 모든 것이 부족한 속에서도 비상 방역도 해야 하고 자연재해도 복구해야 하는 난관에 직면한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라며, “예상치 않게 맞닥뜨린 방역 전선과 자연재해 복구 전선에서 우리 인민군 장병이 발휘한 애국적 헌신은 감사의 눈물 없이 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너무도 미안하고 영광의 밤에 그들과 함께 있지 못한 것이 마음 아프다”고도 덧붙이던 김 위원장은 안경을 벗고 눈물을 삼키며 연설을 이어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0일 노동당 창건일 75주년을 맞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에서 연설 도중 울먹이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처
열병식에 참석한 주민들이 김정은 위원장의 연설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처

북한 최고지도자가 연설 도중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며 자책하는 모습은 평양 당원들의 피해 복구 지원을 호소하던 지난 수해 직후 모습과 결이 비슷하다. 항상 강건하고 때로는 공포스러운 존재로 인식돼 온 최고지도자가 인민의 감성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체제 결속을 꾀하는 장면은 이날 열병식에서 단연 눈에 띄었다.

김 위원장은 또한, 남한 국민들을 향해 “사랑하는 남녘 동포”라며 “보건 위기(코로나19)가 극복되고 굳건하게 손 맞잡길 기원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과거의 지도자와 사뭇 다른 연설을 마친 김 위원장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신형 전략무기가 등장하자 만족스러운 듯 환하게 웃어 보였다.


#2 유례없는 심야 열병식

10일 새벽 0시 김 위원장이 주석단에 모습을 드러내자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은 시작됐다. 김일성 생일인 태양절이나 인민군 창설 기념일 등 굵직굵직한 국가 기념일마다 대규모 열병식으로 대내외에 무력을 과시해 온 북한이 심야에 열병식을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심야 열병식은 유례를 찾기 어렵다.

북한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이 10일 새벽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진행되고 있다. 평양=노동신문 뉴스1
열병식에서 퍼레이드를 하고 있는 북한 인민군. 심야에 열린 행사인 만큼 조명에 의해 병력이나 무기 체계 등이 더욱 부각됐다. 평양=노동신문 뉴스1
북한은 10일 노동당 창건일 75주년을 맞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병식을 개최했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전했다. 이례적으로 어두운 밤에 열려, 폭죽과 포 등 화려한 불빛들이 사용돼 주목 받았다. 평양=노동신문 뉴스1

북한이 심야 열병식을 개최한 것을 두고 일각에선 대선을 앞둔 미국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과의 친분을 강조해 온 만큼 코로나19 확진 등으로 위기에 빠진 트럼프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의도도 읽힌다. 당초 열병식이 생중계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으나 이날 열병식은 19시간이 지난 이날 저녁 7시 녹화 중계됐다. 과시는 하되 최대한 자극적이지 않은 방식을 택한 것으로 해석된다.

야간이기 때문에 열병식에 공개되는 신형 무기의 자세한 식별이 쉽지 않다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주변 풍경이 어둠에 묻히다 보니 열병식 자체가 더욱 부각될 수 있다는 점도 심야 열병식의 고려 사항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3 조명이 ‘열일’한 열병식

김 위원장은 지난 8월 13일 당 정치국회의를 주재하며 당 창건 75주년 행사를 ‘특색 있게’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조선중앙통신은 당시 회의 소식을 전하며 “모든 경축 행사들을 최상의 수준에서 특색 있게 준비해 당 창건 75돌에 훌륭한 선물로 내놓을 수 있는 대정치 축전으로 되도록 하기 위한 해당한 대책을 강구했다”고 보도했다.

