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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민주주의 무너뜨리는 팬덤 정치

이창훈 입력 2020. 10. 12.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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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절대 밝히지 마세요.", "나는 참여한다고 말한 적 없어요."

팬덤정치는 시민의 정치 참여를 높인다는 차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정치 변화를 꿈꾸는 새 인물들은 문재인 팬덤에 사로잡힌 민주당에도, 과거와 단절하지 못한 국민의힘에도 참여하길 주저하고 있다.

배타적인 팬덤정치가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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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절대 밝히지 마세요.”, “나는 참여한다고 말한 적 없어요.”

최근 국민의힘 ‘청년정책특별위원회’의 자문단에 참여하는 걸로 알려진 일부 인사들의 반응이다. 국민의힘 청년정책특위는 MIT의 미디어랩을 본뜬 기구로, 청년 중심의 정책 실험의 장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발족했다. 이순호·김재섭 공동위원장은 ‘실패를 허락하자’는 유연함을 바탕으로 이념과 지역, 세대에 치우친 국민의힘에 새 활력을 불어넣을 실험을 담당할 기구로 특위 구성을 추진했다. 당 밖의 중도·진보 성향의 학자와 전문직에 종사하는 40·50세대가 자문단으로 합류한다. 특위는 청년의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일을 돕는 역할을 맡아 당의 외연 확장을 꾀할 예정이다.
이창훈 정치부 기자
그러나 특위 구성과 자문단에 참여하는 김경율 경제민주주의21 대표, 서민 단국대 교수 등의 이름이 사전에 보도되자 이들을 향한 여권 지지자들의 공격이 시작됐다. 김 대표는 합류설에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서 교수는 “더불어민주당의 한심한 작태를 보면서 야당에 대한 내 생각이 바뀌긴 했다. 그리고 그 당에는 윤희숙, 김웅 같은 정말 괜찮은 의원들도 있다”며 “다만, 현 정권을 비판하는 이에 대해 대깨문들이 어떤 짓을 하는지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거절했다”고 밝혔다.

김 대표와 서 교수는 ‘조국 흑서’로 불리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 저서의 공동저자로 과거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을 지지했지만 ‘조국 사태’를 계기로 지지를 철회했다. 두 사람 외에 자문단에 참여한 10여명의 인사들은 ‘비공개’를 전제로 합류를 결정했다. 야당을 지지한다는 부담과 그로 인한 비난, 더 나아가 ‘신상털기’까지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공개활동을 막는 큰 원인이었다.

‘정치인의 아이돌화’는 능동적인 팬을 만들었다. 문재인 대통령 출범 초기 ‘문꼴오소리’, ‘달빛기사단’ 등으로 불리던 문 대통령 지지자들은 아이돌을 응원하는 ‘팬덤 문화’를 정치권에 이식했다. 음원 사이트에서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의 노래를 반복해서 들어 순위를 올리듯이 문 대통령의 기사 링크를 공유, 좋아요 클릭·댓글 달기로 조회 수를 높였다. 아이돌 팬들의 공개 생일축하처럼 문 대통령의 생일에 지지자들이 내건 광고판이 지하철 역사에 걸리기도 했다. 팬덤정치는 시민의 정치 참여를 높인다는 차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하지만 팬덤정치가 배타주의로 흘러서는 곤란하다. 불행히도 문 대통령을 따르는 팬덤이 지난해 ‘조국 사태’를 계기로 그렇게 가고 있다. ‘노무현의 꿈, 문재인의 운명, 조국의 사명’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문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향한 야당과 언론의 비판을 ‘검찰개혁’을 방해하는 공세로 간주했다. 조 전 장관 이후에 등장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감싸는 태도도 달라지지 않았다.

정치 변화를 꿈꾸는 새 인물들은 문재인 팬덤에 사로잡힌 민주당에도, 과거와 단절하지 못한 국민의힘에도 참여하길 주저하고 있다. 그 사이 팬덤에 편승한 이들이 여당에 수혈돼 정치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배타적인 팬덤정치가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있다.

이창훈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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