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모형' 확장할 새 힘 발견했나

윤신영 기자 2020. 10. 12.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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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연구자 주도 국제연구팀 새 물리 실험 결과 발표..5번째 힘 존재 가능성 여부 관심
이번 연구를 이끈 주요 연구자들이 실험실에 모였다. 왼쪽부터 연구를 이끈 허준석 MIT 연구원, 이언 카운츠 연구원, 전홍기 서울대 연구원이다. 허준석 연구원 제공

한국인 과학자가 포함된 국제 연구팀이 중력과 전자기력, 강한상호작용과 약한상호작용 등 현대물리학이 밝힌 우주의 네 가지 힘 외에 다섯 번째 힘과 이 힘을 매개할 입자의 존재 가능성을 뒷받침할 실험 결과를 공개했다. 우주를 설명하는 ‘물리학의 표준모형’의 확장 가능성을 제안하는 결과일지, 기존 이론의 틀을 유지한 채 보다 정교하게 보완할 결과일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아직 인류가 실체를 밝히지 못한 우주의 구성물질인 ‘암흑물질’의 존재 가능성도 간접적으로 제시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허준석 미국 메사추세츠공대(MIT) 물리학과 연구원과 이언 카운츠 연구원, 블라단 불레티치 교수팀은 희토류 원소로 양자 연구에 널리 사용되는 이터븀 동위원소의 빛 특성(스펙트럼)을 각각 정밀하게 측정해 원소 사이에 존재하는 미세한 스펙트럼 차이를 구분하는 데 성공하고, 이 차이가 표준모형의 예측과 다르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입증했다고 12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물리학 분야 국제학술지 ‘피지컬 리뷰 레터스’ 9월 15일자에 발표됐다.

표준모형은 우주의 구성과 움직임을 설명하는 지금까지 인류가 고안한 가장 정교하고 완벽한 이론이다.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 12종과 4종의 기본 힘 가운데 중력을 제외한 3종의 힘을 전달하는 입자 4종, 다른 입자가 질량을 갖는 과정(힉스메커니즘)에 관여하는 입자(힉스입자) 등 총 17개의 ‘기본입자’의 상호작용을 통해 우주를 설명한다. 우주의 구성은 이들 기본입자 가운데 물질이 다양하게 결합해 이뤄졌고, 우주와 우주를 구성하는 별 등 물질의 움직임은 힘을 전달하는 입자가 이동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매우 정교하게 우주를 해석하고 예측할 수 있는 이론이지만 주요 힘 중 하나인 중력을 설명하지 못하고, 전체 우주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강력한 중력원인 암흑물질이나 우주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우주 팽창의 기원인 암흑에너지 등을 설명하지 못하는 등 여전히 한계도 많다. 따라서 물리학자들은 표준모형을 확장하는 새로운 이론을 이론과 실험, 관측을 통해 발견하려고 노력 중이다. 특히 아직 발견되지 않은 암흑물질이나 또다른 5번째 기본 힘을 전달하는 입자의 존재는 직접적으로 표준모형의 울타리를 벗어난 새 현상의 발견이기 때문에 이를 발견하기 위한 연구가 활발하다.

허 연구원팀은 원자를 전기적 성질을 지닌 입자(이온)로 만들어 전기장에 하나씩 가두는 기술인 ‘이온덫(이온트랩)’ 기술을 연구하던 물리학자로, 2017년 MIT의 또다른 연구팀이 제안한 연구에 자신들의 실험 기술을 접목해 새로운 발견에 성공했다. 당시 이웃 MIT 연구팀은 입자의 빛 특성(스펙트럼)을 측정해 원자핵 내부의 정보를 관측하면 동위원소 별로 각기 다른 스펙트럼이 측정된다는 사실을 연구하고 있었다. 

