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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특파원 리포트] 국민 구출 '쇼'도 못하는 정부

파리/손진석 특파원 입력 2020.10.13.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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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빌라쿠블레 공군기지에서 이슬람 무장세력에 납치된 지 4년 만에 돌아온 75세 여성 인질을 맞이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AFP 연합뉴스

파리 남서쪽에 ‘빌라쿠블레’라는 공군 기지가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이곳에서 두 번의 ‘국민 구출 쇼’를 연출했다. 해외에서 구출해온 자국민을 두 번 마중 나갔는데, 모두 치적으로 삼기 위한 ‘정치 쇼’의 성격이 있었다.

첫 번째는 작년 5월이었다. 프랑스 남성 두 명이 아프리카 여행 도중 무장단체에 피랍됐다. 이들은 프랑스 정부가 ‘적색 경보’ 지역으로 지정한 구역에 무모하게 들어갔다가 인질로 잡혔다. 둘을 구출하기 위해 마크롱은 최정예 특수부대인 ‘위베르 특공대’를 투입했다. 인질은 구출했지만 작전 과정에서 특공대원 2명이 무장단체 조직원들의 총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그러자 정부의 경고를 무시하고 위험한 여행을 했던 인질들을 향해 비난이 쇄도했다. 그래도 마크롱은 인질 두 사람이 귀환할 때 빌라쿠블레 기지에 마중 나갔다. 그는 “국가의 의무는 국민이 어디에 있든지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했다.

두 번째 국민 구출 쇼는 지난주에 벌어졌다. 아프리카 말리에서 이슬람 테러 집단에 4년째 억류된 75세 프랑스 여성이 풀려났다. 이번에도 마크롱은 빌라쿠블레 기지에 나갔다. 이번 구출은 테러 집단과 거래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불거졌다. 프랑스인 한 명을 데려오기 위해 말리 정부로 하여금 교도소에 수감된 지하디스트를 200명 가까이 풀어주도록 했기 때문이다. 테러 집단과 타협했다는 비판에 대해 엘리제궁은 “프랑스인 인질이 한 명도 없도록 해야 하는 것이 대통령의 임무”라고 되받았다. 마크롱은 두 번 모두 빌라쿠블레 기지 활주로에 서서 구출된 국민을 기다렸다. 국민의 목숨을 지키는 대통령이란 이미지를 심어줬다.

손진석 파리특파원

이에 반해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의 총격으로 서해 어업 관리단 소속 공무원이 숨진 사건에 대응한 방식은 달랐다. 고인의 목숨을 구하려고 노력한 흔적을 찾기 쉽지 않다. 국가 지도자로서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임무를 제대로 수행했다고 보기 어렵다. 그뿐 아니라 마크롱처럼 국민을 구하려 애쓰는 영웅적인 모습을 보여줄 ‘기회’였지만 스스로 포기한 인상을 준다.

‘보여주기식 쇼’라면 청와대가 엘리제궁에 뒤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국민의 목숨이 달려 있는 일에도 상대가 북한이라면 최소한의 보여주기식 대응마저 주저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북한 앞에서 작아지는 모습에 지금 집권 세력의 요체가 담겨 있다. ‘설마’ 했지만 ‘역시 그렇구나’라는 생각이 굳어진 국민이 많을 것이다.

프랑스인들은 마크롱의 두 번에 걸친 ‘국민 구출 쇼’를 지켜보며 든든함을 느낄 수 있었다. 위험에 빠지면 대통령이 무리수를 써서라도 지켜준다는 안도감이다. 반면 한국인들은 위험에 빠져도 가해자가 북한이라면 국가로부터 외면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겨야 했다. 대한민국 국민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위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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