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정권 수사, 공소시효 없애라

이민석 기자 2020. 10. 12.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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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석 사회부 기자

5000억원대 옵티머스 펀드 사기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은 사건 초기인 지난 6월부터 4개월간 8번에 걸쳐 수사 상황을 기자들에게 알렸다. 평소엔 수사 내용을 사후에도 확인해 주지 않던 검찰이 압수 수색 장소, 영장 청구 날짜와 시각까지 실시간으로 밝혔다. 그런데 겉으론 언론 친화적인 척했던 검찰이 이 시기 청와대·여권을 비롯해 정·관계 핵심 인사 20여 명에 대한 로비 내용이 담긴 문건을 확보하고도 덮었다는 정황이 나왔다. 금감원 고위 간부를 상대로 금품 로비를 했다는 진술을 받고도 조서에 남기지 않았다. 결국 정권 비위를 가리려는 또 다른 고도의 언론 플레이였던 셈이다.

작년 말 터졌던 라임 펀드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남부지검도 수사 초기 여권 인사들 연루 정황을 감지했다고 한다. 그런데 남부지검 수뇌부의 ‘압박’으로 더 나아가지 못했다. 여당 의원이 라임 피의자로부터 고가의 맞춤 양복을 선물받았다는 사실은 언론이 취재해서 공개한 내용이다. 법정에서 “청와대 전 정무수석에게 5000만원을 건넸다”고 폭로한 라임 ‘돈줄’ 김봉현씨 진술도 수사팀이 일부 확인했지만 관련자 소환 조사도 하지 않았다. 검찰총장도 몰랐다. 이런 부실 수사를 지휘했던 간부는 이후 대검 고위직으로 승진했다.

덮으려던 의혹이 하나둘 불거지자 검찰 내 친정부 인사들이 연일 ‘긴급 회의’를 열고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수사 방향이 정권을 향하지 않도록 머리를 맞대는 촌극”이라는 자조 섞인 비판이 내부에서 나오고, “검찰청이 아니라 ‘여권(與圈)변호청’”이란 조소도 들린다.

‘조국 사태’ 이후 네 번 ‘물갈이 학살 인사’를 거친 검찰은 이제 노골적으로 이 정부 관련 수사를 봐주고 뭉개려 하고 있다. 관련자 13명을 기소했던 울산 선거 개입 사건은 총선 이후 수사를 아예 손을 놓은 듯 하다. 추미애 법무장관 아들의 군(軍) 미복귀 사건은 군무 이탈과 공무집행 방해 등 현행법 위반 증거가 잇따라 공개됐는데도 “어쨌든 무혐의”라면서 막무가내다.

이런 검사들 때문에 앞으로 검찰 수사는 점점 더 국민에게 신뢰를 얻기 힘든 지경으로 치닫고 있다. 옵티머스 일당들에게 적용된 혐의 중 자본시장법 위반죄는 검찰이 수사를 미룰 경우 공소시효가 만료돼 정권에 따라 얼마든지 없던 일로 가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차라리 정권 의혹 수사에서 아예 손을 떼고, 해당 사건들 공소시효도 정권이 끝날 때까지 정지시켰으면 한다. 여야(與野) 모두 야당 시절 정권 부패 사건에 대한 공소시효를 연장·폐지하는 방안을 앞다퉈 추진한 바 있다. 12·12 사건과 5·18 민주화운동 관련 범죄는 특별법이 통과되면서 공소 시효가 정지된 전례도 있다. 그래야 지금 수사팀처럼 사건을 붙잡고 수사하는 척하는 행태를 봉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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