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일해도 퇴직금 줘라" 아니면 말고식 법안에 기업들 '냉가슴'

손일선,이석희,박제완 2020. 10. 11.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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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적경쟁에 '황당 입법' 속출
법 원칙 무시한 '과잉입법'
공직자 주택 규제 법안처럼 위헌소지 법안 버젓이 발의
특정집단 위한 '표퓰리즘'
통영과 서귀포 어민 의식해 어촌계장에 의무수당 추진
이슈 편승한 '무더기 발의'
대북전단 비판 고조되자 너도나도 금지법안 쏟아내

◆ 의원입법 대해부 (上) ◆

국회의원은 동료 의원 10명의 동의만 받으면 하루 만에도 법안을 발의할 수 있다. 사전영향평가, 규제 심사, 관계기관 협의, 국무회의 심의 등 발의에만 최소 5개월 이상 걸리는 정부 입법과 비교하면 국회의 입법권엔 권위와 신뢰가 '제도적'으로 부여돼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의원 입법이 정부 입법에 비해 속도가 훨씬 빠른 대신 부실 입법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특히 21대 국회 들어 입법권 남발에 따른 부작용이 심각한 문제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터무니없는 법안으로 입법 신뢰도를 하락시키는가 하면 국가 재정은 고려하지 않은 채 특정 집단의 이익만을 위한 '표(票)퓰리즘' 법안이 난무하고 있다.

입법권 남발의 대표적 유형 가운데 하나는 법 원칙을 무시한 '과잉 입법'이다. 신정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7월 다주택 고위공직자들의 부동산 백지신탁을 의무화하고 이를 어겼을 때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발의해 논란이 됐다. 윤재갑 민주당 의원도 비슷한 시기에 고위공직자가 조정대상지역 내에 2주택 이상 보유할 경우 임용·승진을 제한하도록 하는 법을 발의했다. 당장 공직자의 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같은 당의 한 판사 출신 의원은 "위헌 소지가 다분한 법안"이라며 "정말로 통과를 기대하고 이런 법안을 발의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특정 집단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이른바 '표퓰리즘' 법안도 문제로 지적된다. 국회의원이 유권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대표라는 측면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과도한 선심성 법안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위성곤 민주당 의원과 정점식 국민의힘 의원은 어촌 주민들의 자치단체인 어촌계 계장에게 수당 내지 활동비를 지원하도록 하는 수산업협동조합법을 발의했다. 하지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어촌계장은 공적으로 임명되는 지위가 아니고, 이미 대부분 어촌계에서 계장에게 활동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추가적으로 어촌계장에게 현금을 지원하는 법안을 내놓은 것은 표를 의식한 선심성 행보라는 지적이 나온다. 위 의원의 지역구는 제주 서귀포, 정 의원은 경남 통영으로 어민 인구가 많은 지역이다. 또 다른 입법 남발 유형은 사회적 이슈에 편승한 '무더기 발의'다. 국민적 관심이 쏠린 사건이 발생하면 의원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비슷한 법안을 줄줄이 내놓는 것이다. 의원 입법이 정부 입법에 비해 기민하게 문제에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정작 이슈가 잠잠해지면 관심도 빠르게 식어 '죽은 법안'이 되는 경우가 대다수다. 21대 국회 대표적인 무더기 발의 사례는 '대북전단 금지법'이었다. 지난 6월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 문제로 북한과의 긴장이 고조되자 대북전단을 법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이 한 달 새 7건 쏟아졌다. 그러나 3개월 이상 시간이 지난 시점에서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법안은 1건도 없다. 게다가 대북전단 살포는 법 개정 없이 현행법으로도 금지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실제로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을 근거로 북한과의 접경지역을 위험구역으로 지정하며 탈북 단체의 출입을 금지해 대북전단 살포를 막았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일본은 법안 하나를 내는 데도 몇 년씩 걸리는데 우리는 법을 전공하지 않은 보좌관들이 만들어 온 법안을 의원들이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 내고 있다"면서 "국회의원이 되면 최소 6개월은 로스쿨 수업을 듣게 만들어야 한다"고 쓴소리를 내놨다.

[손일선 기자 / 이석희 기자 / 박제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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