동위원소는 원자핵 내부의 양성자 수는 같지만 중성자의 수는 다른 원소들이다. 동위원소 별로 원자핵과 전자 사이의 에너지를 측정해 보면 동위원소에 따라 미묘하게 다르다는 사실이 밝혀져 있는데, 연구팀이 이 차이를 매우 정밀한 실험을 통해 처음 측정해 본 결과 실제 차이가 이론과 매우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허 연구원은 e메일 인터뷰에서 “중성자가 추가되면서 핵 전체의 무게와 크기가 바뀌면서 핵 내부의 전기적 성질이 변화하면 전자가 이에 반응해 스펙트럼이 변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었다”며 “하지만 이를 이터븀을 이용해 실제로 측정해 보니, 기존 이론에서 예측되던 패턴(선형 패턴)과 전혀 다른 비선형 패턴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실험 결과는 물리학에서 ‘증거’라고 부를 수 있는 수준인 ‘3시그마’ 수준의 통계적 유의미성을 지녔다. 물리학에서 관측(또는 발견)이라고 인정되는 5시그마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상당한 의미를 갖는 결과다.

연구팀의 측정 결과가 새로운 입자의 존재를 시사한다는 내용을 정리한 논문 속 그림이다. 중성자(n)와 전자(e) 사이에 작용하는 미지의 입자(파이)가 보인다. 위는 이들 사이의 관계를 설명한 파인만 다이어그램이고 오른쪽 아래는 이터븀 동위원소로 스펙트럼을 분석해 에너지 준위를 측정한 내용을 묘사했다. PRL 논문 캡쳐

연구팀은 이 같은 결과를 설명할 방법은 두 가지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하나는 기존 표준모형에서 제시하던 동위원소 별 스펙트럼 차이는 전자의 양자 상태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아주 작은 영향을 미치는 부분을 생략한 결과이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면 지금의 측정 결과를 나타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원자핵과 전자 수십 개의 양자상태는 수학적으로 정확히 기술할 수 없기 때문에 대부분 작은 영향을 미치는 고차원 계산항을 생략해 일종의 근사값을 구하는데, 이 과정에서 이론과 측정 결과가 달라졌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이 경우 이번 측정 결과는 기존 원자핵 관련 이론에 고차항을 추가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해(고차항 수정) 이론의 정밀도를 높이는 데 공헌하게 된다.

또다른 가능성이 바로 새로운 우주 기본 힘의 존재 가능성이다. 원자핵 속 중성자와 전자 사이에 작용하는, 작용 범위가 원자 크기에 비해 너무 짧지 않은 미지의 힘이 존재할 경우 이 같은 새로운 측정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양성자나 중성자를 구성하는 물질 기본입자로 강한상호작용에 반응하는 ‘쿼크’와, 강한 상호작용에 반응하지 않는 기본입자인 전자 등 ‘렙톤’ 사이를 매개하는 새로운 힘의 존재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허 연구원은 “이번 결과는 기존 표준모형의 고차항 생략에 따른 결과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못했다”면서 “하지만 이 같은 결과가 새로운 힘을 매개하는 입자의 존재에 의해 생겨났을 잠재성도 존재하는 만큼 후속 연구를 통해 이를 확실히 입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만약 이 제5의 힘이 존재할 경우, 이 힘과 물질 사이의 상호작용은 전자기력의 100억 분의 1 수준으로 매우 약하다”며 “이는 우리가 아는 물질(바리온)과 거의 반응하지 않는 입자라는 암흑물질의 정의와 맞아떨어진다. 이번 연구가 향후 암흑물질의 존재를 탐색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측정 정밀도를 더 높여서 이번에 관측된 스펙트럼 차이를 통계적으로 보다 확실하게 관측할 계획이다. 또 중성원자 등 다른 입자를 이용해 스펙트럼 차이를 측정할 예정이다. 연구팀과 비슷한 시기에 덴마크 연구팀이 칼슘 이온을 이용해 스펙트럼 차이를 측정한 다른 실험에서는 이번 연구와 달리 비선형 결과가 검출되지 않았다. 칼슘은 가볍고 전자 수도 적어서 더 높은 정밀도로 수행해도 비선형성을 측정하기 더 어렵다. 허 연구원은 “새로운 물리학을 시험하는 연구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에는 제원호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와 전홍기 연구원이 참여했다.

[윤신영 기자 ashill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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