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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위안부상 철거 고맙습니다"..日 '민관 덴토쓰' 또 먹혔다

황현택 입력 2020. 10. 13. 15:01 수정 2020. 10. 13.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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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상 철거 결정에 대한 지지, 감사를 전하고 싶으신 분들은 참고하세요."

독일 수도 베를린 당국이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명령한 지난 8일, 일본 극우 민간단체 '나데시코 액션' 웹사이트에 이런 글이 올랐습니다. 글에는 베를린 시장과 의회 의장, 미테구(區) 청장 및 구 의원 등 여러 명의 이름과 주소, 이메일, 전화번호 등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었습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단체는 일본 외무성과 주독 일본 대사관, 여기에 베를린과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도시, 일본 도쿄도(東京都)와 히가시오사카(東大阪)시, 소녀상이 설치된 베를린 미테구와 자매구 관계인 도쿄 신주쿠(新宿)구 등의 관련 부서 연락처도 총망라했습니다. 위안부상 철거를 이끌어 낸 일본, 그리고 이에 일조한 독일, 모두에 감사에 뜻을 전하자는 겁니다.

일본 극우단체 ‘나데시코 액션’의 웹페이지. “한국 시민단체가 청와대 앞에서 베를린 위안부상 철거를 지지하는 시위를 벌였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덴토쓰'로 여론몰이!

'나데시코 액션'의 활동 목표는 "우리 세대에 '위안부=성노예'라는 거짓말에 종지부를 찍자"는 것입니다. 방법은 '덴토쓰'(電凸·전화 돌격)입니다. '덴토쓰'는 불만이 있는 기관이나 기업을 표적 삼아 조직적으로 팩스나 전화, 이메일 등으로 항의하는 걸 뜻합니다. 항의가 먹히지 않으면 방화 협박까지 벌이는 파상 공세를 벌입니다.

지난해 8월, 일본 최대 국제예술제인 '아이치(愛知) 트리엔날레'에 출품된 '평화의 소녀상' 전시를 사흘 만에 중단시킨 배경도 '덴토쓰'였습니다. '나데시코 액션'은 2차 아베(安倍) 정권 출범 직전인 2011년에 출범해 벌써 10년째 이런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우익단체가 일본에서 한두 곳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오른쪽)과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이 지난해 11월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G20 외무장관 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출처=일본 외무성〉


철거 활동에는 '민관 일체'

"독일 베를린 시내에서 (소녀상) 제막식이 열린 걸 알고 있다. 이는 일본 정부의 기존 입장과 양립할 수 없다. 지극히 유감스럽다. 다양한 관계자와 접촉해 소녀상 철거를 위해 노력하겠다." (9월 29일, 일본 관방장관)

"(독일 외무장관과) 대화했다. 동서 분열에서 하나의 베를린이 태어났다. 여러 사람이 오가고 공존하는 도시가 베를린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베를린에 그런 상(소녀상)이 놓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10월 6일, 일본 외무상)

빈말이 아니었습니다.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일본 관방장관이 '물밑 외교전'을 공언하자 이틀 뒤(1일),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외무상은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과의 통화에서 소녀상 철거를 요청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된다는 점을 확인한 2015년 한·일 외교장관 합의 취지를 설명한 거로 전해집니다.

일본 정부는 또 독일 지방자치단체의 권한이 강하다는 점을 파악해 주독 일본대사관을 통해 미테구에도 일본의 입장을 반복 설명했습니다. 우익 성향 산케이(産經)신문은 "일본이 소녀상 제작을 지원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회계처리 부정 의혹 사건까지 끌어들여 독일 측을 설득하는 무기로 삼았다"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몬태나주립대 야마구치 사토미(山口智美·문화인류학) 준교수는 지난해 9월 마이니치(每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은 '민관 일체'로 해외에 있는 위안부상 철거 운동을 전개해 왔다"고 말했습니다.

일본 아사히신문이 2014년 8월 5일, 2개 면에 걸쳐 할애한 특집 기사. 신문은 오보를 인정하면서도 “여성에 대한 자유의 박탈과 존엄 유린 등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자”고 제언했다.


아사히신문 오보도 영향

그는 특히 일본의 민관이 혼연일체가 돼 '소녀상 철거 운동'을 노골화한 계기로 '아사히(朝日)신문 오보 사건'을 꼽았습니다. 아사히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일본 사회에 알려지는 데 큰 역할을 해 온 매체입니다.

하지만 아사히는 2014년 8월, 요시다 세이지(吉田清治·사망)의 자서전을 인용해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이 제주도에서 위안부를 '사냥했다'"고 전한 기사를 취소하고, 사과했습니다. 비록 신문이 오보로 인정한 건 '요시다 증언'뿐이었지만, 이는 우익세력에게 더 없이 좋은 먹잇감이 됐습니다.

산케이 등 보수 매체들은 일본의 책임을 부정하는 '여론몰이'에 벌떼처럼 나섰습니다. 야마구치 교수는 "우익 단체들은 이후 '아사히가 위안부 문제를 날조해 세계에 오보가 확산한 결과, 미국 등에 위안부상이 늘어났다'는 식의 뜬소문을 퍼뜨렸다"고 말했습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7일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 정부의 공식 입장은 "민간이 알아서"

일본은 이번 위안부 소녀상 철거 결정을 '외교 성과'로 자찬하는 분위기입니다. 산케이는 11일 논설에서 "악질적인 반일행위는 싹을 확실히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 데 이어 "총리 재임 중 '고노(河野) 담화'를 검증해 역사의 진실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 (위안부) 문제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 인터뷰도 실었습니다.

1993년 8월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당시 일본 관방장관이 발표한 '고노 담화'는 위안소가 당시 일본군의 요청으로 설치됐고, 위안소 관리 및 위안부 이송에 일본군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고 명시하고 사과했습니다. 이러한 고노담화 정신을 훼손한 일을 오히려 '진실 규명 작업'이라고 강변한 셈입니다.

의아한 건 우리 정부의 태도입니다. 외교부는 독일 소녀상 철거 결정이 나는 동안 관련 동향을 파악하지도, 우리 측 입장을 전달하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철거가 결정된 뒤에도 "민간의 자발적 움직임에 정부가 외교적으로 관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발을 뺐습니다. 전에도 비슷한 논란이 일 때마다 "민간단체와 협력하겠다", "일본 정부는 끼어들지 말라"고 촉구하는 데 그쳤습니다.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가 철거 위기에 놓인 독일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을 지키기 위한 글로벌 홍보 캠페인을 시작했다. 사진은 ‘소녀상과 함께 앉은 빌 브란트 전 총리’ 포스터. 〈반크 제공〉


위안부 소녀상은 단순 조형물이 아닙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국가나 군이 관여해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자행된 것과 그 피해자를 기억하고 다시는 이러한 인권침해를 일으키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지기 위한 상징입니다. 일본 정부와 우익세력의 전방위 로비로 전 세계 소녀상이 하나둘 사라질 처지인데, 우리는 언제까지 '유감의 뜻'만 들어야 할까요.

황현택 기자 (news1@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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