‘특색 있는’ 이날 열병식의 핵심은 조명이었다. 과거 주간 열병식을 마친 후 밤에 대규모 불꽃놀이를 열던 방식에서 벗어나, 광장을 환하게 비춘 대규모 조명과 폭죽, 발광다이오드(LED) 등을 열병식에서 선보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주석단에서 고공 비행쇼를 관전하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처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전투기들이 '비행쇼'를 선보이고 있다. 날개에 LED 조명을 장착한 전투기들은 부챗살 대형을 이루며 김일성광장 상공에서 열병비행을 장식했다. 조선중앙TV 캡처
북한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을 경축하는 횃불 행진이 지난 10일 새벽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리고 있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실제로 이날 열병식에서는 도열한 병력들과 각종 첨단 전략무기가 어둠 속에서 환하게 조명을 받아 더욱 돋보이는 효과가 나타났다. 또한, 날개에 LED 조명을 장착한 전투기 편대의 화려한 비행쇼는 이전의 열병식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장면이었다. 여기에 형형색색의 불꽃놀이까지 동원되면서 엄중하고 무거웠던 열병식을 화려한 축제로 보이게 하라는 김 위원장의 지시가 어느 정도 실현됐다.


#4 '노 마스크' 열병식

코로나19의 세계적인 확산 사태에도 불구하고 이날 열병식이 열린 김일성광장에선 어느 누구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물론, 주석단에 자리 잡은 고위 간부, 도열한 군 병력과 환호하는 주민들 모두 맨얼굴이었다.

10일 노동당 창건일 75주년을 맞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에서 군 병력과 주민 등 참가자 전원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 평양=노동신문 뉴스1
10일 새벽 열병식을 끝낸 열병 대원들이 평양 거리를 빠져나가며 주민들의 환호를 받고 있다.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다. 평양=노동신문 뉴스1

이와 같은 ‘노 마스크’는 그동안 북한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을 과시하기 위한 의도적 조치로 보인다. 이날 김 위원장은 연설에서도 “한 명의 악성 바이러스(코로나19) 피해자도 없이 모두가 건강해 주셔서 정말 고맙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행사장 밖은 분위기가 달랐다. 이날 평양 시내 주요 도로를 줄지어 이동한 병사들이 모두 마스크를 착용했고, 연도에 서서 환호하던 주민들 또한 전원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5 무더기로 등장한 신무기

대북 전문가와 언론들은 열병식을 앞두고 신형 전략무기의 등장을 예측했다. 시험 발사와 같은 무력 도발이 부담스러운 만큼 무기 체계 공개를 통한 시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예측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북한의 신형 전략무기들은 이날 열병식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신형 ICBM을 실은 11축 22륜 형태의 이동식발사차량(TEL)이 등장하자 김 위원장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최신 ICBM으로 통했던 ‘화성-15형’의 TEL이 9축 18륜인 데 반해, 이날 공개된 TEL은 바퀴 2축이 늘어나 있었다. 따라서 신형 ICBM은 화성-15형보다 전장과 직경, 무게 등 규모는 물론 사거리도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을 만큼 늘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탄두부의 경우 ‘다탄두’ 탑재형으로 개량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10일 당 창건 75주년을 맞아 진행된 열병식에서 신형 ICBM이 공개되고 있다. 평양=노동신문 뉴스1
10일 당 창건 75주년을 맞아 진행된 열병식에서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이 공개되고 있다. 평양=노동신문 뉴스1
10일 당 창건 75주년을 맞아 진행된 열병식에서 KN-23이 공개되고 있다. 평양=노동신문 뉴스1

이날 등장한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북극성-4A’ 역시 기존 ‘북극성-1형’이나 ‘북극성-3형’에 비해 직경이 커졌고, 다탄두 탑재 가능 형태로 진화한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도 북한은 600㎜ 초대형 방사포와 대구경 조종 방사포, 북한판 이스칸데르라는 ‘KN-23’ 등 최첨단 전략무기를 무더기로 공개했다.

김 위원장은 이 같은 신형 무기들이 자위적인 전쟁 억제 수단임을 강조했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그 누구를 겨냥해 전쟁 억제력을 키우는 것은 아니다”라며 “우리 스스로를 지키자고 키우는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곧, 위협을 받을 경우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는 경고로 해석된다.

10일 당 창건 75주년을 맞아 진행된 열병식에서 6연장 초대형 방사포가 공개되고 있다. 평양=노동신문 뉴스1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0일 당 창건 75주년을 맞아 진행된 열병식에서 신형 전략무기가 소개되자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평양=노동신문 뉴스1

박서강 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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