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프리즘] 박덕흠 의원님께 / 오승훈

오승훈 입력 2020. 10. 11. 18:36 수정 2020. 10. 12.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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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덕흠 의원이 지난해 11월1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보수 통합과 인적 쇄신 등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기 위해 당시 자유한국당 당내 중진의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승훈 ㅣ 전국팀장

박덕흠 의원님께.

안녕하십니까? 수차례 전화를 드렸는데 연락이 닿지 않아 이렇게 공개서한으로나마 인사드리는 점 용서하십시오. 의원님에 대한 기사를 부지런히 쓰고 있는 <한겨레> 오승훈이라고 합니다.

지난 추석 연휴는 잘 보내셨는지요? 주민들에게 추석맞이 문자를 보냈는데 “사퇴나 하라”는 답장을 왕왕 받으셨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지역 사무실 등 충북 영동·옥천 지역구 곳곳에 의원님의 사퇴를 촉구하는 펼침막이 잇따라 걸렸다는 소식도 있더군요. 연휴 동안 그 펼침막들이 갑자기 사라졌는데 마침 그 자리에 보좌관이 있었다는 증언도 나오자, 시민들을 중심으로 1인시위도 벌어지고 있다죠. 먼저 심심한 위로를 드립니다. 그러나 의원님이 국회의원으로 있는 동안, 일가 건설사가 피감기관 등으로부터 수천억원대의 공사를 수주한 일을 시민들은 좀처럼 납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단군 이래 최대의 이해충돌’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시민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십시오.

지난주부터 시작된 국정감사 준비는 잘 마치셨는지요? 여의도에선 국감을 ‘1년 농사’라고 한다면서요? 국감에서 피감기관들의 비리 의혹에 대해 추상과 같은 불호령을 내린 뒤 공교롭게도 피감기관들로부터 일가 건설사들이 수백억원의 공사를 따내거나, 피감기관에 “신기술 사용을 늘려달라”고 주문한 이듬해부터 아들이 대표로 있는 건설사가 보유한 신기술 사용이 부쩍 늘어 371억원의 사용료 등을 받은 사실들을 저희가 보도한 시점이 공교롭게도 국감 직전이었습니다. 의원님이 이번 국감장에 좀처럼 출석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국토교통위원회에서 사보임을 해 느닷없이 환경노동위원회로 가셨기 때문일 듯도 합니다. 2018년 12월 환노위 소속이 아닌데도 회의장을 찾아 비정규직 노동자의 산업안전규정을 강화한 이른바 ‘김용균법’에 대해 강력 반대 의사를 전달했던 의원님에 대해서 환노위 안에서도 우려가 나오고 있는 점도 부담이 되셨으리라 짐작할 따름입니다.

의원님은 2018년 피감기관인 서울교통공사의 친인척 채용비리 의혹을 “신적폐”라고 엄히 꾸짖은 바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 의원님이 대한전문건설협회의 회장과 서울시지회장으로 있을 때 조카와 모교 교수의 딸, 일가 건설사 직원의 아들, 서울시 공무원 등이 채용되기도 했습니다. 협회에서 인사업무를 담당했던 관계자는 의원님이 회장 등을 지낼 때 총 25명의 부정채용이 이뤄졌다고 했습니다. 취재 결과, 협회 규정상 채용의 최종 결정은 회장이 하도록 돼 있더군요. 물론 의원님 쪽에선 정상적인 절차에 따른 채용이라며 최근 언론중재위원회에 <한겨레>에 대한 정정·반론보도 및 1천만원의 손해배상 청구를 했더랬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의원실 관계자에게 수차례 전화와 문자로 입장을 물었을 때는 연락이 안 되었는데 이제라도 반론을 보내오신 점 환영합니다. 의원님이 국감 때 “채용비리가 나오면 엄중 조치해 고발해야 한다”고 한 말씀 기억합니다.

의원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시민들이 의원님과 이명박 전 대통령의 활동 등을 빗대 ‘이명박덕흠’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같은 건설업계 출신에 다양한 이권에 개입한 의혹 등이 시민들로 하여금 그러한 풍자를 하도록 만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의원님에 대한 의혹 제기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아들 문제를 덮기 위한 정치공작이라고 하신 말씀 기억합니다.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살아 있는 권력의 아들 군대 휴가 연장 의혹이 중요하다면, 3선 의원의 일가 건설사가 피감기관으로부터 수천억원의 국민 세금을 공사비로 받은 것도 그만큼 중요한 의혹이라고 봅니다. 두 명의 전·현직 법무부 장관과 관련된 보도 및 전방위 검찰수사와 비교해, 의원님 관련 의혹에 세상은 상대적으로 조용하기만 합니다. 불공정을 용납하지 못한다는 젊은이들도 의원님의 천문학적인 이해충돌과 채용비리 의혹에는 분노하지 않는 것 같아 의아할 따름입니다. 느닷없는 서한, 널리 혜량해 주십시오. 환절기에 건강 유의하시길 빕니다.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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