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헤어' 남 눈치 안봐도돼요..전국 첫 장애인 미용실 개장

채혜선 2020. 10. 13.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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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미씨가 12일 도촌종합사회복지관 내 '함께 헤어'에서 미용 서비스를 받고 있다. 채혜선 기자


“그동안 미장원 가는 게 얼마나 불편했는지 몰라요. 남들 시선 의식 않고 맘 편히 자를 수 있으니 너무 좋아요."
12일 오후 1시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의 도촌종합사회복지관. 이 복지관 3층 내 미용실에서 머리를 손질한 30대 정형미씨의 소감이다. 뇌병변 장애가 있는 정씨는 "그동안 맘 편히 미용 서비스를 받아본 적이 없다"고 했다. 휠체어에 몸을 의지해야 돼서 일반 미용실을 이용할 때 불편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옆에서 자꾸 쳐다보는 시선도 정씨를 움츠러들게 했다. 정씨는 “다음에 이 미용실을 또 오고 싶다”며 웃었다.


전국 최초 장애인 전용 미용실 문 열어

'함께 헤어' 내부 사진. 사진 도촌종합사회복지관


정씨가 찾은 미용실은 평범한 미용실이 아니다. 이날 문을 연 장애인 전용 미용실 ‘함께 헤어’다. 도촌종합사회복지관에 따르면 장애인 전용 미용실이 생긴 건 전국 최초라고 한다. 이날 ‘함께 헤어’ 개업식에 참석한 장애인 부모 대부분이 자식을 키우며 제대로 된 이·미용 서비스를 받아본 적 없다고 털어놨다.

고선순 한국장애인부모회 회장은 “장애인을 미용실에서 받아주지 않는 곳도 많아 성남에서 여주까지 원정을 다니곤 했다”며 “이제 우리 아이들이 눈치 보지 않고 머리를 편안하게 자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서진 혜은학교 학부모회 회장은 “소음과 낯선 공간을 두려워하는 장애인이 이·미용 서비스를 받는 건 전쟁과도 같다”며 “가위 등에 다치지 않게 조심해야 하니 비장애인보다 시간도 4~5배는 더 걸린다”고 말했다. 이들은 “전국에 이런 시설이 많아져야 한다”며 “지자체가 힘을 보태달라”고 입을 모았다.


기초생활수급·차상위계층 가정은 무료

'함께 헤어' 안내. 사진 도촌종합사회복지관


장애인 전문 이·미용 시설이 흔치 않아 장애인들은 보통 복지관 내 미용 봉사 등을 이용한다. 하지만 미용 전문 공간에서 머리를 자를 수 없다 보니 머리를 감는 세면 시설 등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원할 때마다 서비스를 받기도 쉽지 않다. 마흔 살 된 지적장애아들을 키우는 고 회장은 “미용실을 맘대로 갈 수 없다 보니 머리카락이 눈을 찌르는 정도가 돼야 한두 달에 한 번 머리를 잘랐다"며 한숨을 쉬었다. '함께 헤어'는 이런 장애인 가족의 염원을 담아 1년여의 준비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함께 헤어’는 100% 사전 예약제로 운영되는 1인 전용 미용실이다. 장애인과 그 가족이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매주 월·수·금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운영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고려해 소독도 매시간 30분씩 이뤄진다. 이용료는 장애인은 3000원, 보호자는 5000원이다. 기초생활수급·차상위계층 가정은 돈을 내지 않고 이용할 수 있다. 20년 경력의 전문 미용사가 커트 서비스를 한다. ‘함께 헤어’의 이연자(59) 미용사는 “섬기는 마음으로 함께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도촌종합사회복지관 측은 ‘함께 헤어’ 외에도 장애인 가족을 대상으로 전문적인 이·미용 교육을 지원할 계획이다. 가족 스스로 장애인의 이·미용이 가능하도록 돕겠다는 취지다. 이종민 도촌종합사회복지관 관장은 “‘함께 헤어’는 장애인이 차별받지 않고 당당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곳”이라며 “다른 지자체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확대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성남=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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