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세정의 시선] '재인 산성' 쌓을수록 권력에 금가는 '정권 말기 징후' 속출
'경찰 차벽'으로 비판 틀어막아도
강기정·추미애·이성윤·강경화 등
비리·특혜·일탈 의혹 폭로 잇따라
하마터면 묻힐뻔한 일들 드러내
'보이지 않는 손'이 진실 알리면
어떤 권력 철옹성도 결국엔 뚫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북한의 핵 무장에 대해 재임 중 입버릇처럼 "소련이 핵무기가 없어서 무너졌느냐"고 비판했다. 그런데 '소련 핵 망국론'은 주체사상의 이론가였던 황장엽(1923~2010)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사실상 원조다.
1997년 탈북 이후 수차례 강연에서 황 선생은 "소련이 핵무기가 없어서 망했느냐"고 반문하면서 "북한 문제가 복잡할 수도 있지만, 김씨 정권 제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해법을 제시했다.
지난 10일 노동당 창당 75주년 행사에서 북한이 무력을 또 과시했지만, 절대무기를 보유해도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고 망한다는 것이 역사의 순리다. 김정은 정권이라고 예외겠나.
역사를 돌아보면 어느 시대 어떤 권력이든 내부모순으로 작은 구멍이 생기고 이를 신호탄 삼아 외부에서 영리하게 호응하면 철옹성(鐵甕城)도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권은 지금 '코로나 방역'을 이유로 국민 앞에 거대한 '경찰 차벽'을 쌓아 도탄에 빠진 성난 민심을 잠재우려 한다. 군사정권 시절도 아닌데 서울 도심 가는 길에 하루 12회나 검문당하는 이상한 '경찰 공화국'이 됐다. 외신은 "평양에서도 못 본 장면"이라 꼬집었다.
급기야 열린 민주주의의 상징인 광화문 광장마저 닫혀버렸다. 마스크를 잘 챙겨 쓴 시민들조차 목소리를 못 내게 입이 틀어막혔다. 헌법상 표현의 자유가 짓밟혔다. 어떻게 쟁취한 자유이고, 민주주의인가.
방역과 표현의 자유를 지혜롭게 절충하려는 진지한 노력은 찾기 어렵다. 행정편의주의식 차벽을 세금으로 손쉽게 동원했다. 비판 대상인 권력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국민의 목소리를 막는 것은 독재 정권의 전형적 행태다.
2017년 2월 SBS 대선주자 '국민 면접'에서 당시 문재인 후보는 "국민이 모여 문재인 퇴진을 요구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그런 일이 없겠지만, 그래도 물러나라고 한다면 광화문 광장으로 나가겠다. 시민들 앞에 서서 끝장 토론이라도 하고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이겠다."
하지만 지난 3일 개천절에도 9일 한글날에도 광화문 광장에 대통령의 그림자조차 비치지 않았다. 측근들은 대통령을 세종에 비유하며 용비어천가를 불렀지만, 진짜 세종대왕 동상은 한글날 경찰 차벽에 또 갇혔다.
그런데 이상하다. 권력이 국민 앞에 '재인 산성'을 높게 쌓을수록, 백성의 소리에 귀를 막을수록 권력이 강해지기는커녕 금이 가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예컨대 1조원이 넘는 라임 투자 손실 사태의 장본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강기정(당시 대통령 정무수석)에게 주라고 5000만원을 건넸다"고 폭탄 선언했다.
5000억 원대 옵티머스 펀드 사기꾼들이 금융감독원 조사를 앞두고 만든 문건에는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관계자들이 (펀드) 프로젝트 수익자로 일부 참여"라는 충격적 표현이 담겼고, 검찰 입수 문건에 오른 정·관계 인사 20여명의 이름이 하나씩 폭로되고 있다.
대통령 최측근에게 금품을 전했다는 진술이 검찰 조사 단계에 이미 나왔는데도 대통령의 대학 후배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측이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런 폭로가 있기에 범죄 혐의에 눈감은 '정치 검사'들의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범죄를 따질 수 있게 됐다.
정권 말기 징후로 해석할만한 현상은 그 외에도 한둘이 아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검찰의 살아 있는 권력 수사를 옥죄는 와중에 추 장관 일가 특혜 의혹이 불기소되면서 진상이 덮이는 듯했다.
하지만 추 장관이 아들 군부대 대위의 휴대전화 번호를 보좌관에게 전달한 카톡 대화 내용이 서울동부지검 보도자료에 삽입되면서 추 장관의 거짓말이 막판에 드러났다. 그나마 양심이 살아 있는 검사의 보이지 않는 손이 움직였나.
'어용 방송'이라 손가락질받아온 KBS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남편이 호화 요트를 구매하기 위해 코로나19 와중에 유유히 미국으로 여행 간 사실을 폭로했고, 권력에 쓴소리한 가황(歌皇) 나훈아(73)의 '소크라테스 공연'을 두 번이나 내보냈다. 권력의 수중에서 벗어나려는 공영방송의 거듭나기 몸부림인가.
북한 눈치 보기에 집착하는 문재인 정권에서 북한이 실종된 대한민국 국민을 처참하게 총살하고 불태운 만행이 하마터면 서해에 묻힐 뻔했으나 극적으로 공개됐다. 진실을 언론에 전한 '참 군인'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이런 사례들은 정권 초기라면 보기 힘든 장면들이다. 나라의 주인인 개개인이 진실 앞에 눈 감지 않는다면, 권력의 철옹성에도 결국 금이 가고 그 틈 사이로 진실이 전해져 정의가 구현되는 날은 반드시 온다. 그것이 역사의 가르침이다.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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