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행자 옆으로 '휙휙'.. 도심 흉기·흉물된 공유 킥보드

이영빈 기자 2020. 10. 14.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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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빌리티 천국' 송파구 가보니

지난 10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역 앞 중앙 차로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아무렇게나 세워진 노란색 카카오 전기 자전거가 폭 2m 정도인 정류장 보행로를 가로막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린 시민 10여 명이 자전거를 피해 좁은 틈새로 줄 서서 지나갔다. 잠실역 3~4번 출구 쪽으로 건너가자 전동 킥보드 4대가 인도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근처를 달리는 전동 킥보드도 많았다. 오후 6시 400m 길이 석촌호수교 위를 건너는 동안 킥보드 7대를 만났다. 그 중 두 대는 20대 남녀가 함께 타고 있었다. 인도 옆에는 폭 1m 자전거 도로가 있었지만 킥보드뿐 아니라 자전거도 인도로 올라와 달리는 것이 많았다. 걷는 내내 앞뒤에서 나타나는 킥보드나 자전거에 부딪힐까 봐 불안했다.

지난 12일 서울 송파구 지하철 2호선 잠실역 2번 출구 앞에 전동킥보드들이 보행자 통행로와 시각장애인 유도블록을 막은 채 아무렇게나 놓여 있다. /김지호 기자

공유 전기 자전거, 공유 전동 킥보드 등 개인형 공유 이동수단(Shared Personal Mobility) 산업은 확대 일로다. 휴대전화로 QR 코드만 찍으면 바로 이용할 수 있는 편의성이 큰 장점이다. 기본 요금이 600~1200원이고 분당 180원씩 추가돼 1~2㎞ 정도 짧은 거리를 다니는 데 유용하다.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인한 대중교통 기피 심리가 확산을 부채질했다.

특히 서울 송파구는 전국에서 공유 모빌리티가 가장 많은 곳으로 꼽힌다. 관내 전동 킥보드 수가 10월 기준 4500대로, 서울 25구 가운데 송파구 한 곳이 전체의 8분의 1을 차지한다. 게다가 지난 8월에는 서울 시내 자치구 중 처음으로 카카오와 전기 자전거 ‘카카오 바이크’ 500대를 구 전역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송파구 인도 총연장은 19만7403m이니, 40m마다 공유 킥보드나 공유 전기 자전거가 세워져 있거나 달리는 셈이다. 업계에서는 “송파구는 공유 모빌리티의 천국이 될 서울의 미래 모습”이란 얘기가 나온다.

하지만 많은 보행자가 공유 모빌리티를 불편해하고 무서워했다. 이달 초 롯데타워 앞에서 만난 직장인 박철성(32)씨는 걸어 다니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버릇이 생겼다고 했다. 박씨는 “내 옆을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킥보드를 보면 ‘내가 갑자기 한 걸음만 옆으로 내디뎠으면 큰일날 뻔했다’는 생각에 하루 서너 번씩 아찔할 때가 있다”고 했다. 실제로 올해 8월 관악구 신림동에서는 시속 25㎞로 달리던 킥보드가 60대 행인을 덮치는 사고가 있었다. 그 행인은 머리뼈가 깨지고 뇌출혈이 발생하는 중상을 입었다.

공유 모빌리티는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공유 자전거 ‘따릉이’처럼 별도의 정류장이 없다. 이용을 마치면 거리 아무 데나 세워두면 된다. 이용자에겐 편리하지만 다른 이들은 불편을 호소한다. 잠실역 근처에 있는 돈가스 식당 사장은 “점심 영업을 마치고 나면 직장인들이 가게 앞에 세워놓고 간 킥보드를 멀리 옮겨놓는 게 일"이라고 했다.

‘풍선 효과’로 킥보드들이 몰리기도 한다. ‘라임’ ‘빔’ 등 킥보드 공유 앱에는 ‘주차 금지 구역’이 빨간색으로 표시된다. “우리 집 앞에는 킥보드를 세우지 말라”는 신고가 들어온 지역이다. 주민들 신고가 늘어나면서 주택가와 아파트 단지 주변에 빨간색이 번지자, 킥보드는 식당가나 주택가 진입로로 몰렸다. 10일 석촌호수 인근 ‘송리단길’ 초입에는 10대가 줄줄이 있어, 사람 1~2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었다. 송파구 관계자는 “킥보드 전용 주차장을 시범설치하는 등 여러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며 “업체와도 지속적으로 개선 논의 중”이라고 했다.

현 정부는 유독 공유 모빌리티 산업에 대해서는 규제를 줄줄이 풀고 있다. 올해 12월부터 시행되는 개정 도로교통법을 통해 전동킥보드 이용 연령 제한을 현행 ‘16세 이상’에서 ‘13세 이상’으로 더 낮췄다. 지금은 필수인 운전면허도 그때부턴 필요 없고, 자전거 도로 이용도 허용한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업체도 우후죽순 생겨난다. 서울 시내 사업용 공유 전동 킥보드 서비스 업체는 2018년 12월 1개에서 올해 8월 기준으론 16개로 늘었다. 같은 기간 이들이 운용하는 킥보드 대수도 150대에서 3만5850대로 늘었다.

시장 과열과 업체 난립으로 공유 자전거가 도심 흉물로 전락한 중국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중국 내 공유 자전거는 2016년 200만대에서 1년 만에 2300만대로 10배가량 급증했다. 공급 과잉 현상이 빚어지면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고속도로변, 하천이나 도랑에 방치된 자전거가 늘어났다. 베이징·광저우시 등이 뒤늦게 신규 투입에 제한을 뒀지만, 지금도 시 외곽에는 고장난 자전거가 쌓인 ‘자전거 산’이 곳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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